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가 37주로 넘어갈 때쯤에는 일들이 얼추 마무리가 되고 읽으면서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도 일이거니와 컨디션도 쭉쭉 떨어져 집에 돌아오면 산적한 집안일만 얼른 끝내고 늘어지거나 누워있는 일이 잦았다(피티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계기이기도). 책에는 손이 가지 않고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시트콤(어느덧 빅뱅이론을 두 시즌만 남겨놓고 있다)만 찾는 나를 보며 이렇게 책과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겨 나를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이 이렇게 바래지고 희미해지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는 일도 잦았다. 『경애의 마음』을 간신히 완독하고 나서 그런 마음은 조금 가시긴 했지만 가장 바쁜 일들이 6~7월에 있는바, 스스로 생각했던 고유한 ‘나’가 희미해지는 일이 또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일단 지금 다짐할 수 있는 건 내일부터 다시 38주를 이어가는 것. 아래 내용 중 대부분은 당시에 한 줄만 적었다가 사후적으로 보충해두었다는 점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25.5.19.
『하트의 탄생』과 『칡』을 읽음.
25.5.22.
서리북 17호 읽기. 툴러 롱 플래그를 사서 처음 써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당황했다. 벽돌책을 읽을 때 유용하겠다고 생각하며 「고전의 강」을 읽다가 멈춤.


25.5.29.
읽지 않은 책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
인스타그램을 쭉 보다가 『죽음의 부정』 개정판이 복복서가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득해지는 마음에 저 문장을 적었다. 멋들어진 보라색 양장본을 사기만 하고 펼치지도 않았는데 개정판이 브라이언 그린의 서문까지 더 달고 나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젠더 트러블』의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니…
응구기 와 티옹오의 별세 소식을 접함.
25.5.31.
『경애의 마음』 읽기 시작.
25.6.13.
『경애의 마음』을 오랜만에 펼침.
25.6.19.
『경애의 마음』 완독. 아끼던 E를 잃고, 산주 선배와의 사랑을 잃고, 파업 중 부당한 일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동료들을 잃은 경애의 마음을 따라갈 때도,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나름의 고집을 지니고, 다른 곳에서는 듣는 ‘언니’가 되는 상수의 마음을 따라갈 때도 마음이 찌르르하는 순간이 있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럽지만 폐기할 수 없는 마음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실 같은 연결들이 울림을 주는 이야기. 마음을 다해 썼다는 작가의 말이 충분히 받아들여졌던 장편이었고, 문득 이렇게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읽은 김금희 작가는 「조중균의 세계」와 「너무 한낮의 연애」가 전부였는데, 그땐 강한 인상을 주지 않았던 작가의 이런 작품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라는 생각과 더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모두 들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직원들을 기다리며 경애가 햇볕 아래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그때의 오후란 시간이 그 속성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부딪혀 겹치고 붙어 우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상수가 담배 한대를 얻어 들고도 쉽게 뒤돌지 못했던 건 경애가 뭐랄까, 그 오후의 풍경이 주는 감정들 속에서 버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사라지고 멀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소멸해가는 건 담배밖에 없고 그밖의 모든 것은 경애의 등과 어깨에 무겁게 얹어지는 듯한. (32)
E는 그외에도 사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도 씬도 배우도 아니고 오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과 상영되는 영화 사이에 이는 그 순간의 시간이라는 좀 과격한 논리를 폈고 그걸 '불타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관객과 영화가 만나고 이미지가 주는 자극에 관객의 모든 것이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소멸해버리는 것, 그동안에 일어나는 감각의 에너지. (64)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143)
상수는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무모함, 펼쳐질지 안 펼쳐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멘 채 중력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의 용기 같은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아드레날린과 옥시토신과 도파민 등이 실제로 분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표현은 좀 그렇지만 '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이 그토록 낭만적인 것은 이후 일어날 끔찍한 살인사건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서정적인 씬들을 앞부분에 배치하라는 트뤼포의 영화창작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랑 이후에는 잔혹한 파괴였다.
어려서부터 숱한 사랑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서사를 접한 덕분에 상수는 무수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러는 동안 사랑의 진위나 사랑 후의 죄 없음에 대한 일종의 기술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술과,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누가 보면 연애를 냉소하거나 자기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합리화하려는 가여운 노력에 지나지 않을 이 가설의 추동은 경애의 이메일로 더 강화되었다. 폐쇄된 연애공장의 분노한 숙련공이랄까. 상수는 그의 이중생활 속에서는 자칭 타칭 연애의 숙련공이었으니까. (152-153)
상수는 이따금 죽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맥락 없이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하고 물으면 어머니가 설핏 웃으면서 오늘이 어려워,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늘이 왜 어려워?
오늘을 넘겨야 하니까 어려워.
오늘을 넘긴다는 것은 뭐야?
오늘을 견딘다는 것이지.
오늘을 견딘다는 것은 뭐야?
그건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거야.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뭐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뭐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뭐야?
내일은 못 견딘다는 것이지.
내일을 못 견디면 어떻게 되는데?
내일을 넘길 수 없게 되지.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워질 수도 있다는 거야. (167-168)
마음을 어떻게 폐기하느냐고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이 나너랑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 라고 말한 날이 있었고 당신은 결정했고 그렇게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자 정작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을, 양말까지 챙겨 신은 뒤였다고. 그러고 나서 데려다주겠다는 그 사람 차에 타지 않고 택시로 강변북로를 달려 돌아오는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
경애는 테이블로 손을 뻗어서 상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내밀어진 손은 잡는 수밖에 없어서 상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맞잡았다. 경애는 점점 힘을 주어 잡았고 "팀장님,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했다.
"이렇게 마무리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299)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
25.6.22.
서울국제도서전 방문. 작년에 역대급 인산인해를 접하고 많은 실망을 안고 돌아갔기에 언제나 찾던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방문했다. 일단 기나긴 대기줄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들어갈 때 초코바를 주는 모습에 한번 놀라고(이게 없었다면 마감 때까지 안 쉬고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 사람은 역시 많았지만 훨씬 쾌적하고 덥지 않아 열심히 구경하며 다녔다. 작년엔 책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지만 스스로 자제하는 마음에 책을 덜 샀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는 약간 자제력이 풀어져 책을 17권이나 사고 말았으니… 최근에 『경애의 마음』을 읽은 경험 덕분에 김금희 작가의 사인회를 기다릴 마음도 갖게 되고(찐팬들도 많을 텐데 한 분 한 분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난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뿐인데 어쩌나, 전전긍긍하기도), 시간이 맞아 김혜리 평론가의 사인을 받을 기회도 얻었다.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잃고 있던 책심(冊心)에 불씨가 붙는 느낌이 들었달까. 이만큼이나 샀으니 바래지던 나의 애서심에도 다시 덧칠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자책과 한심함이 아니라 잔잔한 만족감을 느끼며, 책들을 가방에 이고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