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김재규에 관한 기사가 실린 잡지를 읽고 잠을 못이룬 적이 있다. 그의 사진, 재판 과정, 최후 변론, 교수형 직후의 얼굴 표정이 어떻더라는 짧은 얘기였는데 가슴이 쿵쿵 뛰고 심장이 조여드는 듯 아파서 놀랐었다. 조만간 그의 존재가 우리 현대사에서 낱낱이 드러나기를 바랬는데 이제 때가 되었는지 TV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짧다.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얘기로는 그의 결단과 비참한 죽음이 설명되지 않는다. 패배자를 기록하지 않는 역사의 교훈일까.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수족이었다는 멍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대통령을 쏘았다고 하여도 결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정희와 차지철의 죽음만으로 유신시대는 막을 내리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도래하리라 믿었다면 그는 어찌할 수 없는 몽상가였던 것이다. 뼛속까지 올곧은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일까. 권력이 탐이 나지 않았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그렇게 무방비로 놓여진 권력이 혼란의 와중에 박정희보다 더한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그는 분명 역사에서 증명되지 못한 한 획을 그었다. 아직은 누구도 어떤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그져 조심스럽게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었나를 모색 중이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장준하에 이르는 숨겨진 얘기가 의미하는 바는 서글플 뿐이다. 그의 훼손된 묘비명을 쓰다듬는 퇴직한 장병의 회한만이 뇌리에 맴도는 2004년도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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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0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중학교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이 사건을 들었어요. 그땐 뭐가뭔지 그저 희미한 안개 속의 어떤 거무스름한 형체처럼... 선생님께선 막 웃고 떠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우리들 곁으로 다니시면서 조용히 집까지 가자고 하시더군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이야기로 대충 들었어요.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드러나지 않고 죽어가는 진실의 실체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도 그저 껍질일뿐...
 

<허난설헌 시선>의 머리말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기생들에게나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은 노리개감으로 불리워지기 위해서 붙여졌던 이름이었을 뿐이다. 어렸을 때에는 간난이, 큰년이, 언년이 등의 아명으로 불렸지만 정작 족보에는 남편의 이름만 실려졌다. 말하자면 일생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게다가 삼종지도와 칠거지악 때문에 여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에게 매어 지내야만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면서 떳떳하게 이름과 자, 그리고 호까지 지니고 살던 여자가 바로 허초희이다.

그는 초희라는 이름 외에도 경번이라는 자를 가졌으며, 난설헌이라는 호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여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그에게는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남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가려내는 행위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스스로가 평범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이 땅 위에서 겨우 스물 일곱 해를 살다가 갔지만 그 짧은 세월 속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여자로서, 그리고 을 살다가 간 것이다.

난설헌의 시가 정한의 눈물로 얼룩지게 된 것은 김성립에게 시집간 뒤부터이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나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이었다.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호당의 동창이었으며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이들 사이에서 혼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김성립은 허초희와 짝이 될 수가 없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얼굴이 못생겼으며 방탕성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보다 너무나 뛰어난 난설헌에게 자존심이 상하여, 그처럼 빗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해서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강가 서당에서 글을 읽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시를 지어 보냈다는 사실까지도 비난하던 시대상황 속에서, 그의 상상력은 자연히 신선세계에 노닐게 되었다. 그가 죽을 무렵에 이르러, 화려했던 친정은 몰락해 가기 시작하였다. 경삼감사로 내려갔던 아버지 초당은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상주 객관에서 객사하였다. 둘째 오빠 하곡은 율곡과 당파 싸움 끝에 갑산으로 귀양갔다. 풀려난 뒤에도 한양성 안엔 들어오지 못한다는 단서가 붙었기에, 금강산을 떠돌다가 끝내 고질병을 얻어서 객사하고 말았다. 아들과 딸이 어려서 죽고 게다가 뱃속의 아기까지 죽었으니, 난설헌의 슬픔과 괴로움은 엎친데 덮친 셈이다.

이러헌 자기의 삶과 갈들을 표현한 것이 바로 <난설헌집>에 실린 211편의 시이다. 난설헌은 죽으면서 자기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만, 아우 허균이 자기가 베껴 놓은 것과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 엮어낸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었다. 특히 중국에는 <난설헌집>에도 실리지 않은 시들이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들 가운데 90편을 뽑아서 이번 기회에 펴낸다. 난설헌에 관한 글들이 많지만 오해인 여사의 난설헌시집과 허미자 교수의 허난설헌연구에서 도움을 받았다. ------1987년 9월 허경진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난설헌의 일대기다. 그녀의 시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마주 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너의 무덤 위에다 술잔을 붓노라/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리라/ 비록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날 수 있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피눈물 울음을 속으로 삼키노라

아마도 피를 토하듯 써 내려갔을 이 시는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이라도 가슴이 미어진다.

아름다운 비단 한 필 곱게 지녀왔어요/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한 쌍의 봉황새 마주 보게 수 놓으니/ 반짝이는 무의가 그 얼마나 아름답던지/ 여러 해 장농 속에 간직해 두었지만/ 오늘 아침 님 가시는 길에 드리옵니다/ 님의 옷 만드신다면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인의 치맛감으론 주지 마셔요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반달 모양 만든 노리개는/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붉은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먼 길에 다니시며 정표로 보아 주세요/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는 않지만/ 새로운 연인에게만은 달아 주지 마셔요

지아비를 향한 이 절절한 소망만 보아도 난설헌이 얼마나 솔직하고 용기있는 여자였는가를 알 수가 있다. 그녀의 사상과 바램은 시대를 앞지르나 두 발을 딛고 선 공간은 하늘을 가린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폐쇄된 양반가였다. 자유롭고 진보적인 친정 집에서의 습관이 몸에 배인 것이 결국은 그녀의 숨통을 조르는 무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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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4-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를 잘못 타고났지요. 혼자 힘으로 시대를 바꿀 수도 없었구요. 그래도 그녀가 있기에, 조선시대의 역사가 쓸쓸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 2004-04-0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게 녹녹치 않을 때마다 그녀를 떠올립니다. 그 지독한 세상에서도 영혼만은 자유롭게 신선의 세계를 노닐었지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은 저도 가끔 하는데, 한살 터울인 오라버니 밑에서 받은 차별이 특히나 서러웠을 때인데, 그것도 '써클'이란 이란 영화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와 구속을 당하는 여성들을 보니 또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이 담장을 넘어 짙은 향기와 빛깔로 가는 발걸음을 잡아끈다. 아침과 저녁으로 발돋움하여 남의 집을 엿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오늘 퇴근 길에는 키가 작아 숨어 있던 동백꽃도 보았다. 동네 어귀에 있는 그 집에는 어지간한 과수는 다 있다. 사과에서 배, 은행나무, 살구, 대추도 있고 모과나무도 있다. 다른 것은 그다지 탐나지 않는데 주먹만한 풋사과가 열리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도심에서는 쉽게 보기 드문 풍경인지라 매번 넋을 놓았다.

집안에 그만한 과수들을 키우자면 어지간히 부지런을 떨지 않고서는 관리가 불가하다. 봄가을로 꼬이는 병충해며 지저분하게 날리는 낙엽이며 마당이 왠만큼 넓지 않으면 이웃들에게도 민폐고 아침 저녁으로 하는 청소도 다음날이면 언제냐 하면서 너저분하기 일쑤다. 그런데 사과나무가 있는 그 집 주변은 늘 깨끗하다. 부지런한 주인을 둔 모양이다. 동네에서 그렇게 잘 키운 나무가 있는 집을 오가며 구경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크나크다.

꽃들의 아낌없는 잔치가 한창이지만 극도로 피폐해진 경제는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건강 하신가요, 별일 없으신가요 라는 가벼운 문안 인사조차도 건네기가 조심스럽도록 살림살이는 힘겹단다. 까맣게 달구어진 얼굴로 종일 길바닥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창백한 내 피부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 내 부모님의 다른 모습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의 널뛰기와는 무관하게 보장된 미래에 안주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다수는 하루하루 불안과 근심 가운데 잠을 이루지 못함을 안다. 문득,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척하는 나를 발견할 때의 부끄러움처럼 현실의 내가 배고픔을 모른다고 세상에 배고픈 자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꽃들이 만개한 이 봄날 생각이 어지럽다. 

남들이 밟아 올라가는 계단 대신에 아무도 가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만을 골라 소신있게 살았다고 자부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런 나를 부끄러워했다. 늘 입으로는 선택이었다고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입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비밀은 때때로 가슴에서 병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잘못들이 곪아 종기가 되었다. 여자는 결혼을 통해 망각의 강을 건넌다고 했던가.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해서 새 가정을 이루게 되면 과거와는 자연스럽게 절연을 한다. 그렇다면 결혼에는 뜻이 없는 나는 결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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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89년 8월이다. 속표지 여백에 초록색의 볼펜으로 선명하게 써 있는 "나는 행복하게 되고 싶지 않다. 다만 생생하고 활동적이길 바란다." 라는 버나드 쇼의 글이 인상적이다. 그로부터 십여 년, 지금의 나는 안일한 행복만을 꿈꾼다. 활동적인 생생함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씁씁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아서 두문불출 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 한 권은 마치 종교나 마약과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책읽기를 시도한 것도 아마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책들을 거의 설렵했으니까.

<아웃사이더의 특징으로 서먹서먹한 감정이나 비현실성을 들 수가 있다. 죽어버려서 사후의 세계의 살고 있는 듯한 이 비현실감은 때때로 청천벼락과 같이 사람들을 엄습한다. 건강하고 신경이 민활할 때는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한 사람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불확실한 방향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보았던 사람에게는, 세상은 두 번 다시 이전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장소일 수가 없다. 안락한 부르조아의 고립 세계에 안주하면서, 그가 보고 접촉한 것을 현실로써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바로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바르뷔스는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고 했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 혼돈이다. 부르즈와에게는 이 세계가 질서 있는 정연한 사회인 것이다. 불합리하고 두려운 불온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부르즈와는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아웃사이더에게는 세상이 합리적인 것도, 질서있는 것도 아니다. 부르즈와의 자기만족인 용인의 태도에 저항하여 아웃사이더가 무정부주의적인 감정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세속적인 관행을 멸시하거나 조소하려고 한 때문만이 아니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는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궁극적인 질서 회복은 바랄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비록 희망의 여지가 없더라도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다. 아웃사이더는 혼돈이 적극적인 것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유태인의 신비 사상에 의하면, 혼돈이라는 것은 질서가 잠재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즉 알은 새가 창조되기 전의 혼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말하지 않으면 안되며, 혼돈에는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다시 읽노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쓴 재기발랄한 주제의 글이지만 무언가 정리되지 않고 엉성한 것이 의미전달이 불분명하다. 아니면 번역상의 오류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류의 글이 더이상 감동을 주지 않을 만큼 감성이 녹슬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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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리만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 이렇게 고통이 될 줄이야.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피를 흘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나라라고? 태국, 필리핀의 사병들에게 지급되는 수당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싸웠다고? 박정희는 자국의 군인들이 받는 대우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짐승같은 인간 취급을 받으며 강제로 차출된 무지몽매한 사병은 중대장이 다리를 잘라 오라면 다리를 잘라 오고 머리를 자르라면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국군의 이야기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박정희는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는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고 그의 욕망은 베트남 파병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낳았다. 미국은 베트남을 식민지화 시키는 백인의 인종전쟁이라는 오명을 벗었고 자국의 군인 일인에게 드는 비용의 삼분지 일도 안되는 비용으로 무지하고 가난했던 한국군을 임대한 것이다.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의 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인터뷰에 숨이 멈출 것 같은 모욕감이 솟구쳤다.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대통령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상은 곧 망해 스러질 듯 흉흉했다. 시뻘건 도끼를 든 공산당이 곧 쳐들어오고 우리는 곧 죽겠구나 싶어 무서워 떨었던 기억, 그 흐린 기억을 잘라내 버리고 싶다. 그 때의 두려움과 공포가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의 망상이었다 할지라도 억울하다.

일 년 중 시시때때로 반공 글짓기 대회와 웅변 대회가 열리고, 나는 곧잘 단상에 나아가 두 손을 뻗어 올리며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곤 했었다. 이승복의 이야기를 외우도록 읽었고 그 소년처럼 살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앞에서 박수를 쳤다. 그들은 다 어떤 이들이었을까. 아무도 내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여주지 않은 그들은 다 누구였을까.

훌쩍 커서 고등학생 된 후에도 반공 글짓기 쓰기와 웅변 대회는 계속되었다. 거기서도 글짓기를 쓰라는 선생님들의 강요는 계속되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그 어감만으로 얼마나 저속하고 웃긴지를 보다 세련된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썼다가 퇴짜를 맞았다. 정말로 그 시절에는 군부대를 둘러 싼 철조망을 따라서 빨간 페인트로 그런 구호가 커다랗게 써 있곤 했다. 불온한 사상을 가진 애라는 타이틀은 꽤 오랬동안 따라다녔다. 슬프고 외롭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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