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윌 스미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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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 2035년. 로봇공학의 권위자 래닝박사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추락사한다. 자살인가 타살인가의 논란 속에서 윌 스미스에게 박사로부터의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그는 로봇에 관한 불신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로봇 혐오자이다. 로봇은 절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고 로봇은 인간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로봇공학의 절대불변의 원칙을 거스르는 박사의 개인로봇 써니의 등장과 도주, 추격 속에서 평온했던 도시는 점차 혼란에 직면한다.


한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에 열광했다. 인간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로봇의 등장으로 존재이유를 상실해가는 인간의 불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였는데, 인간이 로봇보다 열등하다는 무척이나 암울한 가설이 충격이었다.


이 영화에 꽤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멋진 윌 스미스, 슬픔과 상실을 이해하는 로봇 써니 등등 볼거리는 상당하지만 엉성하고 허술한 이야기의 흐름에 결국 맥이 빠진다. 재미로만 치자면 나쁘지는 않는데, 욕심이란 원래 그렇다. 조금 더 나은 무엇을 끊임없이 찾는다. 무엇보다 로봇 심리학자로 나오는 키만 멀대 같이 큰 미녀에게 마구 화가 났다. 무슨 박사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머리가 비었다. 로봇 써니가 더 똑똑할 정도다. 감독의 영화 속 여자에 관한 편견이 심한 듯. 어쨌거나 죽어도 죽지 않는 사나이 윌 스미스의 활약은 눈부시다 못해 기상천외하고 반란을 꿈꾸는 로봇들의 일사불란함은 미래를 낙관하지 말자는 메시지로는 더 없이 강렬하다.


SF라면 껌벅 죽는 취향과 함께 로봇의 진화라는 가설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멸해 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절대자 인간을 향해 총을 겨누는, 그렇게 존재이유를 찾아가는 로봇들은 솔직히 무시무시하다. 이 감독의 전작으로 ‘다크 시티’ ‘크로우’가 있다. ‘다크 시티’의 기묘함, 우울함, 오싹한 공포심을 아직도 강렬히 기억하는 탓인지, 역시 전작만은 못하다.  더 대중적이고 가벼워졌지만 완성도에서 부족하다. 그리고 윌 스미스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이만한 재미도 없다면 그것도 우습다. 어디선가 보고 들은 듯한 이야기와 어설프고 급한 마무리, 아쉽고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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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1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을 대학때인가 너무 재밌게 읽었었는데... 그래서인지, 저도 영화는 좀 별로였습니다.. 비디오로 봐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ㅡ.ㅡ;;

겨울 2004-12-1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상상했던 것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노력에는 끊임없는 박수를.....
 

겨울, 그리고 연말의 스산함이 아침과 낮, 저녁 내내 꼬리를 드리운다. 늘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삶이라 계절이 혹은 해가 바뀐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바쁘게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안부인사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가 풀어졌다가 한다. 남의 일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참견하는 사람을 두고 오지랖도 넓다고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적절한 때가 있다.

새해에는 조금만 더 밝고, 건강하고, 따뜻하기를 소망한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한다. 아무리 혹독한 현실일 지라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낙관하는 여유가 아주 조금 있었으면 한다. 남의 행복을 시샘하지도 말고, 내 불행을 비관하지도 말고 사는 건 다 그래라고 웃는 가난하지만 소박한 마음이 풍성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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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1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님처럼 빌고싶네요...^^*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마태우스 2004-12-1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가 바뀌면 많은 게 바뀔 것 같지만, 일상은 그대로고, 나쁜 사람은 여전히 나쁘더군요. 그런 세월들이 쌓이면서 이젠 해가 가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무덤덤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님의 말씀에 딴지를 걸어서요...

겨울 2004-12-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지라니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

 

 

........ 죽음을 앞에 둔 중위는 묘한 도취를 맛보았다. 이제부터 자신이 시작하는 것은, 일찍이 아내에게 한번도 보인 적이 없는 군인으로서의 공적인 행위였다. 전쟁터에서의 결전과 똑같은 결의가 필요한, 전쟁터에서의 죽음과 동등동질한 죽음이었다. 자신은 지금 전쟁터의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잠깐 동안 중위를 알 수 없는 환상 속으로 이끌었다. 전쟁터의 고독과 죽음과 눈앞의 아름다운 아내, 이 두 가지 차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도 없는 둘의 공존을 구현하며 지금 자신이 죽으려고 하고 있다는 이 감각에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미로운 것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아내의 아름다운 눈이 자신의 죽음 한순간 한순간을 시중들어 주는 것은, 향기 짙은 미풍을 맞으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무엇인가가 허락되어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모르는 경지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경지가 허락되어 있는 것이었다. 중위는 눈앞에 있는 새색시처럼 아름다운 군기와, 그것들 모두가 화려하게 미화된 환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들은 눈앞의 신부와 마찬가지였으며, 어디에서라도,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맑은 눈빛을 발하며 자신을 주시해 줄 존재였다. 레이꼬도 또한,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남편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군복이 잘 어울리는 중위는 그 늠름한 눈썹, 그 꾹 다문 입술과 함께,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아마도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리라.


<우국>은 미시마  유키오가 어떤 인물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편이다.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동료들과 더불어 죽기를 결심한 다께야마 신지 중위는, 그의 어린 아내에게 자신의 할복을 지켜볼 것과 그 후, 더불어 자결할 것을 권한다. 이것은 그들이 죽음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과장도 가식도 없이 이성적이며 냉정하게 묘사한 글이다. 죽음을, 할복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섭도록 잔인하다 싶으면서도, 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의 소설로써는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강렬하여 충격을 던진다. 아내 앞에서 배를 가르는 남편과, 그것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며 극한의 고통에 다다른 남편에게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는 아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나는 한 때, 그들의 식민지였던 과거의 역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같은 일본의 다른 얼굴에 대해 무조건 경계한다. 그들 나라의 영웅에 대해서도 괴물을 연상한다. 물론, 애국지사라는 이름의 괴물은 어디에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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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2-1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는 자살을 죽음의 미학으로 승화하기까지 한다고 하더군요. 자살에 대한 인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모순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곳이 일본이라고 합니다.

겨울 2004-12-1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 안에서의 자살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휩쓸립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글은 특히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아름답네요.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아주 미약하다. 이런 책, 이런 만화 절대 안 읽어 라며 고집을 피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그 싫다는 만화를 읽고 헤벌쭉 웃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간사한 마음이다. A가 추천하며 설명을 할 때엔 괜히 딴청을 피우다가 B가 좋다고 하니 그러냐? 하며 당장에 읽어치우는 고약함이라니. 도대체 나는 언제나 철이 들려나. 




오늘부터 우리는!!! 날라리가 되자고 결심한 순간 제일먼저 하는 일은? 미장원에 달려가 번쩍이는 금발로 염색을 하는 것? 혹은 밤송이처럼 머리를 세우는 것? 그리고 시작되는 좌충우돌 고교일기는 그야말로 폭소열전. 일본 만화 속에 학원 폭력물은 흔하디 흔한 소재다. 그런데 그 흔한 소재를 가지고 이 작가는 맛깔스럽게도 버무렸다. 영웅주의도 비장미도 없이 남들보다 튀어보자는 일념 하에 험난한 날라리의 길에 들어선 두 주인공의 행태는 순전히 웃어보자는 의도 외에 아무것도 없다. 눈물나도록 얄팍한 의리와 우정이 구현되는 순간조차도 허무하게 웃기다. 귀여운 건지 순진한 건지 모자란 건지 도통 헷갈리지만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졸렬한 속임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란 없다. 묵사발이 되도록 두들겨 맞아도 그만큼의 복수열전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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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0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아니고 페이퍼에 올리셨군요..^^ 별점을 몇개나 주셨을까가 궁금합니다..

저도 선입관 때문에 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웬지 바보같은 느낌이라서..

한데, 님이 재밌다고 하시니 생각이 달라지는군요.. 저도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와져 볼까요? ^^

겨울 2004-12-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셔요, 꼭.^^ 전 당연히 날개님은 보셨으리라 생각했어요. 별 다섯은 무난합니다. 사실 애장판으로 이제 겨우 두 권을 읽은 상태라 리뷰까지는.... 아마 읽어갈 수록 감탄사를 쏟아낼 듯 합니다. 엄청 기대하고 있지요.^^
 
웨일라이더 - [할인행사]
니키 카로 감독, 케이샤 캐슬-휴즈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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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포스터의 푸른빛만큼이나 온통 푸른색 일색이다. 바다가 그렇고 하늘이 그렇고 들판이 그렇다. 그러나 시리도록 선명한 파랑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여기서의 푸르다는 잿빛이  도는 푸르다니까. 그래서 내도록 우울하다가 가슴이 아프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뽑아내는 것일까. 태어나면서 엄마와 쌍둥이 오빠의 죽음을 밟고 선 파이의 삶이 눈부신 아침 같으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아빠에게 버려지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질책, 외면, 거부당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마음이 아리다.


마오리족 족장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전사가 되는 수업에도 훈련도 참여하지 못하고 내쫓긴 파이가 한 행동은? 숨어서 질질 짜는 것이 아니다. 벽 뒤에서, 창문 밑에서 몰래 훔쳐보거나 듣고, 그것을 들켜 할아버지에게 모질고 단호한 꾸중을 듣지만 결코 시선을 돌려 도망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과 관습을 수호하는 할아버지의 고집은 명민하고 반듯한 파이의 자질과 지혜를 외면하고 상처 위에 상처를 더할 뿐이다.


어느 날, 해변에 고래 떼가 밀려와 죽어가고 할아버지는 절망한다. 이에 파이는 과감히 우두머리 고래의 등에 올라타 바다로 돌아가자고 속삭인다. 병들고 지친 고래를 치유하는 파이의 부드러운 손짓에 죽은 듯 누워있던 고래는 천천히 꼬리를 흔들고, 이윽고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뒤늦게 파이를 발견한 할머니는 울부짖고, 할아버지는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고래와 함께 바다 속을 유영하는 파이의 모습은 감동과 환상의 도가니다. 고래를 타고 온 소년이 부족의 선조였다는 역사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마오리족은 현대문명과의  충돌에서 처참히 패배하여 몰락의 길을 걷는다. 남자들은 집과 가족을 떠나 떠돌고 아이들은 전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늙고 병든 이들만이 과거의 노래와 춤을 기억하여 들려줄 뿐이다. 이에 할아버지는 새로운 지도자의 도래를 너무도 간절히 원해 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죽은 듯 누워있는 파이의 창백한 뺨을 만지며 속삭인다. 지도자여........


이전에 본 마오리족에 관한 영화로 <전사의 후예>가 있는데, 그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마오리족 전사들의 분장과 춤은 정말 인상적이다. 부릅뜬 눈과 길게 내미는 혀로 적을 압도하며 두 발로 힘차게 땅을 구르며 추는 역동적인 동작이 아름답고도 기괴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문명의 이기 반대쪽에는 이렇듯 정신적인 것을 수호하는 이들의 희생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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