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은 일요일이다. 많고 많은 일요일 중의 하나지만, 누군가에겐 특별한 하루일 수도 있는 일요일이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넘어가지 않는 밥을 한 숟가락 밀어 넣고, 컴퓨터의 전원을 넣어 부팅을 시킨 후, 대강의 청소와 쓰레기를 분리수거 했다. 그리고 겉잡을 수 없이 자란 화단의 무성한 풀들을 두려운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역시나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햇살을 보니 커튼을 걷어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탁기를 돌리고, 내친 김에 욕실도 세척락스를 분무기로 뿌려가며 매끈하게 닦아주고, 마침내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나의 일요일은 할머니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을 했다. 건강하신지 식사는 하셨는지 잘 지내시라는 안부전화는 부쩍 아파진 다리를 끌고 청소며 빨래며 밥을 홀로 챙기는 그 쓸쓸함에 미치면서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요일은 방콕이다. 밀린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온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 한마디로 대문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떼놓지 않는다. 일요일에 누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하는 걸 아주 싫어하기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하게 홀로 보내는 이런 시간이야말로 행복의 극치다.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이란 소설을 화장실에 두고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끝낸 일요일 아침이다. 손에 가벼운 두께의 하얀 책을 보노라니 그렇다면 나의 일요일들은 어떤 그림일지가 궁금해졌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와서 미래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한사람의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는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담겨있는지는, 나란 인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소설가는 마술사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작가는 매력적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무엇이 어째서인지는 불분명하다. 뚜렷하게 이 소설의 무엇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데, 이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정도를 넘어선다. 그는 나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절묘하게 글로서 표현했다. 무엇이지? 무엇일까.


‘일요일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서 급기야는 눈물도 몇 방울 흘렸다. 엄마를 찾아 떠난 형제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더니, 일요일의 어느 날 도쿄의 어느 호텔에서, 입양되어간 동생과 만나는 형을 따라간 노리코의 이야기는 절정이었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낙심해 있던 노리코도 생각하지 않던가.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영부영 개기고 있던 일요일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런 날들은 수없이 많았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 되고 만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요일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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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만 하면 자신과 주변인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그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대단한 기억력이란 감탄을 하며 넋을 놓고 들을 때가 있다. 남달리 사랑도 많고 미움도 많고 근심도 많고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는 것도 많은 결과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인 그는 일 또한 열정적으로 몸이 부서져라 한다. 삶에 대한 그러한 의욕과 애착, 집착과 체력을 나는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는다.


감정이나 갈등을 마음에 쌓아두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병이 들기 십상이다. 반면 어떤 경로든 누굴 향해서든 뱉어내고 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굉장히 큰 상심이나 상처일지라도 미약하나마 치유가 되거나 짊어진 짐의 무게를 덜기 마련이다. 현실이 끔찍하도록 암담한 상황에 처해진 어떤 이는 어떻게든 낙관하고 긍정하려 안간힘을 쓰며 좋았던 날들을 추억하고 끄집어내면서 넘칠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던 대가의 의미로 현재를 살아간다고 했다. 그녀 또한 달변가다.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물 흐르듯 매끈한 그녀의 수다는 몇 시간이고 계속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건 어른이건 여자건 남자건 사소한 빌미만 제공하면 속 깊은 얘기를 줄줄 흘리는 시대, 정작 그들은 자기 말들에 취해 타인의 말은 들을 줄 모르면서, 누구라도 제 속에 쌓이고 쌓인 화를 제발 말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 어쨌건 수다는 힘이고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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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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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듣고 있는게 편하더라구요... ^^


겨울 2005-07-3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 또한 주로 듣는 쪽입니다. 사실 말하기보다 듣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적절할 순간에 대꾸를 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사람을 사귀면서 가장 지루할 때는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아무말도 없을 때더라구요.
 

 

뵐 때마다 잘 좀 먹으라 걱정을 해 주시는 분이 있다. 오늘도 그냥 요구르트 두 개, 플레인 요구르트 하나, 직접 만드신 샌드위치 두 조각을 건네주신다. 멀리서 이걸 들고 오신 정성 때문에 울컥 한다. 보시는 앞에서 먹성 좋게 먹어야 하는데, 요구르트를 꺼내 달게 마시고 샌드위치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약속드렸다. 타인을 위한 그분의 세심한 배려가 내게는 종종 불가사의처럼 여겨진다. 나란 인간이 엄청 몰인정하고 이기적으로 비추는 건 예사고 받는 것의 십분의 일도 돌려드릴 수 없어 부담스럽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이 베풀 줄 알고 음식도 먹어봐야 즐길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담 나는 지독한 애정결핍증 환자임이 분명하다. 새삼스러운(?) 이 발견이 참 경악스럽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엄마와의 기억이 전무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에 관한 얘기를 할라치면 나이차가 좀 많은 철없는 언니쯤으로 묘사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뭐랄지, 엄마를 정서적으로 꽤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왔다. 외동에 유복자로 자랐고 할머니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정작 자신의 자식에 대한 모성은 많이 부족한 사람, 현재 팔순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에게 자식의 양육이며 생활의 전반적인 의무를 다 짊어지게 하였음에도 그것에 대한 하등의 감사나 미안함을 갖지도 않는 사람, 가끔 표현하는 애정이 도를 지나쳐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화의 근원이 되는 사람, 그래서 적당한 포장을 한 후에나 대화가 가능한 사람, 엄마란 존재는 그랬다.


할머니라는 매개가 없으면 엄마와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설령 있어도 지극히 건조한 형식적인 혹은 불안한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므로 그렇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하는 고민을 종종 했다. 언젠가 언뜻 말다툼을 할 적에 할머니에 대한 우리들의 애정을 시기하는 엄마의 원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가로막고 있어서 자식들이 아무도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어이가 없음에도 일부 수긍은 갔었다. 동생들과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만일 할머니가 안계시면 이라는 가정을 했을 때 우리는 어찌되나 하다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지만, 우린 할머니라는 동아줄을 위태롭게 붙들고 있었고 그 동아줄이 끊어지는 상상만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인간은 일생을 걸쳐 성장을 지속한다고 믿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주름과 흰머리가 아니라도 줄줄이 딸린 손자 손녀에게 할머니라 불릴 만큼 세월이 흘렀다. 나도 예전의 나가 아니듯 엄마도 예전의 엄마는 아니다. 약하고 불안정하고 예민한 환자였던 엄마는 몹시도 무디고 무뎌졌다. 죽어라 채우지 못한 공허감을 신앙에 집착하고는 있지만 스스로 만족하시니 뭐랄 것도 없다. 이제는 미리 단정 짓지 않고 가능한 말로 표현하고 싸우고 필요하면 손을 내밀 생각이다. 엄마에게 나는 어려운 딸이었다. 한번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가를 고려할 때 나로 해서 받은 엄마의 근심과 상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인간의 양면, 그리고 마주치는 손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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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니 살 것 같다. 검은색 짧은 바지에 진한 핑크색 셔츠 그리고 초록의 배낭을 둘러매고 거리로 나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무심코 왔다가 간다. 내가 생각해도 눈에 확 띄는 배색이다. 어째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이 애 같아지나. 좍좍 쏟아지는 빗속을 신이 나서 걷는 행복한 하루, 살 것 같다. 화사하고 밝은 옷을 입으니 사람도 싱싱해 보인다는 지인의 한마디에 한참을 웃었다. 이상해 라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좋기는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핑크를 입고 나선 스스로의 심리가 무척이나 아리송하다. 어쩌면 옷조차도 어둡고 눈에 덜 띄는 색만을 골라 입으며 삶과 세상을 비관하고 그것에 취해 살았던 건 아닌지. 누구보다 자유로운 척 했지만 실상 내 영혼은 억압과 구속으로 비뚤어져 있음을 안다. 틀이나 규격이 싫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은 거기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빌어먹을 착한아이 콤플렉스 그리고 장녀 기질,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려지지도 않는 것. 비가 오니 바짝 말랐던 감성이 젖나보다. 내 안에는 어느 시점에선가 성장을 멈춘 어린아이와 성인이 된 내가 공존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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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5-07-2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만 오면 의욕이 솟구치는 좀 특이한 습성을 가진 사람들, 반갑습니다. 이런 날에 생계를 위해 온 몸을 적시고 한기를 참으며 일을 하는 지인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저는 좋아서 얼굴에 미소가 내내 가득했네요. 아, 검은비님의 섬뜩한 '죽음의 소리'도 뇌리에 짱 박혔습니다. 내 속에 웅크린 어떤 이와 닮아서요.

비로그인 2005-07-29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뜨거운 비가 와서 열을 좀 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비가 와서 좋네요.
어서 가을이 왔으면...;;;

겨울 2005-07-2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입추라는 붉은 글자가 성큼 다가 선 8월의 달력을 보고 위안을 삼으세요. 말복의 고비가 남아있긴 하지만, 머잖아 이 무더위가 그리울 듯 합니다.
 

 

전기가 말썽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가스레인지가 불통이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이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짜증부터 난다. 먼저 A/S 센터에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설명하고 기타 비용을 문의하니 역시나 수리보다 새것으로 사는 게 낫다. 겉모양은 멀쩡하지만 8년 이상을 사용했으니 바꿀 때다. 문제는 물품의 배달과 설치, 저녁시간에 맞춰 받아서 따로 가스사업자를 불러 설치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 이쪽저쪽 전화 넣어 시간 맞추었더니 교통사정이 나빠 약속한 배달시간을 초과하고 덩달아 설치해주실 분도 공중에 뜨고 있는 대로 성질이 뻗친다. 뒤늦게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물류센터 직원을 붙들고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설치문제로 다시 짜증. 낼은 아침 일찍 시골로 떠나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월요일 저녁에나 가능하다. 어둑한 시간에 낯선 사람을 집안에 들이기가 꺼려지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 와주십사 부탁을 넣었다. 전에 몇 번 본 그 사람인가 했더니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교적 소박하고 친절하다. 역시나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가스통을 점검해 주고 설치까지 마무리 하시더니 생뚱맞게 집이 참 깨끗하다는 한마디. 어느 집이나 이 정도는 기본이지 않느냐 했더니(더러운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정리정돈에는 소질이 없다) 자기 누나랑 똑같다나 뭐라나. 하하 멋쩍게 웃어주고 수고하셨노라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가면서 한마디를 던진다. 대문 닫아드리겠습니다. 작지만 수수한 배려, 오늘 하루 썩었던 속이 확 풀리는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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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7-2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푹푹 찌는 더위...그런 작은 배려 하나가 커다란 기쁨인 시기입니다.

겨울 2005-07-2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더위에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작은 방에서요. 여름이 달리 여름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