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특히 집에서 쉬는 일요일은 바쁘다.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여유를 부리다가 정오가 가까울  쯤에 일어나는 탓도 있고,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빨래거리를 찾아 세탁기를 돌리며 대청소를 시작해서 이불이며 베개, 방석에 앉은 먼지를 마당에 나가 털어내고, 따사로운 햇살을 듬뿍 쪼여주노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집 밖 구석구석에 산처럼 쌓인 눈더미에서 녹아내리는 물이 졸졸 흐르는 기이한 풍경은 실로 오랜만, 눈삽을 찾아 괜히 헛손질도 해보고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밟고 올라서서 굴러도 보는 그야말로 망중한이다.

폭설이 내린 금요일 내내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축사 지붕에 올라가 쌓이는 눈을 끌어내리느라 구슬땀을 흘리셨다. 덕분에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넘기셨다는 전화에 안도하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둥둥 공중에 떠 있었다. 어쩌면 내 생에 단 한 번일 눈잔치에 흥분이 되어서, 축복에서 재앙으로 이어서 지옥으로 묘사되는 나라 안 사정이 피부로 와 닿지를 않았다. 발목을 적시며 사선을 넘은 행군을 하듯 걸어온 출근길도, 퍼붓고 또 퍼붓는 잿빛 하늘의 무거움도, 까만 눈을 반짝이며 입가에 스민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과 버스가 끊겨 두세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현실 아닌 현실을 신기해 하는 지인들의 음성에 덩달아 내 목소리도 높아졌다.

할머니에게도 동심이 있다. 꼼짝없이 방에 갇히셨다고 불평을 하시면서도 그것을 억울해 하시지는 않는다. 집 밖에 나섰다가 혹여 다치실라 절대 대문을 넘지 말라고 당부하였는데 축사에 있는 엄마가 걱정된다고 기어이 나가셨다고 뒤늦게 엄마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 못말리는 우리 할머니, 하지 말란다고 얌전히 계실 분이 아니다. 시골집은 아마도 천지분간 안갈 정도로 설경이 대단할 터이다. 당분간은 쓸쓸해 할 틈도 없으실 거다. 오늘 같은 날엔 아마도 장독대가 걱정이 되어 쓸고 닦고 하시리라.

두 조카 아이들도 행복으로 죽을 지경인 모양, 젖은 옷을 벗어놓고 다시 나가 놀더라도 이 자연의 경이를 즐기고 누리라 했다. 사는 일은 예측불허다. 곧 죽을 것 같이 괴롭다가도 어느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해 깔깔 거리고 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누구 탓을 하고 짜증을 부리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을 모아서 다시 일어서기를 ... 햇살을 보니 봄이다. 눈 쌓인 3월의 봄 앞에서 흉흉했던 세간의 일들은 잠시 잊고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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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3-0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그 장면장면들이 상상이 갑니다. 아름다운 산문이라는 게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겨울 2004-03-0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한 마태우스님은 칭찬의 달인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