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11.
『혼모노』 읽기.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와 「혼모노」는 넘기고 「스무드」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음.
「스무드」_한국이라는 맥락이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작품. 스무드라는 작품의 제목(이 단편의 제목이자 제프의 작품명)과 달리 한국에도, 이민자라는 정체성에도 스무드하게 스미지 못하는 듀이를 받아들여준 공동체가 미국을 선망하고 그 질서에 편입되기를 바란다는 점도 아이러니. 제프의 작품 세계의 매끈함에 대한 서술에서는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이 떠오르기도 했다. 구 안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큐레이터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제프의 모습을 보며 듀이가 감정적 유대를 느끼며 강하게 자각한 정체성의 공허함에 대한 암시일까 생각하기도.
누구나 제프의 작품을 좋아했다. 제프의 작품에는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었다. 바버라 크루거나 뱅크시의 작품처럼 무엇을 비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전지식 없이도 감상할 수 있고 뭘 안다고 감상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그런 매끈한 세계를 추앙했다. (71)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 어머니는 자신이 사우스 코리안인지 노스 코리안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늘 자신의 출신이나 배경을 숨겼다. 그에게는 'Yongbok'이라는 미들네임도 있었으나 누군가와 통성명을 할 때 그것을 언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간혹 누가 출신에 관해 물으면 아버지는 위스콘신 태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나에게도 이를 주입했다.
듀이, 우린 미국인이야. (80-81)
그는 이제 많이 늙어 사진 속 젊고 건장한 남성과 동일인물이라 보기 어려웠지만, 세월을 거스른 낯설고 뜨거운 감정만은 내게 온전히 전해졌다. 보물. 내 아버지에게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 그랬던 걸까. 미스터 김과 나 사이에 세워진 두꺼운 벽에 가느다란 실금이 생긴 것 같았다. 느닷없이 이상한 통증이 일었다.
사진 속 소년들을 손으로 짚었다.
이들도 당신과 '대구'에 살고 있나요?
그들은 '서울'에 삽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왜요?
내 물음에 미스터 김은 선글라스를 벗고 눈가를 문질렀다. 무뚝뚝한 입매와 달리 눈은 맑고 순했다. 뜸을 들이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알 수 없습니다.
미스터 김이 한국어로 무어라 웅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소리가 뭉개져 명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죠. (98)
당신에게 무척 고맙다고 전해달랍니다. 당신이 아주 소중하대요.
타인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가족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감정의 가느다란 실금이 점차 벌어지더니 뜨거운 무언가가 그 바깥에서 울컥 밀려들어오듯 온몸이 달아올랐다. 이건 민망함일까, 뭉클함일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101)
미스터 김은 그들을 가리켜 '열사'라고 불렀다.
저들의 이름이에요?
내 말에 미스터 김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사'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풀이해주었다.
아주 좋은 사람들. 그의 말을 나도 미온하게나마 수긍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고 수고를 마다않고 마음까지 내어주는, 온정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미스터 김이 말을 이었다.
내게는 가족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축제의 장에 모인 좋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나는 미스터 김이 일러주는 대로 '열사'를 연달아 발음해보았다.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스터 김은 참을성 있게 혀의 위치와 입 모양을 교정해주었다.
요울사, 욜사…… '열사'.
마침내 그들을 '열사'로 부르게 되었을 때, 미스터 김도 나도 작게 환호했다. '열사'. 내가 정확히 발음한 최초의 한국 이름이었다. (106-107)
당신도 '열사'예요. 우리처럼요.
알 수 없는 고양감에 젖어들었다. 생애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시끄럽고 이상하지만 뜨거운 이곳에서 나는 분명 그들과 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에게도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라, 아니 우리의 나라를.
[아버지, 저 지금 한국에 있어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전송하기 전, 나는 미스터 김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열사'들의 함성과 커다란 스피커 볼륨 때문에 미스터 김과 말이 계속 엇갈렸다. 고개를 돌렸다. 광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거대한 청동상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여기 어디예요?
그제야 이해한 듯 미스터 김은 큰 소리로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었다. 번역 앱을 켜고 그에게 한번 더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의 말이 고스란히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곳은 '이승만 광장'입니다.
아버지에게 사진을 전송한 뒤 메시지를 덧붙였다.
[저 지금 이승만 광장에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요.] (108-109)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_건축을 소재로 술술 풀어내는 스승과 특성 없는 제자의 이야기의 입담에 빠져들어 읽었고, 앞부분에서는 문득 오래 전 읽었던 「건축이냐 혁명이냐」가 떠오르기도 했다. 건축 위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갈려버린 스승과 제자의 길. 다만 구보승의 아버지가 지관이었다는 사실에서 뭔가 더 연결되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맥거핀처럼 길을 잃었고, 결말 자체는 밋밋하다고 느껴졌던 작품.
여재화가 기밀을 밝혔음에도 구보승은 무덤덤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태연해 도리어 여재화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손 떼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게.
여재화의 말에 구보승은 예상과 달리 선선히 답했다.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련원이든 고문실이든……
구보승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이긴 하니까요. 저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선생님께 들은 말은 이 자리에서 다 잊고요. (176-177)
공간을 설계할 때는 요령과 경험도 필요하나 그것만을 불가결이라 할 수는 없었다. 불가결은 상상력이었다. 무형의 공간에 선을 더하고 면을 채우고 종국에는 인간까지 집어넣는 일. 그곳에서 살아갈 인간을 위한 자문자답은 기본이거니와 미학과 독창성까지 살리는 일. 그것이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불가결이었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을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180)
제 생각에, 이 공간엔 창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조사자가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고 자칫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기잖습니까.
희망?
죽고자 하는 사람도 빛 속에선 의지와 열망을 키웁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 흔들렸던 신념이 굳건해질 수도 있죠.
여재화 역시 빛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숙고 끝에 창을 넣은 것이었다. 한줌도 안 될 인간다움이나마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했기에. 그것은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을 설계하는 여재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보승은 달랐다.
취조실에 희망은 불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의 바르지만 어조에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여재화는 생각했다.
내가 알던 구보승이 맞나. 그저 허허실실로 물렁하던 놈이?
당황했지만 냉정을 되찾고 보니 그리 놀랄 일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창문을 없애 빛을 막고 소음을 방지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발상이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그것이 구보승의 특기였다. 합리성. (181-182)
선생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여재화는 흠칫했다. 이제껏 구보승이 밀어붙였던 합리와 대척점에 놓인 사고였다. 드디어 인간을 고려하다니. 독학하는 과정에서 건축의 기조를 깨달은 게 아닐까, 어렴풋이 유추하며 여재화는 안도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이 없어선 안 되지.
네.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창이 필요했던 건데…… 저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으니까요.
여재화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구보승은 화색을 띤 채 말을 이었다.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191-192)
이제 다 늙어버린 남자는 건물의 정초석을 손으로 쓸다 그곳을 떠난다. 구의 집의 '구'가 두려워할 구(懼)인지, 구원의 구(救)인지, 혹은 그저 자신의 성을 딴 것인지 남자는 알지 못한다. 스승은 이십년 전 별세했고, 죽기 전에 따로 만나지 못해 그 뜻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뜻을 되짚어보다 남자는 그만둔다.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201)
25.9.12.
『혼모노』 완독.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을 읽음.
「우호적 감정」_ 회사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여러 면에서 장류진 작가의 단편이 떠올랐던 작품. 겉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모양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뜨거운 딤섬처럼, 셋의 관계도 사소한 계기로 터지게 되는 이야기. 직장 내의 위태로운 인간관계를 딤섬에 빗댄 것이 참신하다고 느껴졌다.
사람들과 섞여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딤섬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술잔을 채워주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 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240)
「잉태기」_혈육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통제하겠다는 욕망과 집착은 세계에 어떻게든 나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욕망. 매우 달라 대립하는 것 같지만 미더덕처럼, 연리목처럼 그들의 욕망은 너무나 닮았기에 뗄 수 없는 관계. 세대의 차이가 있지만 욕망의 추함은 한 줄기로 같다는 암시일까.
가만보면 저 양반이나 너나 꼭 닮았어.
뭐가요?
사랑에 갈급해서 제가 받지 못한 걸 죄 자식에게 쥐여주려고 하잖니. (272)
얼어 있던 미더덕이 물에 닿으며 녹진해진다. 한때는 이게 그렇게도 징그러웠지. 저 오톨도톨한 돌기도, 잘린 손가락을 연상케 하는 몸체도, 암수가 한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닿기만 해도 몸서리치던 때가 있었는데 무뎌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담담하다. 핏줄에게 가장 좋은 것만 쥐여주고 싶다는 욕심. 아이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지는 마음. 그런 면에서 시부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닐까. 애정으로 집요하게 얽혀 한몸이 되어가는 관계. (280-281)
「메탈」_한때의 열정을 간직한 이와 열정이 사그러든 이의 반목과 부서짐. 그들을 한데 묶어주었던 순수한 열정이 사라졌을 때 끈끈해 보였던 관계는 너무나 쉽게 균열이 가고 깨진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하는 생각.
눈으로 보았던 책의 두께에 비해 페이지는 4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아서 두꺼운 종이를 썼나,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만 얇고 가벼웠으면 하고 잠시 생각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파오는 어깨 때문일까, 가방에 읽을 책을 담으려고 고민할 때마다 그 두께와 무게를 먼저 고민하게 되니 책이 얇고 가벼운지가 중요해졌다(물론 이동 중에 읽는 일은 드물지만). 애정하는 에코백에서 백팩으로 갈아탈 시기가 되었나…
25.9.14.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읽기 시작.
이제는 그 말을 들을 수 없다. 번영 말이다. 그것은 한때 낙원의 동의어였다. 그리고 피비 허티는 자신이 권하는 무례함이 미국적 낙원을 구현하리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보이던 식의 무례함은 이제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더이상 새로운 미국적 낙원을 믿지 않는다. 나는 피비 허티가 정말 그립다. (19)
들어보라.
트라우트와 후버는 줄여서 미국이라고 부르던 나라인 미합중국의 시민이었다. 아래는 그들의 국가였는데, 진지함을 요구하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완전히 개소리였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여명 사이로
황혼의 마지막 미광 속에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했던
넓은 줄무늬와 빛나는 별들이 위험한 전투 속에서도 우리가 사수한 성곽 위에서 당당히 나부끼는 모습이?
포탄의 붉은 섬광과 공중에서 터지는 폭탄이
밤새 우리의 깃발이 건재했음을 증명해주었네.
오, 말해주오. 성조기는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과 용사들의 고향에서?
우주에는 천조 개의 나라가 있지만, 여기저기 물음표가 찍힌 횡설수설한 노래를 국가로 가진 나라는 드웨인 후버와 킬고어 트라우트가 살던 나라뿐이었다. (25-26)
트라우트는 어떤 사람들은 별나게 여겼을지도 모를 또다른 짓도 했다. 그는 거울을 구멍leak이라고 불렀다. 거울을 두 우주 사이의 구멍으로 여기는 것을 즐거워했다.
거울 근처에 아이가 있는 것을 봤다면 그는 아이를 향해 경고하듯 손가락을 흔들고는 아주 근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구멍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다른 우주로 빨려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때로 누군가가 그의 앞에서 "실례합니다. 구멍으로 물 좀 빼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아랫배에 있는 밸브를 통해 몸에서 액체 폐기물을 빼내고 싶다는 의향을 밝힐 때 쓰는 표현이었다.
그러면 트라우트는 "제 고향에서 그 말은 거울을 훔치겠다는 뜻입니다"라고 익살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