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생이라 입버릇처럼 '나는 겨울이 좋아' '추워도 겨울이 최고'라던 내가 올 해는 어쩐지 봄이 기다려진다. 혼자 나는 겨울이어서일까? 새삼 혼자가 되었다고 유난을 떨 이유도 없는데 원인이 있다면 그것이지라는 결론이다. 이런저런 공과금을 납기일이 지나 내고, 닫힌 대문에 낯선 메모가 남겨지고, 광고지가 마당을 어지럽히는 풍경도 이전에는 없었는데 정말 혼자라는 깨달음.
빈 방에 TV를 켜 놓는 습관이 생겼다. 주로 머무는 곳은 컴퓨터 방이면서 TV 혼자 자정이 넘도록 떠들게 놓아둔다. 적당한 소음은 정신건강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데, TV 소음은 때로 수면제로도 이용한다. 자동꺼짐 버튼으로 몇 분 후를 설정해 놓고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대개는 대담프로나 음악프로를 듣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설풋 잠이 드는데 어찌나 달콤한지 책을 읽다 졸린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사실 TV 없이 사는 연습을 하려고 하다가도 이런 용도가 아쉬워서 없애질 못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버릇이다.
겨울을 예찬하던 시절에는 봄이 오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봄비에 땅이 젖는 것도 매서운 듯 서늘한 바람도 마치 처음처럼 생경하다. 요즘의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마냥 신이 나서 걸어다니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면 물씬 느껴지는 내음이 완연히 봄이다. 내의를 벗어던진 다리 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의 정체도 봄이다. 이른 봄날 아침에 발간 볼을 하고 진한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서 살아있음을 절감하는 시절이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수많은 날들의 반복일 뿐이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고 그것을 소중히 감사하게 여기는 때가 드디어 온 것인가.
봄에는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한다. 겨우내 부린 늦장이 창 턱에 걸린 햇살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이다. 핸드폰의 알람을 십여분 앞당기고 일어나자마자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야지. 그리고 봄에는 다시 산에 오를 준비도 하고, 무겁고 칙칙한 겨울 옷의 정리도 필수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신입생같다. 새 옷, 새 신발, 새 노트와 책을 준비하고 설레이는 마음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린 날의 내가 생각난다. 무지, 순수, 철없음의 결정체 혹은 가장 선했던 날 들.
문득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어려서 일찍 손에 들고 읽었다가 된통 혼난 책, '인생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살아야한다.'고...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