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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편혜영의 단편은 '첫 번째 기념일'을 옛날에 읽었는데, 이 단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택배원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읽고 그냥 잊어버린 이름이었는데,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다시)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통조림공장'을 읽었다. 줄거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느낌은 정말 선명하다. 역겨움, 징그러움, 더러움. 읽고 나서 속이 굉장히 안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덧 5년이 지나, 나는 그녀의 단편집 <아오이가든>을 집어들었다.
최근에 편혜영의 장편 <선의 법칙>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제목이 주는 끌림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읽으려면 먼저 이 작가가 어떤 글을 썼는지 봐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도서관에 들렀다. 초기작을 빌리려고 했는데, 장편은 다 빌려가고 없는 상태여서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편혜영의 작품세계에 대한 소문은 예전부터 많이 들어서,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나도 어느 정도 비위가 강해졌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징그럽고, 속이 안 좋았다.
괴기 소설,이라는 명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류의 소설군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문학에서 그런 괴기함을 다룬 소설을 찾기는 어렵다. 리얼리즘의 전통이 강한 탓인지, 환상성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편혜영의 소설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설의 제목이 '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 랜드'였는데, '시체'와 '괴담'이야말로 아홉 편의 단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다.
표제작 '아오이가든'을 읽으면서 자꾸 메르스가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일까? 역병이 돌아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아오이가든의 모습이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의 모습과 자꾸 겹쳐진다. 다만 그것이 더 징그럽고 역겨운 이미지로 형상화될 뿐... 9편의 단편에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작가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한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듯이.
예전에 정용준의 <가나>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불구성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 불구성은 편혜영의 <아오이가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는 불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기이하면서 역겹고, 공포스러운 세계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용준의 소설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불구자들을 다루었다면, 편혜영은 처음부터 불구성을 내포한 세계를 독자 앞에 들이민다. 그리고 독자는 읽는 내내 불편하고,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괴이한(더 심한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세계가 현실에 대한 비유라면, 그렇게 징그럽고 역겹기까지 한 이미지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단면이라면, 우리는 현실의 역겨운 냄새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이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닐까.
읽으면서 '이게 뭐야?' 싶은 단편들도 여럿 있었고, 너무 더럽고 불쾌해서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적도 있었는데,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아오이가든'과 '만국 박람회', '문득,'이 인상적이었고 '저수지'랑 '서쪽 숲'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볼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비위가 굉장히 약하단 걸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에. 하지만 편혜영이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영역에 깃발을 꽂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선의 법칙>은 지금까지의 편혜영 작품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계는 여덟 달 만에 망했다. 단지 옆 가게라는 것 때문에 내개 몇 권의 책을 집어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책은 가게 안에서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라는 제목의 추리 소설을 골랐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삼류 주간지의 헤드라인 같은 제목이었다. 가장 추리 소설다운 제목이기도 했다. 아무리 제목이 거창하더라도 결국 추리 소설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누가` 멋진 그녀를 혹은 돈 많은 그를 죽였나가 그것이었다. `왜`가 없는 세상, 그게 바로 추리 소설의 세상이었다. -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
만국 박람회는 나에게 있어서 첫번째 박람회였다. 개막일에 맞춰 물속에 잠긴 집으로 돌아가게 되건 말건 나는 박람회 개막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똑똑히 봐둘 작정이었다. 큰 칼로 명치를 잘라 뜸을 들이다 개의 숨을 끊는 삼촌에게 미래는 연필심처럼 가느다란 칼로 단번에 개를 죽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이른바 세기의 마술사에게 미래란 검은 천이 없어도 자유자재로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미래란...... 짐작할 수 없는, 내가 알 바 아닌 시간이었다. - `만국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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