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 낄낄거릴 것도 없고/ 너무 배부를 것도 없고,/ 안다고 알았다고/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 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 엉엉 울 것도 없다/ 뭐드지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 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 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 그 어떤 모습이거나/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정현종의 시집 '한 꽃송이'에 있는 시다. 오늘, 내 기분이 딱 이 만큼이다. 이 사람의 시에는 유독 슬픈 시가 많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다싶을 때 읽기에 적당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가 그렇다.
<무슨 슬픔이>
새벽에, /마악 잠 깼을 때, /무슨 슬픔이 퍼져나간다 /퍼지고 또 퍼진다, /생명의 저 맹목성을 적시며 /한없이 퍼져나간다 /메뚜기가 보고 싶다
<어떤 손수건>
슬프구나 /작년에 입었던 옷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손수건
<슬픔>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덤덤하거나 짜릿한 표정들도 보았고 /막히거나 뚫린 몸짓들도 보았으며 /탕진만이 쉬게 할 욕망들도 보았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이열치열 요법이 우울하거나 슬플 때도 효과가 있다. 그래,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버리면 만사는 오케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짊어지고 살아야할 몫이라면 순응하겠다. 얼키고설킨 인간관계 감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