뵐 때마다 잘 좀 먹으라 걱정을 해 주시는 분이 있다. 오늘도 그냥 요구르트 두 개, 플레인 요구르트 하나, 직접 만드신 샌드위치 두 조각을 건네주신다. 멀리서 이걸 들고 오신 정성 때문에 울컥 한다. 보시는 앞에서 먹성 좋게 먹어야 하는데, 요구르트를 꺼내 달게 마시고 샌드위치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약속드렸다. 타인을 위한 그분의 세심한 배려가 내게는 종종 불가사의처럼 여겨진다. 나란 인간이 엄청 몰인정하고 이기적으로 비추는 건 예사고 받는 것의 십분의 일도 돌려드릴 수 없어 부담스럽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만이 베풀 줄 알고 음식도 먹어봐야 즐길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담 나는 지독한 애정결핍증 환자임이 분명하다. 새삼스러운(?) 이 발견이 참 경악스럽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엄마와의 기억이 전무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에 관한 얘기를 할라치면 나이차가 좀 많은 철없는 언니쯤으로 묘사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뭐랄지, 엄마를 정서적으로 꽤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왔다. 외동에 유복자로 자랐고 할머니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정작 자신의 자식에 대한 모성은 많이 부족한 사람, 현재 팔순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에게 자식의 양육이며 생활의 전반적인 의무를 다 짊어지게 하였음에도 그것에 대한 하등의 감사나 미안함을 갖지도 않는 사람, 가끔 표현하는 애정이 도를 지나쳐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화의 근원이 되는 사람, 그래서 적당한 포장을 한 후에나 대화가 가능한 사람, 엄마란 존재는 그랬다.


할머니라는 매개가 없으면 엄마와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설령 있어도 지극히 건조한 형식적인 혹은 불안한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므로 그렇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하는 고민을 종종 했다. 언젠가 언뜻 말다툼을 할 적에 할머니에 대한 우리들의 애정을 시기하는 엄마의 원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가로막고 있어서 자식들이 아무도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어이가 없음에도 일부 수긍은 갔었다. 동생들과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만일 할머니가 안계시면 이라는 가정을 했을 때 우리는 어찌되나 하다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지만, 우린 할머니라는 동아줄을 위태롭게 붙들고 있었고 그 동아줄이 끊어지는 상상만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인간은 일생을 걸쳐 성장을 지속한다고 믿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주름과 흰머리가 아니라도 줄줄이 딸린 손자 손녀에게 할머니라 불릴 만큼 세월이 흘렀다. 나도 예전의 나가 아니듯 엄마도 예전의 엄마는 아니다. 약하고 불안정하고 예민한 환자였던 엄마는 몹시도 무디고 무뎌졌다. 죽어라 채우지 못한 공허감을 신앙에 집착하고는 있지만 스스로 만족하시니 뭐랄 것도 없다. 이제는 미리 단정 짓지 않고 가능한 말로 표현하고 싸우고 필요하면 손을 내밀 생각이다. 엄마에게 나는 어려운 딸이었다. 한번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가를 고려할 때 나로 해서 받은 엄마의 근심과 상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인간의 양면, 그리고 마주치는 손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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