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하리만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 이렇게 고통이 될 줄이야.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피를 흘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나라라고? 태국, 필리핀의 사병들에게 지급되는 수당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싸웠다고? 박정희는 자국의 군인들이 받는 대우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짐승같은 인간 취급을 받으며 강제로 차출된 무지몽매한 사병은 중대장이 다리를 잘라 오라면 다리를 잘라 오고 머리를 자르라면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국군의 이야기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박정희는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는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고 그의 욕망은 베트남 파병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낳았다. 미국은 베트남을 식민지화 시키는 백인의 인종전쟁이라는 오명을 벗었고 자국의 군인 일인에게 드는 비용의 삼분지 일도 안되는 비용으로 무지하고 가난했던 한국군을 임대한 것이다.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의 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인터뷰에 숨이 멈출 것 같은 모욕감이 솟구쳤다.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대통령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상은 곧 망해 스러질 듯 흉흉했다. 시뻘건 도끼를 든 공산당이 곧 쳐들어오고 우리는 곧 죽겠구나 싶어 무서워 떨었던 기억, 그 흐린 기억을 잘라내 버리고 싶다. 그 때의 두려움과 공포가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의 망상이었다 할지라도 억울하다.

일 년 중 시시때때로 반공 글짓기 대회와 웅변 대회가 열리고, 나는 곧잘 단상에 나아가 두 손을 뻗어 올리며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곤 했었다. 이승복의 이야기를 외우도록 읽었고 그 소년처럼 살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앞에서 박수를 쳤다. 그들은 다 어떤 이들이었을까. 아무도 내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여주지 않은 그들은 다 누구였을까.

훌쩍 커서 고등학생 된 후에도 반공 글짓기 쓰기와 웅변 대회는 계속되었다. 거기서도 글짓기를 쓰라는 선생님들의 강요는 계속되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그 어감만으로 얼마나 저속하고 웃긴지를 보다 세련된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썼다가 퇴짜를 맞았다. 정말로 그 시절에는 군부대를 둘러 싼 철조망을 따라서 빨간 페인트로 그런 구호가 커다랗게 써 있곤 했다. 불온한 사상을 가진 애라는 타이틀은 꽤 오랬동안 따라다녔다. 슬프고 외롭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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