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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살인 1 ㅣ 발란데르 시리즈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헤닝 만켈의 전작인 '미소지은 남자'를 예전에 읽었고 망설임없이 '한여름의 살인'을 선택했다.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다섯번째 여자'를 먼저 읽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사람의 책에 대해서는 결코 실망이 없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두 편의 소설을 읽었지만 여전히 낯설은 이름들과 지명들이다. 독특한 이야기 방식 만큼이나 북유럽이라는 서늘한 인상의 나라에서 느끼는 정취는 유별나다. 사실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편은 아니다.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시리즈 외에 20대 이후에 읽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내가 아는 추리물의 전부라 할만하다.
'미소지은 남자'를 읽은 계기도 우연이었고 그렇게 읽은 한 권의 소설로 추리소설에 대한 그간의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취향에 따라서는 약간은 뜨뜻미지근한 이런 류의 소설을 싫어할 사람도 많지만 숨을 죽이고 단숨에 사건의 시작에서 결말까지 달려가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른 인간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인 발란더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일상의 모습이 내게는 정말 흥미로운 것이었다. 주인공의 영웅적 무용담에 끌리는 10대가 아닌 까닭일까.
발란더와 동료 수사관들의 모습 또한 내가 아는 우리나라의 경찰청을 묘사하는 부분들과는 많이 다르다. 조금씩 불안정하고 상처가 있고 비밀을 가진 채 하나로 뭉치기도 하고 각각 흩어지기도 하는 모양이 별스럽지 않은데도 별스럽다. 범죄의 만연이 장차 국가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수사관다운 상념조차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가보지않은 나라 스웨덴에 대한 몽상 탓?
작가의 여성관도 흥미롭다. 소설에서 여성의 지위는 발란더의 상위이다. 여서장은 물론 남자보다 유능하다는 회그룬트도 그렇고 이런저런 약점과 비밀을 품은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의 내면은 비교적 명료하게 그려졌다. 발란더의 이혼한 아내는 재혼하여 살고있고 결혼까지 고려한 애인은 뚜렷한 이유없이 그를 떠난 상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새어머니도 새로운 인생을 찾아 집을 처분하고 떠나는 걸로 묘사된 것은 우리나라 정서로 볼 때는 참 충격적인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짐승처럼 묘사된 남자들은 헤닝 만켈의 눈에 비친 것이다. 작가에게 글에 매혹되는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소설 곳곳에 포진한 사소한 점들에 끌리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추리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버리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