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출간된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두 편의 독립된 작품인 은유로서의 질병(1978)에이즈와 그 은유(1989)를 한 권으로 묶었다. 앞에 실린 은유로서의 질병까지 읽은 상태인데, 이 책에서 손택은 주로 결핵과 암이라는 질병을 둘러싼 은유와 신화를 다양한 예술 작품을 통해 파헤친다. 손택의 의도는 질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해석에 반대하며 그러한 해석이 낳는 질병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타파하고 투명성을 회복시키려는 것일 테다. 한데 이와 별개로 읽으면서 종종 들었던 생각은, 사회학자 또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질병과 연결시키는 이미지나 은유가 당대 사회의 분위기와 대중 심리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자료일 수도 있겠다는 점이었다.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전근대적인 사회 분위기가 감정 표현을 질병으로 은유화했다면, 18세기 이후 사회 계층의 변동과 낭만주의는 결핵을 내적 자아의 표출또는 개성화의 한 방식으로, 감수성과 정념의 표출(또는 소모)로 해석하는 데(바꿔 말하면, 은유화하고 이미지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결핵의 발병 원인과 치료 방법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암을 둘러싼 은유는 “20세기의 경제적 인간이 저지르는 부정 행위, 즉 비정상적인 성장, 에너지의 억제, 그러니까 소모하거나 소비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를 요약해 놓은 듯한 상상을 통해 묘사(95쪽)되며 전쟁의 언어에서 나온 은유가 지배적이다.


18세기에 가능해진 새로운 인구 이동(사회적이고 지리적인) 덕택에, 재산과 신분은 그냥 주어지지 않게 됐다. 그것들은 드러내야만 하는 무엇인가가 됐다. , 사람들은 의복(‘패션’)을 둘러싼 새로운 관념, 질병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통해 자신의 재산과 신분을 드러냈던 것이다. 의복(신체 밖을 둘러싸는 외피)과 질병(신체의 내부를 감싸는 일종의 장식)은 자아를 대하는 새로운 태도의 비유가 되기 시작했다. (46-47)


이처럼 결핵이 낭만화됐다는 사실은 자아를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내는 독특한 현대적 행위가 만연하게 됐음을 알려주는 최초의 사례이다. 결핵 환자 같은 용모가 혈통을 구별해주는 표식이라고 여겨지게 되자, 결핵 환자의 용모도 매력적이라고 여겨지게 됐다. () 결핵 환자 같은 용모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연약함이나 뛰어난 감수성의 상징이 되어가자19세기 중엽과 말엽에 산업 제국을 건설했고, 수백 권의 소설을 써냈으며, 전쟁을 일으켜 대륙을 약탈했던 위인들이 점차 뚱뚱해진 것과 대조적으로, 이런 용모는 점차 여성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용모가 되어갔다. (48-49)


그러나 이러한 은유와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미지의 질병이라는 유령을 더욱 두려워하고 현실을 왜곡하기도 했으며, 질병을 가진 자들에게 낙인을 찍어 쉽게 비난할 수 있게 만들어 재활의 의지를 꺾기도 했다. 암을 질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악마 같은 적으로 취급하는 관습 때문에, 암은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질병이(88) 되고, 질병의 이미지가 인과응보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사람들은 암 환자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생기는 병(75)을 가진 사람으로 비난했다. 질병에 대한 이런 공포는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질병에 대한 오해를 낳기도 했다(많은 사람들이 결핵이나 암을 유발하는 특정 성격이 있다고 믿었으며, 어느 영국 의사는 암 예방법으로 지나치게 힘을 쏟지 말고, 삶의 고난을 마음의 평정으로 견뎌내고, 무엇보다 그 어떤 슬픔에도 굴복하지 말라(81)고 말했다!). 손택은 질병에 씌워진 언어와 이미지의 신화를 파헤치고 내쫓으려 하며, 이러한 은유를 이용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암에 대한 우리의 관점, 그리고 우리가 암에 부여하는 은유들은 상당 부분 우리의 문화가 지닌 거대한 결점을 퍼뜨리는 수단이다. , 죽음을 대하는 천박한 태도, 감정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우리의 불안, 우리가 실제로 직면한 성장의 문제를 앞뒤 가리지 않고 대하는 우리의 무모함, 소비를 적절히 규제하는 선진 산업사회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무능력, 점차 가중되고 있는 역사의 폭력을 둘러싼 공포를 정당화하는 우리의 태도 같은 결점을 말이다. 예상컨대, 암의 은유가 생생하게 반영해 주고 있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훨씬 이전에, 그런 은유가 곧 진부해질 것이다. (124)


암을 둘러싼 은유가 대부분 전쟁의 언어를 반영한다는 사실, 나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의 정치 세력이 은유를 독점하려 했다는 사실은 은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암의 은유가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자,숙명론을 조장할 뿐이며, ‘가혹한조치를 정당화해 줄 뿐(119)이라는 사실은 달리 말하면 공포심을 조성하고 어떤 조치든 정당화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은유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 이라고 지칭되는 사회 현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라고 지칭하는 정치세력의 의도까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이것을 질병의 사회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손택은 암이 이해되고 완치되는 비율이 높아진다 해도, 다시 말해 암이 탈신비화된다 해도 끔찍한 그 무엇인가를 암과 더 이상 비교하려 들지 않을 , 온통 신비로움으로 뒤덮여 있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환상을 짊어지고 있는 질병(124)에 다시금 은유가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을 읽는 시점이 이러한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빅데이터 분석도 가능해진 시대이므로, 시간이 지난 뒤 COVID-19(‘코로나19’로 지칭하지 않은 건 손택의 투명성을 지지하기 때문이다)를 두고 발화된 우리의 언어들을 분석하고 2020년을 진단하는 새로운 은유로서의 질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병명이 바뀌는 과정, 끝없이 증폭되는 공포와 그것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세력, 그리고 질병과 환자를 향했던 이미지와 은유들도 함께. 그 시점의 우리는 2020년의 우리를 자랑스러워할 것인가, 부끄러워할 것인가. 많은 일이 있은 뒤에 적어도 우리는 냉철하고 냉정하게 진단했다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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