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책장에서 건져 올린 책이다. 평소에 쉬이 손이 가지 않는 책이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와 흥미가 더해져 신나게 읽어치웠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장점과 단점을 절묘하게 버무려 놓은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의 이 책은 전혀 상상도 안했던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훔쳐보는 엿보는 재미를 더했다.


먼저 김영삼 전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인데 하나하나가 어찌나 웃긴지 배꼽을 잡았다. 어쨌거나 내가 아는 상식 안에서의 그의 모습은 젊은 시절 유신독재와 싸운 꼿꼿한 투사의 그것인데, 이 책 안의 그는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뉴스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거나 어찌나 오만하고 독선적인지 기독교신자이면서도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니, 정말인가.


김영삼 전대통령과 비교당한 인물은 딴지일보의 총수 김어준인데 사실 책으로 발행된 것을 유쾌하게 읽긴 했어도 깊이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엄두는 나지 않았었다. 말발이 거칠고 센 그렇고 그런 인간정도랄까.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정혜신 박사는 김어준에 관한한 상당히 호의적이다. 앞에서 김영삼을 참혹하게 칼질한 것과는 정말 대조적이다.


“김어준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발상 전환의 필요성을 체득한다. 그가 강조하는 다양한 시각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다름 아니며 균형감각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의 균형감각은 경쾌함을 진중하게 표현할 줄아는 모차르트의 재능처럼 다분히 천성적이다.” 800억을 제시하는 딴지일보 인수제의에 대한 ‘8조 원짜리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오만과 독선이 김영삼과는 달리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유쾌하다’는 역설은 정말이지 호의를 넘은 애정이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독자들이 딴지와 관련해서 어떤 ‘제안’을 해올 때는 충분한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딴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해오면 그냥 놔둡니다. 왜냐하면 그 지적이나 비판 자체는 그 독자가 언론으로 기능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1인 언론’의 실현이 딴지의 모토이기 때문에 저는 지적이나 비판을 하는 독자도 하나의 언론으로 간주하고 싶은 겁니다. 딴지라는 하나의 언론매체와 그것을 향유하는 독자의 관계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꾸도 안 합니다. 정 귀찮게 구는 독자가 있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그럼 니가 만들어.’” 여기서 폭소가 안 터지면 이상하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괴짜중의 한 사람 정도로 여겼는데 이 정도가 되면 상당히 궁금해진다. 딱히 정치에 관심있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딴지일보식 김어준식 정치와 세상이 몹시 궁금해졌다.


이건희와 조영남도 물론 흥미롭다. 장세동과 전유성도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음’소리가 절로 난다. 이수성과 강준만, 박종웅과 유시민까지 읽으면서 선입견의 상당 부분을 이해의 폭으로 넓혔다. 이수성과 박종웅을 보는 시각이 꽤 달라졌는데 그래도 역시 정치인에 관한 편견은 깨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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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8-1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론에 비춰지는 가면 속에 감추어진 내밀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책이군요. 보관함으로 직행~^^

로드무비 2004-08-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쓴 사람의 시각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요.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마당발 이수성 씨에 대한 코멘트가 두고두고 남더군요.^^

kleinsusun 2004-12-1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참 엉뚱한 사람이죠.

딴지 기자들이랑 총수랑 몇번 술을 같이 마신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랑 얘기하면 아주 유쾌해요.

결혼식을 가족들 몇명이랑 괌에 가서 했다는데, 그런 약간은 낭만적이고 조촐한 결혼식,그런 결혼식을 저도 하고 싶어요.

근데 이 책, 남자 vs 남자는 산지 거의 1년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안 읽고 있어요.

정혜신은 이 책의 주인공들을 몇번이나 만나봤을까요?


겨울 2004-12-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났다기 보다는 자료에 의존해서 쓴 글이 아닐까요? 수선님이라면 어떤 글을 쓸까요. 무척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