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주인 12
히로아키 사무라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 ‘무한의 주인’을 읽었다. 흑백의 만화에 핏빛이 보일 리 없건만, 이 만화에는 핏빛이 난무한다. 사지절단은 기본이다. 등장인물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지면을 뚫고 나와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여자라서 더 눈부시다. 


100인을 죽였다하여 백인자객이라 불리는 만지는 ‘혈선충’이 몸 안에 심어진 불사의 몸이다. 그는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이 꿰뚫려도 다시 새 살과 피가 돌아 되살아나는 기막힌 운명의 사내다. 애초에 무사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죽임을 당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설령 그것이 유일한 혈육 여동생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무사의 가장 명예로운 죽음인 할복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불운의 그에게 한 줄기 서광이 비치니 바로 열여섯의 소녀 ‘린’이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가 능욕당하는 것을 목격한 린은 부모님의 복수를 결심하고 만지에게 호위무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삶의 맨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던 만지는 린의 복수에 동참해 1000명의 악인을 죽여 자신의 죄를 씻기로 작정한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고무적인 시작이다.


처음에는 린의 복수가 정당하고 필연처럼 여겨지나 뒤로 갈수록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아군의 오늘의 적이 되거나,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이 되는 것은 예사요. 칼을 들고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명분에는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만 남는다. 만지와 함께 시작된 린의 복수는 점점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결국에는 적의 수령을 도와 싸우는 지경에 이른다.


이 정도가 되면 진짜 ‘적’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칼을 품고 달려드는 사내들은 다들 비장하다. 살기를 작정했다면 애초에 칼을 겨눌 이유가 없다. 섬기고 있는 주군을 위해, 사모하던 아가씨를 위해, 옆에서 살육당한 동료를 위해 베고 베이며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팔이 잘리고 눈알이 도려내어 지면서도 겨루기를 멈추지 않는 사내들을 보노라면 머릿속이 일순 텅 비어진다. 


혼례를 치룬 다음날 장인의 목을 베야하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한다.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은 저주받은 재능을 비관해 자신의 손을 봉인하고 몸을 팔아 살고 있다. ‘린’이 필사적으로 쫓아가 죽이고자 한 ‘일도류’의 수령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일도류’를 멸하려는 ‘무해류’의 음모가 있다.


여기까지다. 내가 읽은 것은.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만지와 린의 운명은 거센 물살을 타고 있다. 수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었다 살아나는 만지와 그것을 지켜보는 린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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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0-0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가 난무하는 만화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한의 주인>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 무엇이 있는가 봅니다.. 저도 무한의주인을 처음 읽은 날,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