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이 담장을 넘어 짙은 향기와 빛깔로 가는 발걸음을 잡아끈다. 아침과 저녁으로 발돋움하여 남의 집을 엿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오늘 퇴근 길에는 키가 작아 숨어 있던 동백꽃도 보았다. 동네 어귀에 있는 그 집에는 어지간한 과수는 다 있다. 사과에서 배, 은행나무, 살구, 대추도 있고 모과나무도 있다. 다른 것은 그다지 탐나지 않는데 주먹만한 풋사과가 열리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도심에서는 쉽게 보기 드문 풍경인지라 매번 넋을 놓았다.

집안에 그만한 과수들을 키우자면 어지간히 부지런을 떨지 않고서는 관리가 불가하다. 봄가을로 꼬이는 병충해며 지저분하게 날리는 낙엽이며 마당이 왠만큼 넓지 않으면 이웃들에게도 민폐고 아침 저녁으로 하는 청소도 다음날이면 언제냐 하면서 너저분하기 일쑤다. 그런데 사과나무가 있는 그 집 주변은 늘 깨끗하다. 부지런한 주인을 둔 모양이다. 동네에서 그렇게 잘 키운 나무가 있는 집을 오가며 구경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크나크다.

꽃들의 아낌없는 잔치가 한창이지만 극도로 피폐해진 경제는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건강 하신가요, 별일 없으신가요 라는 가벼운 문안 인사조차도 건네기가 조심스럽도록 살림살이는 힘겹단다. 까맣게 달구어진 얼굴로 종일 길바닥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창백한 내 피부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 내 부모님의 다른 모습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의 널뛰기와는 무관하게 보장된 미래에 안주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다수는 하루하루 불안과 근심 가운데 잠을 이루지 못함을 안다. 문득,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척하는 나를 발견할 때의 부끄러움처럼 현실의 내가 배고픔을 모른다고 세상에 배고픈 자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꽃들이 만개한 이 봄날 생각이 어지럽다. 

남들이 밟아 올라가는 계단 대신에 아무도 가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만을 골라 소신있게 살았다고 자부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그런 나를 부끄러워했다. 늘 입으로는 선택이었다고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입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비밀은 때때로 가슴에서 병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잘못들이 곪아 종기가 되었다. 여자는 결혼을 통해 망각의 강을 건넌다고 했던가.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해서 새 가정을 이루게 되면 과거와는 자연스럽게 절연을 한다. 그렇다면 결혼에는 뜻이 없는 나는 결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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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89년 8월이다. 속표지 여백에 초록색의 볼펜으로 선명하게 써 있는 "나는 행복하게 되고 싶지 않다. 다만 생생하고 활동적이길 바란다." 라는 버나드 쇼의 글이 인상적이다. 그로부터 십여 년, 지금의 나는 안일한 행복만을 꿈꾼다. 활동적인 생생함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씁씁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아서 두문불출 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 한 권은 마치 종교나 마약과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책읽기를 시도한 것도 아마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책들을 거의 설렵했으니까.

<아웃사이더의 특징으로 서먹서먹한 감정이나 비현실성을 들 수가 있다. 죽어버려서 사후의 세계의 살고 있는 듯한 이 비현실감은 때때로 청천벼락과 같이 사람들을 엄습한다. 건강하고 신경이 민활할 때는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한 사람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불확실한 방향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보았던 사람에게는, 세상은 두 번 다시 이전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장소일 수가 없다. 안락한 부르조아의 고립 세계에 안주하면서, 그가 보고 접촉한 것을 현실로써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바로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바르뷔스는 보여주고 있다.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고 했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본질에 있어서 혼돈이다. 부르즈와에게는 이 세계가 질서 있는 정연한 사회인 것이다. 불합리하고 두려운 불온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부르즈와는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아웃사이더에게는 세상이 합리적인 것도, 질서있는 것도 아니다. 부르즈와의 자기만족인 용인의 태도에 저항하여 아웃사이더가 무정부주의적인 감정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세속적인 관행을 멸시하거나 조소하려고 한 때문만이 아니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는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궁극적인 질서 회복은 바랄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비록 희망의 여지가 없더라도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다. 아웃사이더는 혼돈이 적극적인 것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유태인의 신비 사상에 의하면, 혼돈이라는 것은 질서가 잠재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즉 알은 새가 창조되기 전의 혼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말하지 않으면 안되며, 혼돈에는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다시 읽노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쓴 재기발랄한 주제의 글이지만 무언가 정리되지 않고 엉성한 것이 의미전달이 불분명하다. 아니면 번역상의 오류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류의 글이 더이상 감동을 주지 않을 만큼 감성이 녹슬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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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리만치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 이렇게 고통이 될 줄이야.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피를 흘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나라라고? 태국, 필리핀의 사병들에게 지급되는 수당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싸웠다고? 박정희는 자국의 군인들이 받는 대우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짐승같은 인간 취급을 받으며 강제로 차출된 무지몽매한 사병은 중대장이 다리를 잘라 오라면 다리를 잘라 오고 머리를 자르라면 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국군의 이야기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박정희는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는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했고 그의 욕망은 베트남 파병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낳았다. 미국은 베트남을 식민지화 시키는 백인의 인종전쟁이라는 오명을 벗었고 자국의 군인 일인에게 드는 비용의 삼분지 일도 안되는 비용으로 무지하고 가난했던 한국군을 임대한 것이다.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의 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인터뷰에 숨이 멈출 것 같은 모욕감이 솟구쳤다.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대통령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세상은 곧 망해 스러질 듯 흉흉했다. 시뻘건 도끼를 든 공산당이 곧 쳐들어오고 우리는 곧 죽겠구나 싶어 무서워 떨었던 기억, 그 흐린 기억을 잘라내 버리고 싶다. 그 때의 두려움과 공포가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의 망상이었다 할지라도 억울하다.

일 년 중 시시때때로 반공 글짓기 대회와 웅변 대회가 열리고, 나는 곧잘 단상에 나아가 두 손을 뻗어 올리며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곤 했었다. 이승복의 이야기를 외우도록 읽었고 그 소년처럼 살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앞에서 박수를 쳤다. 그들은 다 어떤 이들이었을까. 아무도 내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여주지 않은 그들은 다 누구였을까.

훌쩍 커서 고등학생 된 후에도 반공 글짓기 쓰기와 웅변 대회는 계속되었다. 거기서도 글짓기를 쓰라는 선생님들의 강요는 계속되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그 어감만으로 얼마나 저속하고 웃긴지를 보다 세련된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썼다가 퇴짜를 맞았다. 정말로 그 시절에는 군부대를 둘러 싼 철조망을 따라서 빨간 페인트로 그런 구호가 커다랗게 써 있곤 했다. 불온한 사상을 가진 애라는 타이틀은 꽤 오랬동안 따라다녔다. 슬프고 외롭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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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로 말주변도 없고 남을 웃기는 재주는 더더구나 부족하다. 그래서 가끔 힘들다 힘들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그렇다고 미주알 고주알 내뱉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다. 사람 사는 거 다 그래, 하는 뻔한 소리도 한두번이고 그 정도는 고민 축에도 안들어간다고 일축하기도 난감할 때면 웃기는 소리 한마디가 딱 떠올라줬으면 싶을 때가 있다. 눈물이 쑥 빠지도록 한바탕 웃고 나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졌으면 싶다.

아는 이 중에 바라만 봐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늘 웃는다. 사소한 일에도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고 놀라고 목소리를 높여 흥분을 한다. 같이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눈매가 풀어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를 보고 나면 한동안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단지 존재감만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녀처럼 나도 간절히 그러고 싶다.

물론 화낼 일에 화내지 않고 부당한 일을 모른척 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가 공감하는 부조리에 얼굴을 붉히고 성토하는 모습이란 정말 아름답다.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 용기를 가진 이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는 미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사는 일이 누구에게는 가벼울까마는 유난히 그것이 버거워 보이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일상이 주는 권태를 도무지 참을 수 없어하는 성질 급한 이도 있다. 행복이, 만족이 손에 잡히는 거라면 덥석 집어서 건네주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다. 아이라면 타이르고 충고라도 하련만 다 큰 어른에게는 그것이 쉽지를 않다. 저마다 살아온 고유의 방식이 있고 고집과 함께 아집이 있어 틀린 것을 틀리다 해도 왠만해선 수긍하지 않는다. 그게 어른이다.

지난 토요일엔 멀리서 머리 꼭지만 보아도 행복한 사람과 삶은 한없이 괴롭다 말하는 두 종류의 지인을 만났다. 나는 어느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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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3-2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 문득 님이 전에 코스모스를 좋아하신다는 글귀가 떠올라 한송이 올립니다.


겨울 2004-03-2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작년에 받아둔 코스모스 씨가 있는데 올 가을엔 꼭 뿌려볼 생각입니다. 어릴 적 시골 학교 하교길에는 유난히 코스모스가 흔했는데 당시의 애들 키보다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꿀을 따는 벌을 잡느라 해 지는 줄 몰랐죠. 신발을 벗어 가만히 벌을 잡아 챈 다음 팔을 휘둘러 돌리다가 땅바닥에 홱 던지면 기절 직전의 벌이 비틀거리며 신발 속에서 걸어나오죠. 지금 생각하면 참 잔인한 놀이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지간히 심심하지 않고서야 그 무서운 벌을 잡았을까요?
 

요즈음 내 인생의 목적은 건강하게 살기다.

TV 시청도 건강프로를 찾아 즐기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먹거리와 그렇지 않은 것에 귀기울여 듣고 실천하려 애쓴다. 사람의 나고 죽음은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 교만하게도 20대 나이에는 몸과 마음을 학대하기를 서슴치 않았는데, 그 결과는 참담해서 나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많은 폐를 끼쳤다.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얻은 것은 겸손이고 버린 것은 교만이다. 몸에 대한 과신은 몸의 이상신호를 우습게 여겨 병을 키우고 그 결과 경제적 시간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얻었을 뿐이다. 일찌기 책읽기의 재미를 알아 늘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적이 없었던 것도 건강을 헤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없는 곳을 찾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읽기에 몰입하는 것은 좋았는데, 그것이 평생을 걸쳐 계속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은 완치가 되었지만 가장 최근에는 폐결핵 진단을 받았었다. 그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오랜 시간 약을 복용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던 내 몸에 대한 불신과 그 동안의 생활습관, 먹거리에 대한 점검을 하게 되었다. 먹는 것을 즐기지 않다보니 식욕이 없으면 굶는 것이 다반사이고 원래부터 검소, 소식을 넘어서 아예 안먹고 사는 법이 없을까 긍긍 하였던지라 설령 몸이 그것을 원해도 의지로서 차단하고 했었다.

결핵을 치료하는 약이란 것이 얼마나 독한지를 강조하면서 의사는 내게 최대한 영양가 있는 것을 골라 먹으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약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서 간이나 위가 상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 아닌 협박에 거의 입에 대지 않던 고기와 생선을 먹어야 했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매끼 약과 함께 먹어야 하는 밥도 고역인데, 익숙하지 않은 고기를 씹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년 여를 살았다.

지금은 가끔 그 냄새와 생김생김을 의식하지 않고 삼겹살을 사다 구워 먹기도 하고 삼계탕의 닭다리를 건져 뜯어 먹기도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사람들이 좋다는 현미밥에 가능하면 콩을 넣어서 밥을 지으려 한다. 몸에 좋은 것을 먹는 것 보다 몸에 나쁜 것을 먹지 않는 게 낫다는 지론에는 여전히 찬성하지만  굳이 찾아 먹지는 않더라도 가족들이 먹으라 하는 것은 먹으려고 노력한다.

근래에는 요가에 관련한 책과 비디오를 구입해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요가 동작을 따라하다보니 그 전에 기본적인 스트레칭 법부터 익혀야겠다 싶어서 '스트레칭30분'이란 책도 구입했다. 상당히 효과적이다. 전문가로부터 코치를 받을 일이 없는 일반인이 보고서 따라하기에 적합하다. 혼자 생각에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이러나 하다가도 단순히 삶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즉 건강한 죽음에 관한 문제라는 자각도 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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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3때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감기가 오래간다 싶더니 그렇더군요. 그래도 휴학은 하지않고 약 먹고 주사 맞으면서 고3 공부 해냈던 기억이 나네요. 님의 글을 읽다가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건강,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니다. 저도 요즘 요가를 하고 있어요. 명상과 함께 하는데 정말 좋아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님의 글도 좋습니다. 건강합시다. 몸도 마음도^^

겨울 2004-03-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제가 아파 보니까 의외로 주변에는 결핵을 앓았던 분들이 많더군요. 이런저런 격려와 충고를 주고 받았는데, 여기서도 뵙네요. 요가와 명상을 통해 늘 평화롭고 밝은 날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