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이후에 시간이 꽤 지나서 7월
초반에는 몇 번 읽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 있었으나, 읽었다는 사실 외에 남겨놓은 것 없이 밀려둔 일처리만
끝내고 예정되어 있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아마 지금까지 떠났던 여행 중에 가장 준비를 안 하고
떠난 여행이 아닐까… 나라가 이탈리아여서 그런지 배경지식을 최대한 쌓고 가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준비가 전혀 없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와 가방에는 책만 다섯 권이 들어갔는데, 그 중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넣은 책이 두 권이었다(여행
가이드북을 제외하면. 적으면서 생각하니 다섯 권이라고 쓰면서도 여행 가이드북은 세지 않았다).
일처리의 와중에도 읽었던 책은 일과 관련이 있어서 읽었던 『L의 운동화』. 운동화 복원 작업에 대한 소설에 얽힌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들, 손에
문제가 생긴 여성 복원가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당연히 세월호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중간중간에
시위가 배경처럼 등장한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읽었던 책은 서가명강 시리즈의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로마를 이끌었던 4명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실려있다. 로마에서 볼 것들이
고대 로마의 역사와 관련이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구입했던 책. 주요 유적에 대한 역사보다는 4명의 인물(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의
행적에 주목한 책이었지만 그래도 로마 역사의 대략적인 흐름을 아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로마
역사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시절 배웠던 세계사 지식 외엔 없었기 때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를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 배경, 그리고 이후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정리된 것도 콘스탄티누스 시기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후에 로마를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유적들 몇 가지(주로 포로 로마노에
있던 개선문들)를 볼 때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돌아볼 수 있었다.


또 챙겼던 책은 피렌체를 돌아볼 것을 대비하여 골랐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단테』. 아쉽게도 이 책은 다 읽지 못하고 피렌체를 여행하게 되었다. 사실
로마에서부터 종종 교회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저것이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림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정면화를 보았을 때. 단테의 집은 시간이 맞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했고,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두 번째로 만났다고 전해지는 산타 트리니타 다리는 그의 흔적이 전혀 없이 하염없이 야경을 보는 이들과 버스킹하는
이들만이 가득했다. 돌아와서라도 다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으나 방학이라는 연휴가 끝나니 핑계처럼 일거리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하루살이처럼 처리하는 중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거운 책을 다섯 권이나 왜 챙겼는지 모르겠으나… 꽤나
긴 여행이기도 했고, 최소한 남부에 있는 동안은 특별한 일정 없이 갈 곳만 정해놓은 일정이었기에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챙긴 것이었다. 그러나 가보고 싶은 곳이 언제나 많았던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음 날 가볼 곳에 대한 지식을 벼락치기로 익히느라 시간이 전혀
없었으니… 과유불급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과한 욕심이
짐을 더 무겁게 한다는…
종종 해변에서 펼쳐서 읽었던 책은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 같은
시간을 겪었지만 내가 책으로 항상 알아왔던 작가는 온몸으로 이 일들을 겪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이전에 나왔던 『일기』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세계의
엄혹하면서도 폭력적인 면모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것을 온힘으로 증언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시간을 겪고 지나왔지만 작가는 이를 훨씬 예민하게 감각하며 어떻게든 이 지경이 된 세계를 증언하고 바꾸고자 했구나, 하는 생각.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읽으면서도 마음에는
세계의 한 모습 같은 한기가 엄습했다. 한기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 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 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13)
분노한, '우리'로 단일하다고
간주하는 집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소외감.
소수를 향한 다수의 불편.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강화되는
정상성 요구, 단일한 집단이 되려는 욕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로 광장에 모인 거대한 집단이
보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닥치라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쓸 것.
특히나 분노한 사람들 속에서. (20-21)
어제는 탄핵이 가결되어 기쁘다고 말하는 편지에 기쁘지 않다는 말을 적어 답신했다. 옹졸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광장에서, 탄핵안 가결로 잠시 둥둥 기쁨 뒤로 단 한 순간도 기쁘지 않다. 광장에서
아무도 국가 폭력으로 다치지 않아 기쁘다는 말을 듣고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상황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뻔한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 자체가, 그런 시간이 있는 현실
그 자체가 두렵고 아프다. (41-42)
가수 연영석이 「윤식이 나간다」를 부르고 있을 때, 쓰러진 사람이
있다며 노래가 중단되었다. 노래를 중단시키고 상황을 알리는 박민주 활동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번 시국 내내 단단한 음성과 차분한 진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의지가 되었던 그가 처음으로 그런 목소리를 냈다. 다들 기다렸다. 찍지 마, 찍지
마, 하고 번져 오는 말을 따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말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다들 앞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84-85)
여행은 누구도 아픈 일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광복절을 끝으로 방학
같은 연휴도 모두 끝이 났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고, 생활에
치여 멀리했던 책들과 마주할 시간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책읽기의 즐거움/괴로움에 빠질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