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21.
『작은 일기』 읽기. 「입에서 나오는 말」 챕터를 읽었다. 쭉 읽다가 에에올에 대한 감상을 다룬 부분의 한 페이지 전체를 밑줄로 채웠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던 영화의 장면장면과 마지막을 보며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지만 식상할 수 있는 메시지를 이렇게 놀라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제 곧 4월이고 5월이다. 곳곳의 이팝나무에 꽃이 필 것이고 그 향기에 홀려 긴 밤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파주로 와서인지 몇해 전부터 이팝나무를 자주 보았다. 박근혜정부
때 가로수로 자주 심었다는 이야기를 작년에 들었다. 그에겐 그의 아버지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나는 박상진 선생의 『궁궐의 우리 나무』에
실린 내용으로 이팝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흉년에 굶어 죽은 아이들을 묻은 땅 근처에 밥 대신 심었다는
나무. 만개한 꽃송이 무리가 쌀밥을 닮아 '이팝'이 되었다는 나무. 정말 그랬다면 그 옛날, 꽃향기가 온 마을을 그득 채우는 때마다 어른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나. 작년에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눈 허태임 선생은 4월, 돌배나무 꽃이
질 때를 “세월호가 가라앉은 때”라고 말했다. "4월"보다도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 어떤 이들에게는. (128-129)
찜찜함을 덜어 보려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연달아 보았다. 제목을 한글로 고스란히 옮긴 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분명 맞춤한 사자성어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엔딩에 떠오른 자막으로 그 말을 보았다. 천마행공天馬行空.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를 이르는 단어라는데,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그 뜻을 알았고, 천마행공의 천天을 천千이라고
오독했다. 천마리 말이 가는 곳. 다중우주가능성를
이르는 말이자, 한 사람 안의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그 정도의 분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일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란 그렇게 만만하고 하찮은 것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서. (133-134)
나는 이 모든 걸 목격하러 이 세계에 왔다.
가급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번
한번뿐이니까 올 앳 원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목격'에
두고 산 지 꽤 되었다. 태어나 보고 듣고 겪는다. 이걸
하러 나는 여기에 왔다. 아주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흩어져 있다가 어느 날 인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세상에 출현해, 기적적으로 출아해, 세상을 겪고 세상의 때가
묻은 채 다시 입자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을 관통한, 그리고
세상이 관통한 더러운 경험체로서.
우리가 서로를 목격하고 있으니 각자의 방식으로 다정해져야 해. 나의
목격과 나를 목격하는 다른 목격자를 위해서라도 가급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번 한번뿐이니까 올 앳 원스. (135)
25.8.22.
『급류』 읽기. 해솔과 도담의 운명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 전형적이지만 풋풋하게 시작하는 듯했던 서울 아이와 산골 아이의 사랑은 사소한
실수로 비롯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갈라지고 헤어져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지지만 감정적으로 진하고 강렬한 이야기 덕분에 몰입하여 읽게 된다.
25.8.23.
『급류』 완독. 출간되었을 때 꽤나 화제였던 책이어서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새로운 표지를 입고 나와 있었지만 사지 않았었는데… 영화와 같은 장면 묘사,
절절한 감정 묘사, 두 인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정열과 사랑 등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들고, 마지막에 도담과 해솔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적 울림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뜨거웠고, 그래서 한 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내가 요즘 소설을 읽으면서 바라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는 것은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없게 겨우 읽었다는 뜻은 아니지만…(그러기엔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충분히 잘 쓴 작품이고, 인물 간의 인연을 적절하게 얽고 풀면서 독자를 이끄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100)
알 것 같았다. 해솔이 그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자신을 보는 해솔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안에 슬픔이 있었다. 미안함이
있었다. 어쩌면 원망의 눈빛도……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겪은 두 사람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체감했다. 이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인생을 낭비 없이 백프로 살고 싶어."
해솔이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도담도 그 말에 동의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해솔은 나태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추구했고 도담은 늘 새로운 자극을 추구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살 거야. 여행처럼 신나게 살 거고, 모든 걸 경험해 볼 거야." (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