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더위와 치룬 전쟁에서 유일하게 건져올린 것이 있다면 이 책 ‘단테 클럽’을 완독했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끝내고 이렇게 뿌듯해 보기는 또 처음이지 싶다. 어지간해서는 더위를 모르는 체질이라고 자부했는데 올 해는 어쩐지 식욕도 뚝 떨어지고 밤에는 몇 번이나 자다깨다를 반복했으며 힘들다 지친다는 소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19세기 중엽,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이 장황한 소설 속에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해서 흥미를 더하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신곡’의 번역을 둘러싼 대학과 학자들 간의 질시와 대립을 통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암시한다. 인종차별, 종교,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등장한 단테가 퇴역한 한 군인의 정신에 어떻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살인의 도구로 이용하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운 한편 슬픔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전쟁의 참혹함이 부른 결과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반인륜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상식이나 도덕이 사라진 세계, ‘노예해방’이라는 고상한 목적은 사라지고 전쟁광에 의한 무자비한 살육이 판을 친 깊은 정글과도 같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연쇄살인범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에 가슴을 친 것은 오로지 연민이었다.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 혹은 슬펐다는 한마디로 책장을 덮어버리는 일이 때때로 아쉬운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러한 경우인데 다행히도 부록이 있어 미진함을 채웠다. 열대야와 불면, 그리고 ‘단테클럽’이라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으로 긴긴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렀기를 희망하며 다음엔 뭘 읽을까 궁리하다가 ‘제인에어 납치사건’이 떠올랐다. 누가 뭐래도 여름엔 추리소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4-08-12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단테클럽이 다빈치코드보다 재미있죠???
 

폭염에 애꿎은 감나무가 몸살을 앓는다. 얼마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감나무잎을 갉아먹어 하얗게 줄기를 드러낸 것이다. 더 이상 방관을 하다가는 조만간 새끼손가락 반만한 송충이가 벽을 타고 기어내려올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처음은  있기 마련, 농약과 분무기를 준비하고 긴 소매, 긴 바지에 마스크, 모자까지 갖춘 뒤 약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왠지 어설픈 게 조준도 엉뚱하고 금방이라도 독성이 강한 약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았는데, 시행착오를 거쳐 숙달이 되자 약을 치는 손이 점점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생각해보니 해충약의 원액과 물의 비율도 대충 맞추어서 낼이나 모래쯤 벌레가 살아있다면 다시 시도를 해야할런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그 일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백배정도 홀가분했다. 감알이 제법 실하게 커서 그 위에 허연 농약을 뿌리기가 저으기 꺼려졌지만 작년에 기하급수적로 불어난 벌레에 기겁을 하고 놀란 것을 떠올리면 절대 눈감아줄 수 없다. 어떨땐 차라리 나무를 베어버릴까하는 충동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가을에 붉게 읽은 단감을 따서 먹는 얍삽함을 생각하며 올해도 저 징그러운 벌레와 맞서야한다.

샤워를 하고 땀을 식히는데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낼 찾아뵙기로 했는데 꼭 올 것인지를 확인하시는 거다. 감나무에 벌레가 생겼다고 징그러워 죽겠다고 하자 껄껄 웃으신다. 나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해마다 겪으신 일이다. 벌레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세세한 설명도 곁들이신다. 함께 살 땐 매사에 건성건성 듣는 둥 보는 둥이었다. 맛난 열매가 익기까지 자잘한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리석게도 잊고 있었다. 심어놓고 기다린다고 기다리는 고추가 열리지 않듯, 비료를 줘야할 시기가 있고 아침 저녁으로 물도 줘야하고 또 가장 중요한 햇빛이 있어야하는데, 앞뜰에 심어놓은 고추나무는 부러질 듯 가늘고 모양새도 산만하다. 할머니가 보시면 기가막힌 웃음소리를 내실 듯...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갈대 2004-08-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이 효과를 발휘하여 가을에 맛난 단감이 열렸으면 좋겠네요^^

겨울 2004-08-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일어나 보니 꽤 많은 숫자의 벌레가 꿈틀꿈틀 기어다니더라는... 벌레 중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것도 있을 터, 그러나 결코 눈 뜨고는 못볼 것들...
 

비교적 타인의 허물에 관대한 편이다. 약간 헐렁하고 조금 모자르고 적당히 없으면서도 여유는 만땅인 사람을 좋아한다. 때에 따라서 말을 가리지만 꼭 필요한 말은 적절하게 하는 사람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타인의 단점만을 꼬집거나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있거나 살면서 한번은 있을 법한 실수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거리감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천성적으로 타고난 나쁜 습관이나 말버릇은 그 사람의 고유한 개성으로 치부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 좋은 게 좋고, 나빠도 최악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봐주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성격, 어떤 불운도 내게 오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일 중의 하나가 되고 또 행운도 역시 그렇다. 크게 기뻐하지도 않지만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을 유심히 보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지도 않고, 차례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렸다가 볼 일을 본다. 끼어들기도 무단횡단도 마냥 서툴고 비교적 먼 거리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먼저 소리내어 부를 줄도 모른다. 그가 알아보기를 기다렸다가 모르고 지나가면 그런가보다한다.

그러나 내가 참고 감싸서 감춰질 성질의 실수가 아닌, 극단적인 처치가 필요한 실수를 한 그녀를 보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 아무리 가벼운 인연도 내 쪽에서 끊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우울하다. 마주치면 웃고 말하고 기분좋게 헤어지고 다시 만났던 사람과 어떻게 지금의 웃는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로 대해야할지 난감하다. 나 한사람이 손해를 감수하고 끝나는 문제라면 상관이 없지만 다른 이와 얽힌 이 매듭은 몹시 거북하고 불편하다.

어떤 사람도 돈 앞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대개 한 번은 복권의 당첨을 꿈꾸고 거리에서 눈 먼 돈을 줍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인을 모르는 돈을 슬쩍 주워 갖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주머니에서 꺼내가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불가하다. 그리고 그런 돈에는 재앙이 따른다. 그렇게 쉽게 남의 것이  내 것이 될 리가 없잖은가. 제대로 돈을 쓰는 사람이 제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고,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돈 씀씀이를 관찰하면 대충 답이 나온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는 못해도 그것이 내 게 아닌 남의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만은 기억하는 인간을 지향한다. 아, 그럼에도 꿀꿀하다. 미운 건 사람이 아니라 돈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인의 책장에서 건져올린 책 한 권으로 무더위를 난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배는 여름 한 낮에 달달달 돌아가는 선풍기를 옆구리에 꿰차고 앉아서 전우익 할아버지의 나무 이야기를 읽는다. 사는 일이 별다르냐고 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10년, 20년 자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면 된다고 조곤조곤 타이르고 어루만져 주시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촌사람이라 나무 얘기, 채소 얘기, 곡식 얘기만 나오면 귀가 솔깃하다.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다가 아침 저녁으로 눈도장, 손도장, 발도장을 찍어주는 정성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안 탓이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는 요즘도 아침과 저녁으로 옥수수밭에 다니신다고,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에도 기어이 갔다오시더라고, 엄마는 불안해 하신다. 작년인가 논두렁에서 굴러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하시고도 벌써 잊으셨나. 오늘도 종일 할머니의 전화만 대여섯 통을 받았다. 한가지 생각에 골몰하시면 해결이 날 때까지는 멈추지를 않는다.

어쩐지 이 세상과는 다른 별세계의 주인같으신 할아버지..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시기를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밀밭 2004-07-2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세계의 주인 같으신 할아버지. 저도 이 분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 책은 읽지 않았지만요. 무더위를 날 수 있는 책 한 권 저도 기억할래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무더위도 잊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님도 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5학년인 현이가 이제는 슬금슬금 책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당장은 아니라도 일 년이나 이 년 후 정도에는 읽을 법한 책들을 골라서 가져가라하니 입이 함지박이다. 어떤 것은 너무 낡아서 누렇게 색이 바랬고 곰팡이 냄새도 풍기지만 적어도 한 번은 읽어주라 당부를 한다.

흥미롭게 읽히는 톰 클랜시, 클라이브 커슬러, 딘 R 쿤츠, 존 그리샴을 일차로 골라냈다. 보통은 한 번 이상을 읽었던 책이고 남자아이가 좋아할 법하다. 그 다음이 간디, 헬렌 켈러 , 링컨, 처어칠, 러셀 등 언젠가 한번은 호기심에 들춰볼 전기류.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풀어 쓴 세계사, 한국사, 일본, 중국에 관한 잡다한 책들. 그리고 세계명작 중에서는 스릴과 모험 위주로. 이빨 빠진 배가본드도 몇 권 있고, 역시 이빨 빠진 고스트 바둑왕도 있다. 만화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아낌없이 줄까. 아시모프의 로봇시리즈도 곁들이고... 베르베르의 '개미'와 '타나토 노트'..     

겹겹으로 쌓아놓고 대책없이 바라보던 책장의 빈자리가 그다지 쓸쓸하지 않은 것은 썩 좋은 주인을 찾아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 그렇게 빠진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즐거운 내 몫이다. 책 구경도 희귀했던 시절에 장에 가셨던 아빠가 사오신 한아름의 헌책을 끌어안고 좋아라했던 기억이 있다. 눈물나게 행복했다. 책을 사는 사치를 처음 누린 것이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지 싶다. 아니다. 시골에는 오일장이 섰는데, 맨 바닥에 낡디 낡은 잡다한 책들을 늘어놓고 파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거기서 '벤허'라는 헌 책을 500원 주고 처음 샀었다. 즐거운 기억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4-07-0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맨 처음 헌책방에 아버지따라 갔다가 산 책이 펄벅의 대지였답니다. 삼중당문고로요...

잉크냄새 2004-07-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일장 시골장터에서 좌판 벌려놓고 팔던 책들이 떠오르네요. 그때는 돈이 없어 쉽게 집어들지 못했는데... 물만두님의 삼중당 문고 책들도 떠오르고요. 좋은 추억이네요.^^

겨울 2004-07-09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성격의 할아버지 댁 사랑방에는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이 뽀대나게 모셔져있었는데, 초등학교 방학만 시작하면 한 권 씩 빌려다가 읽고 돌려드렸다. 무지 험악한 얼굴로 잘 보고 갖다 놔라 하시던 할아버지가 없을 때를 틈 타서 꺼내오는 스릴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본인은 읽지도 않는 그 책들을 그렇게 소중히 아끼셨을까. 물론 덕분에 나는 어지간한 소설은 초등학교 시절에 설렵했다. 적과 흑,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달과 6펜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쿠오바디스 기타 등등. 그 중 쿠오바디스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센켄비치라는 작가를 지금까지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박해받는 기독교인과 네로황제 그리고 몰락한 나라의 공주와 로마 귀족과의 로맨스는 손에 땀을 쥐게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