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책 중 유난히 낡고 바랬음에도 다른 고급 장정의 책에 비해 편애하는  <싸일러스 마아너>의 특이성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웃들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가는 괴팍한 성격의 직조공에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 눈이 내린 추운 겨울 아기 천사가 아장아장 걸어온 것, 이후 독신남 싸일러스 마아너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한다. 

미녀와 야수, 꽃이 피지 않는 정원 등의 이야기처럼 절대 다수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순진무구한 여자 혹은 아이로 인해 감화되어 세상밖으로 나온다는 설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영국 농촌의 계급사회와 종교적 갈등은 대충 넘기고 오로지 관심은 싸일러스 마아너와 에피 사이에 일어나는 자그마한 에피소드들로 거칠고 무지한 남자의 아이 돌보기라는 관점에서 이 보다 재미난 소설은 없을 듯 싶다. 물론 지금 다시 이 책을 펼치면 장황한 묘사와 시대적 배경을 유심히 들여다 볼 테지만 그닥 의식을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내겐 예쁘고 감동적인 작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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