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30.
『기도를 위하여』 읽기. 김말봉의 단편들을 읽을 때에는 흥미롭기는 했으나 아 그렇구나 그때는 이렇게 썼구나 하면서 보았는데, 뒤이어 나오는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와 에세이를 읽고난 후에는 이상한 리듬감 같은 것이 몸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입말과 글말 사이를 오가는 반점과 온점이 없는 문장들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요상한 리듬을 가지고 읽게 되고 지금 내가 쓰는 문장들도 뭔가 그것을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필 단편에서 떠나간 순애의 영혼이 비중있게 다뤄져서 그랬나. 묘한 여운도 함께 남는데 괜스레 나는 쓸데없이 혼령과 영혼과 유령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골똘히 고민하였다. 왁자지껄한 소음에 금방 깨어났지만.
24.10.1.
『기도를 위하여』 완독.
24.10.2.
서리북 읽기. 리뷰 파트로 넘어가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의 서평을 읽는다. 세월호의 전사부터 그날에 드러난 켜켜이 쌓여있던 무능함과 보신주의, 이기주의의 복합체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힘겹다.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수도 없이 했으면서 학생들의 대피를 도왔다는 이유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강혜성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한탄”(170쪽)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활동들을 보면서 사법만능주의가 낳은 것과 가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지던 중, 서평의 말미에서 박호진 학생과 정차웅 학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해지는 마음에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처는 여전하고, 못난 어른들은 상처에 약을 바르고 새살이 돋게 할 생각조차 않는다.
홍성욱, 「조각조각 꿰매진 '그날'의 슬픈 진실」
가장 큰 차이는 『세월호』(2016)의 2부 "왜 못 구했나"가 『세월호』 (2024)에서는 4부로 가고, 4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위험한 배', 어떻게 태어났나"가 2부로 갔다는 것이다. 즉 2부와 4부가 맞바꾸어졌다. 재난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나 과학기술학 연구자는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잠복기', '잠재적 조건(latent condition)' , '구조적인 취약성'이 누적된다고 보는데, 『세월호』(2024)는 이런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발생했지만, 그 이전에 취약성이 계속 누적되는 잠복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난에 대해 사회과학적 틀을 적용하고 나니, 세월호의 4월 16일 이전의 전사(前史)를 다룬 내용이 중요해졌다.(157-158)
세월호는 화물보다 평형수를 훨씬 더 많이 싣고 다녀야 하는 배가 되었고,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추지 못했다. 청해진 임원들은 화물을 더 싣고 평형수를 빼서 무게만 맞추자고 결정했고, 세월호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로 운항하기 시작했다. 시험 운항과 운항관리규정 심사 모두 접대와 뇌물로 통과했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화물을 최대한도로 싣기 위해 출항 10분 전까지 화물을 적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158-159)
이미 9시 23분경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진도VTS)-세월호-두라에이스호의 삼자 통화에서 두라에이스호 선장은 빨리 승객에게 구명동의를 입혀서 퇴선시키라고 했지만, 세월호 선장은 묵묵부답이었다.(124쪽) 123정을 타고 온 해경은 도피하는 선장과 선원을 구한 뒤에 한 번 배에 올라갔지만, 구명 뗏목을 떨어뜨리는 일만 했지 배에서 승객의 퇴선을 명령하거나 유도하지 않았다. 배에 달린 마이크로도 충분히 방송을 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배가 점점 기운다는 정보를 받은 해경 지휘부 역시 퇴선을 명령하지 않았다. 구조 현장에 있던 대부분이 배에 사람이 많이 타고 있었고, 바다에 떠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퇴선 명령이나 퇴선 유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실에서 대기하던 학생 중에서만 2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단원고 학생 희생자는 총 250명이었다).
123정이 도착한 시간은 9시 34분이었고, 선미 쪽에 모여 있던 기관부 선원과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장과 선원이 123정을 타고 도주한 시간은 9시 39분 이후였다. 9시 50분에서 9시 58분 사이에 학생들이 주로 머물던 4층이 침수되었다. 3층은 그보다 일찍 침수되었다. 9시 52분에 123정 정장 김경일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하 서해청)에 승객 반이 못 나오고 있다는 무전을 했고, 이를 들은 서해청과 해양경찰청(이하 본청)은 123정 승무원이 배에 올라가서 승객을 동요하지 않게 하라고 요청했지만, 123정 정장 김경일은 배가 기울어져서 올라가지 못한다면서 헬기에 요청하겠다고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9시 59분에 목포해양경찰서(이하 목포해경) 서장 김문홍이 승객들에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외치거나 마이크로 방송을 하라고 김경일에게 요청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후 선원 김영호의 제안에 따라 세월호에 접안해서 승객 6명을 구조했지만, 그 뒤로는 다시 세월호에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고무보트가 구해 오는 승객만을 배에 실었다. (161-162)
날씨 좋은 날 기기 고장을 일으킨 여객선이 왜 급하게 기울면서 침몰했는지는 세월호의 전사가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구하지 못했는가는 이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123정이 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조에 소극적이었던 모습은 사진과 영상으로 잡혀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신고를 받고 세월호와 30분 이상 통화를 유지한 진도VTS, 현장에 출동한 123정, 현장에 출동한 세 대의 헬기, 이들을 지휘한 목포해경, 서해청, 본청 구조본부는 왜 적극적으로 승객 퇴선 유도를 하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음모론이 횡행했던 것은 배가 갑자기 넘어간 이유가 납득이 안 되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해경의 행동이 '못 구했다'라기보다 '안 구했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선원과 해경이 담합해서 희생자들을 수장시켰다는 음모론이 횡행했다. (162)
해경은 자신들이 퇴선 명령을 했다가 사망자가 생길 경우에 자신이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한 해경 간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면책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 한 해경은 역시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해경 지도부는 '큰 배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상식을 믿고 있었다. 세월호 같은 배는 적어도 몇 시간, 심지어 며칠 동안도 바다에 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큰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얘기를 듣고, 해경들은 '승객 다 구하고 특진하겠다', ‘123정 상 받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65)
유가족과 시민들은 자신들은 도망가면서 승객에게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선원에 분노했다. 그런데 사실 방송을 한 사람은 3층 안내 데스크에 있던 여객부 직원 강혜성이지, 조타실에서 모였다가 도주한 선원이 아니었다. 9시 22분에 2등항해사가 강혜성에게 연락해서 해경이 오니까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라고 했지만, 강혜성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승객들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있던 3층에 물이 들어 오던 시기까지 강혜성은 열 번 넘게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방송했다. 9시 28분에는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방송까지 했다.(462-466쪽, 793쪽) 학생들의 대화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갑판으로 나가려다 이 방송을 듣고 선실에 머문 사례가 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경우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3층의 일반 승객은 주로 성인들이었고, 이들은 강혜성의 방송을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살았다. 반대로 사망한 학생 대부분은 방송 내용을 공유하면서 선실에 물이 들어올 때까지도 방송을 믿고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물은 서서히 들이친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한 층을 삼켜 버렸다. (169)
세월호 이후 젊은 세대는 '어른의 말을 들으면 죽고, 안 들으면 산다'고 자조적으로 얘기하고는 하는데, 이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낳은 참사 때문이었다. 선원 재판에서 검찰은 강혜성이 명령에 따라 한 번 방송을 했고, 목숨을 걸고 승객의 대피를 도왔다는 점 때문에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469-470쪽) 그러면서 그 책임은 파도 속으로 흩뿌려졌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한탄만이 남았다. (170)
기본 대신에 담합, 눈 감고 아웅 식의 대충주의, 관료주의, 무사안일, 낙관적인 선입견, 방관적 태도, 객실이 더 안전하니 가만히 있으라 방송하는 월권, 법적인 책임만 피하려는 보신주의가 참사를 낳았다. 대한민국은 3만 불 소득에, 세계인이 선망하는 K-문화를 자랑한다. 이 화려한 얼굴 반대편에 곪아 터지는 추한 이면이 있는데, 세월호 참사는 이런 이면의 슬픈 자화상이다. (172)
세월호 참사 조사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다른 정치적 성격이 강한 위원회처럼 여야가 위원을 추천하는데, 참사의 전모를 밝히는 위원회의 경우 이런 정치적 구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다른 위원회처럼) 위원장을 명망 있는 변호사가 맡고 위원 중에 변호사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위원회의 흐름을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쪽으로 몰고 가는 경향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 즉, 구조적인 원인을 밝혀 참사의 전모를 드러내면서 사회적 위험을 경감하고 안전 사회를 구현하는 것보다, 책임자를 색출해서 처벌하는 것이 우선시된다. 형사 재판에서의 유죄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매우 다르다. 세월호 재판에서 자주 드러났듯이 사법주의는 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면 아무 책임도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다. 위원회 내에서 조사위원과 조사관의 역할이 분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 전문성을 가진 조사위원이 실제 조사를 할 수 없고 조사관이 수행한 조사에 대해서 평가하기만 하는 문제도 생긴다. 조사하려는 문제는 잘게 쪼개지고, 참사의 전체 구도를 보지 못한 채로 각 사안에 대해서 티끌만큼의 의문이라도 있으면 이를 의혹으로 부풀려서 다시 조사를 하는 관행이 계속되는 것도 문제다. (173-174)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하나의 정합적인 서사를 갖는 데 실패했다. 왜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면죄부가 부여되었는지, 왜 아직도 어딘가 의혹투성이 같은지, 왜 진실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 자신이 '잊지 않겠다'라고 되뇌면서, 진실이 떠오르기만을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세월호』(2024)가 보여주듯이 "진실은 대체로 모호하고 복잡한 형태로 떠다니고 있어 한 손에 꽉 잡히지도 않는"(809쪽) 것임에도 말이다. 진실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아름다운 그림보다 조각보와 비슷할 것이다. 금방 연결이 안 되는 증거와 자료를 분석하고 검증해서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이를 다시 커다란 그림으로 꿰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174-175)
"받아요! 애기요, 애기!"를 외치며 박호진 학생이 아이를 먼저 구조대에 건네주었다. 그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애기를 살리는 일이 우선이었다. 정차웅 학생은 자신의 구명조끼를 옆 친구에게 양보하고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고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건네주고 사망한 교사도 있었다. 세월호에 걸려 침몰 위기를 맞았어도 끝까지 승객을 구한 어선의 선원들도 있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었다. (176)
『불편한 편의점』 서평을 읽다가 그저께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알라딘에서는 편의점에서 택배 받기를 선택하면 적립금을 주는데(처음엔 500원이었으나 200원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나는 줄곧 집 근처 씨유로 배송을 시키고 찾아가는 일이 잦았다. 그저께도 택배를 받으러 편의점에 들렀더니 (아마도) 점장님이 택배 단골손님이 오셨다느니, 1년 동안 받기로 해놓은 거를 끊을 수도 없고... 라는 등의 말들을 궁시렁궁시렁하는 것을 들으며 어색하게 하하, 웃고 나와서 민망해졌다(그리고 오늘 또 택배를 받아왔다). 서평에서도 언급한 「나는 편의점이 간다」의 화자가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지난 주였나 그때에도 택배를 주면서(또 같은 사람이다) 사업하시냐는 질문을 받고 난감한 적이 있었는데..
소위 ‘장소 힐링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K-힐링이 유행하는 현상에 대한 거부감이 나에게 있는 듯하다. 바뀌지 않을 사회에 대한 낙담과 위안의 추구와 같은 현상이 읽혀서 그런가. 서평의 말마따나 “'서민'·‘소시민'의 생활과 도덕을 유지하는 것만도 모험이 돼버린 오늘날, 피로와 불안을 중지시킬 수 있는 '위안'과 '행복'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기는 하지만, “돌파력을 충전한 소설”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가득한 책들의 세계를 샅샅이 탐구하기엔 인생이 짧다...
권보드래, 「'K-힐링'과 소설의 노스탤지어」
소설이 근대적 양식으로 자립한 것은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성찰과 실존의 실험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문제를 드러내고 위선을 까발리고 고투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소설은 존재하기 어렵다. 제1차 대전 후 세계 소설사의 전개가 보여 주듯 이야기보다 성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경향마저 강력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소설이란 '우리'의 모순을 고발하고 '나‘의 심연을 해부하는 글쓰기 양식이었다. 더 나갈 길에 대한 신뢰, 적어도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을 전제로 소설은 소설다울 수 있었다. 길이 막힌다면? '나'와 '우리'의 교차가 사라지다시피 한다면? 소설은 다른 글쓰기로 진화하게 되리라. 소설과 닮았으되 근대 소설과 판이한 무언가로. '사회적인 것'의 종언은 곧 소설의 종언이다. (188)
애초에 '우리'도 '사회적인 것'도 환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의 좌표를 '우리'로 기만당한 역사가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압력에서 해방돼 저마다의 해방을 교차시키자고, 그러면서 공존의 계기를 증식시켜 보자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상을 상실한 곳에서 나는 불안하다. 혼란스럽다. 여러 갈래의 시선과 주장 사이에서 찢긴다. 차라리 아우성에 귀 닫고 사소한 관계와 취미와 도락 속으로 물러나고 싶다. 뉴스를 피하고 논쟁을 차단한다. 영화나 드라마가 요구하는 주의력조차 부담스럽다. 매일 10분 치 연재분을 먹는 웹소설의 생리에 익숙해진다. 성찰이나 실험은커녕 긴 이야기를 맛보는 것도 힘들어지고, 그저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무용한 습관을 찾을 뿐이다. (188)
K-힐링과 웹소설은 좋은 짝패 같다. 웹소설의 전형적 주인공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월등하다. 로맨스건 판타지건 무협이건 주인공은 실패와 후회로 점철된 1회차 인생 후 n회차 인생을 맞아 무쌍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퀘스트를 성취해 나간다. 시간을 거슬러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거나(회귀) 다시 태어나는(환생) 건 예사고, 다른 시대를 사는 타인의 몸에 깃드는 일(빙의)도 자주 벌어지건만, 한결같이 과제는 분명하고 전략은 명쾌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와 의미를 찾을 길 없는 고난과 명분 붙이기 어려운 우울 등은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주인공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회 차 인생의 경험이 예지·통찰·역량의 자원이 되는 가운데 그의 새로운 인생은 돈·지위·관계에서 사랑·인정에 이르기까지 오직 성공으로 이어진다. 요즘이라면 SNS로 전시하기 맞춤한 호화로운 일상도 부록처럼 따른다. '의미 잃은 존재'와 '길 없는 편력'이라는 근대 소설의 테마는 웹소설에서는 난센스다. (189)
반면 『불편한 편의점』의 인물들은 누구랄 것 없이 문제투성이다. 고립과 실패와 우울은 보편적이다. 회피하고 화내고 허세 부리지만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계몽적이거나 시혜적인 접근은 질색하면서도 호의적 손길과 변화의 계기를 갈망한다. '바보 현인' 독고 씨는 그런 계기로서 맞춤한 존재다. 그는 우월하거나 열등하거나 또는 잘나거나 못난 위계를 교란하면서 참 투박하게도 친절을 베푼다. 원 플러스 원(1+1)이라며 옥수수수염차를 내밀고 폐기 식품이라면서 핫바를 데워 주고 전깃줄을 낑낑 끌어다 추운 날 야외 테이블 옆에 온풍기를 틀어 준다. 독고 씨, 나도 나도. 내게도 한 조각 관심과 돌봄을. 오래된 동네의 작은 편의점이라면 반쯤은 구멍가게일 수 있을 테니, 편의점과 구멍가게 사이 절묘한 균형을 부디. 궁금해하지 않되 진심으로 친절하게, 매뉴얼대로이면서도 나만은 조금쯤 멋대로 편안할 수 있게끔. 세상이 바뀔 리 없으니 작게나마 숨 쉴 공간을. (189-190)
한국 사회가 최종적으로 고향-농촌과 작별한 지도 오래다. 영화 〈집으로...>(2002)와 〈워낭소리〉(2009), 소설 『엄마를 부탁해』(2008)가 전 국민적 호응을 얻었던 그때쯤일까. 얼마 후에는 '응답하라' 시리즈(2012-2016)가 유행했다. 그것은 곧 작별이자 애도의 과정이었다. 가족과 이웃과 평생 가는 인연이라는 정답고도 지긋지긋한 세계에 대한. 이제 그 세계는 사라지다시피 멀어졌다. 생활이 소비 중심으로 압축되고, 소비는 프랜차이즈화되고만 오늘날, 나의 일상은 표준화 속에서 쾌적하다. 낯선 동네에서도 으레 편의점을 찾는다. 비위생과 비표준과 불친절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 취향은 글로벌한 유통망과 트렌디한 신상품에 진작 길들었으니까. 그것이 자생적이고 토착적인 다양성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장소'는 사라지고 '공간'만 남겠구나 탄식하면서도. 노스탤지어는 달콤하지만 생활을 바꾸기란 막막하고도 힘겹다. (190-191)
책의 몫도 소설의 몫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런 만큼 『불편한 편의점』이 1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소식은 일단 반가웠다(꼭 망원동에 건물 올려서 사시사철 <망원동 브라더스> 연극을 공연하실 수 있기를!). '서민'·‘소시민'의 생활과 도덕을 유지하는 것만도 모험이 돼버린 오늘날, 피로와 불안을 중지시킬 수 있는 '위안'과 '행복'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든 돌파력을 충전한 소설을 만나고 싶다. 서민적 위안과 소시민적 행복에 만족한다는 건 타협일 뿐 장기 지속의 해결책일 수 없으니까. 인간은 어리석게도 '삶 밖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누구나 '지금·여기‘를 욕구 불만의 무한 연쇄가 아니라 희망의 계기로 살아 내고 싶어 하지 않는가. 다른 지평의 동력으로서 발본적 성찰과 모험이 간절하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소설의 남은 가능성을 믿고 있나 보다. (194)
24.10.7.
『느티나무 수호대』 읽기. 『모두 깜언』의 주제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문화나 도시 재개발과 환경 문제 등의 연장선. 느티나무가 선생님으로 변하는 판타지가 가미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
24.10.10.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밤 아홉 시쯤 스마트폰을 켰는데, 잠시동안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물음표와 느낌표가 순식간에 몰아쳤다가 사라지는 순간. 종종 한국 작가들의 해외 문학상 수상이나 후보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한강 작가의 문학적 세계가 어느덧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해졌다.
북플 기록을 돌아보면 내가 처음으로 읽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바람이 분다, 가라』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여자의 열매」를 먼저 읽은 것 같았는데... 제목이 주는 끌림 때문에 처음으로 구입해서 읽었던 것 같고, 이후에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는 장면장면이 주는 먹먹함에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고,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몇 개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도서 관련 팟캐스트들도 열심히 들을 때여서 자주 이야기를 들었던 『희랍어 시간』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뒷전으로 밀렸고, 당시의 나는 오만하게도 ‘이제 한강 작가의 작품은 충분히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나왔을 때 잠시 궁금했던 기억이 있지만 찾아보진 않았었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서점을 찾고, 온라인 서점에서도 한강 작가의 책이 없어 구할 길이 없다는 즐거운 소식들이 들린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10여 년 전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돌아보고, 그때 멈추었던 한강 작가의 책들을 들춰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언제나 내 마음에는 쓸쓸한 비관론이 먼저 고개를 들어서 지금의 독서 붐이 순식간에 사그러들 것을 염려하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서 독서를 향유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일상에 더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