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머리카락을 잘랐다. 계절 탓인지, 기분 탓인지 딱히 길다고 말할 수 없는 머리가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신경에 거슬려 인상을 푹푹 쓰다가,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나는 미용실이란 일상적이고 사적인 공간이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반드시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배려를 가장한 내키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는데, 하루 일과를 끝내고 들린 그곳에서의 수다가 내게 즐거울 리가 없다. 종일 이런저런 말들로 오염된 생각과 머리를 쉬기 위해 눈을 감고 침묵을 유지하기가 좀처럼 요원하다.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른 후, 대여섯 군데의 미용실을 이용했다. 그 중, 가장 솜씨가 일품이었던 남자미용사가 가게 이전을 한 후로,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을 했다. 빠르고 조용한 곳이라는 조건에 맞춰 대충 자르다보니, 미용실에 가는 것이 더 고역으로 느껴져 하루 이틀 미루다보면 ‘머리를 자르는’ 일이 해치울 숙제로 남아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머리 자를 때 됐지? 라고 묻는 건 예사고, 겨우 시간을 내서 들렀다가 기다리는 손님이 있을라치면 대기시간을 참지 못해 뛰쳐나오고, 그러다가 결국엔 또 다른 미용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에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간 오늘, 크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작은 미용실을 발견했다. 남자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미용사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여기다, 싶어서 불쑥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손님과 미용사의 대화에서 상당히 오랜 단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끔하게 생긴 청년의 인상도 좋고,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얼굴의 미용사도 맘에 들고, 책도 술술 읽혀서 기다리는 30여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길게 자를까, 짧게 자를까를 결정하지 못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시원하게 잘라달라고 주문했다. 대책 없이 시원하게라니, 그럼에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삭삭 가위질을 하고, 퍼머를 하지 않고도 볼륨을 넣는 법을 강의까지 곁드려 시야를 가로막고 목덜미를 누르던 이물질을 순식간에 제거해 주었다. 보통 눈을 꼭 감고 머리가 다 잘릴 때까지 기다리던 내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히 날렵하고 빠른 솜씨였다. 커트를 잘 치신다고 한마디 하였더니, 익히 듣는 소리라며 크게 웃으셨다. 단골들이 시간을 정해서 오는 일이 많고, 퍼머 손님보다도 남자손님이 절대적으로 많단다. 허름한 간판에 낡은 인테리어의 오래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솜씨만큼 빠르게 살아오신 얘기를 풀어 놓는 그녀의 걸쭉한 입담에, 나는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가 있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나도 그녀처럼 시원하게 귀를 드러내는 커트를 칠 런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