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 지금 밖에는 엄청 많은 눈이 내린다. 볼 일을 보다 말고 마당으로 나가서 마당과 대문 앞을 쓸고 왔다. 아침 잠이 많아서 일찍 일어나 눈치우기는 불가항력이므로 자기 전에 치우자는 생각이었다. 보다 보다 이렇게 많은 눈은 요 몇 년 동안 처음인 듯 기분이 새롭다. 엎드려 비질을 하는 동안도 한줌은 될 법한 굵은 눈송이가 툭툭 떨어진다. 컴컴한 밤, 골목에 나와 있는 건 혼자다. 눈오는 날 혼자인 것도 그닥 괜찮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새삼스럽게 감상적이 되고 말았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도 눈꽃이 그득 피었다. 손가락 마디만큼 아슬아슬하게 쌓인 눈이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것 같아서 멀찌기 떨어져 섰다. 나무에 눈이 내리며 쌓이는 것이 저렇구나 하면서 열심히 구경하고 섰는데, 그 앞에 밑둥만 남은 목련나무가 괜히 불쌍하다. 옆집에 사는 사람의 이런저런 성화에 올 가을 기어이 베어졌다. 말로는 흉물이라고 무슨 꽃나무가 아름드리 고목이냐고 타박을 주면서 사철 일거리를 만드는 꽃잎이며 낙엽을 구박한 것이 죽도록 후회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커 버린 주택가의 나무는 밀집된 주택가의 이웃에게는 엄청난 민폐였다. 손바닥만한 마당도 시멘트로 발라버리고 풀 한포기 자라는 걸 용인하지 못하는 세상인 탓이다. 조금 멋대로 떨어지고 날라가서 집안을 어지럽힌 들 무슨 큰 해가 된다고 독을 품은 벌레도 아니거니와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데 말이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꽃봉오리가 주렁주렁 눈송이와 쌍벽을 이루었을 터인데 마냥 아쉽다.
그러고보니 내일이 대보름이다. 지금 시골에서는 잔치가 벌어졌으리라. 동네 사람들이 모두 보여 음식을 만들고 하얀 시루떡을 해서 제를 올리고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놀이는 달빛아래 꽹과리며 징을 울리며 흥겹게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하얀 떡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아래서 동네 어르신들이 하얀 종이를 태우는 것을 구경했다. 마을 앞 공동묘지는 그 밤의 놀이터로 변하여 숨박꼭질이며 미끄럼타기로 웃음꽃을 피웠더랬다. 여자아이들은 나이든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쥐불놀이 하는 것을 구경하다 한 번 해 보자고 난리굿을 치곤 했다. 대부분은 겁이 많아서 그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쌩쌩 돌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유난히 괄괄한 언니 하나가 성공을 시키면 좋아라 손뼉을 치고 우러러 봤던 유년, 이 밤에 몹시도 그립다.
눈이 쌓이길 기다렸다 대문 앞을 다시 쓸었다. 낼 아침 늦잠을 자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시골에 사시는 엄마가 동생 편에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만들어 보내셨다. 자식에게 해 먹이는 낙이 없으면 무슨 재미냐며 전화기 너머로 기침을 하신다. 나는 목이 메어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