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가 있는 사막
해이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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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으로부터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게 운명인듯 이 책이 내 앞에 뛰어들었다. 우린 '사막'이 갈증과 불모의 지역임을 알고있음에도 종종 그곳을 갈망한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게 정해진 우리의 운명인 것일까? 아니면 낯선 곳에의 단순한 동경인 것일까.
 

     이 책은 여덟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꽤 많은 단편집을 읽어온 편인데 단편집의 묘미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동일한 어떤 것을 향해 미묘하게 그 발을 뻗고 있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색달랐다. 하나하나가 동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색다른 곳을 향해 발을 뻗고 있었다. 길, 그리고 글. 모음 하나 차이인 이 두가지의 요소는 이 소설집 안에서 목적지 없는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마치 사막을 벗어날 수 없는, 그리고 섬을 벗어날 수 없는 남매의 슬픈 운명처럼 독자를 소설 속에 빠트리는 매력을 지닌 것이다.

     어찌보면 사람들은 동일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린 낯선 곳을 동경하고(이방인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이들도 여행의 매력에 들뜨는 것을 보면 말이다) 때론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낯선 곳을 향한 우리의 로망은 현실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렇지만 무너진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또 다른 꿈을 꾸고 또 다시 그 곳을 향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이 아니었던가.

 

     단편은 모두 작가를 닮아있다. 한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이기에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작가의 고뇌와 경험들을 훔쳐보는 것은 독자를 꽤나 즐겁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작가와 함께 숨쉴 수 있게 한다. 물론 배경이 작가가 공부했던 '호주'라는 곳에 많이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세상은 넓기에 앞으로 작가가 더 많은 장소를 보여주고 그 곳에서 독자를 숨쉬게 할 것이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한다. 또 작가로서의 고뇌를 담은 단편들로 하여금 앞으로 작가가 뻗어나갈 무궁무진한 미래들을 기대하게한다. 그리고 독자는 또 하나의 좋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방인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방인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유형의 인간들이지만, 자신에게 운명지어진 곳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캥거루와 닮았다. 뛰고 또 뛸 수 밖에 없는 운명, 그 운명을 가지고 있는 눈을 지닌 캥거루. 캥거루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책을 통해 캥거루를 직접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런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이방인이 된 채 글을 써야만 하는 운명. 그럼 난 어떤 운명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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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푸른 눈
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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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모리슨의 이름에선 왠지 호소력 있는 팝 가수의 느낌이 났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난 강렬한 팝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녀가 흑인이라는 것,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 영미작가라는 것, 그런 알려져 있는 사실들은 그녀의 작품을 접하기도 전에 감히 그녀를 추측하게 했다. 인권을 소재로 글을 썼을 것이라는 것, 기존의 영미작가들 답게 나와는 조금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난 강렬한 팝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도 그녀를 쉽게 만나지 않았다. 인권을 소재로 한 글은 넘쳐나고 그것은 굳이 영미소설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 책 <가장 푸른 눈>을 읽으면서 난 내가 그녀를 피해왔던 것이 아마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책 제목이 갖고 있는 파동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단 한권의 책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그 힘든 일을 너무도 아름다운 말들로 해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난 토니 모리슨에게 매혹당했다.
 

     피콜라. 그녀는 ...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듯, 그리고 작가 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클라우디아는 작가의 분신같은 존재이다. 클라우디아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인종 차별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으로 상처입은 영혼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클라우디아는 다시 또 한번 성인의 눈으로 그 때의 그 시간을 떠올린다. 인간의 수많은 이기심에 의해 상처입은 한 아이, 피콜라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상처입은 그녀가 가졌던, 허나 가져선 안되었던 이룰 수 없는 욕망에 관해서.

     백인과 흑인으로 인종은 구분되었고 흑인과 깜둥이로 또 인종은 나뉘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으나 태어나길 깜둥이로 태어난 피콜라는 그런 운명을 저주할 힘도 갖지 못한 채 멸시받고 조롱받는 아름답지 못한 존재로 각인된다. 각인이란 얼마나 슬픈 단어던가.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 자신이 자기 자신을 보는 시선으로 굳어져 버린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울 수 없는 존재였고 그런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가장 푸른 눈'을 소망한다. 가장 푸른 눈은 피콜라가 인간다워지기 위한 조건이었고 인간으로 서기 위한 이룰 수 없는 욕망이었다.

 

     Blue.

     파란색은 아름답다. 그 빛은 희망을 꿈꾸게 하고 사랑을 숨쉬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우울함'이 담겨있다. 희망과 사랑은 우울함이 있기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겠는가. 그런 파란색을 피콜라는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단지 피콜라만의 꿈이 아니라 그 시대 흑인 여성 전체의, 그리고 나아가 흑인 전체의 꿈이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꾸어야 하는 것. 우울한 현실을 그나마 버텨내게 하는 희망과 사랑. 어쩌면 토니 모리슨의 이름에서 팝 가수의 호소력있는 멜로디를 생각해 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클라우디아의 시점이 아닌 제 3의 시점으로 피콜라의 엄마, 그리고 아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 역시 소외되었고 억압받는 존재였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의 장난을 피콜라에게 물려주었고 피콜라는 그 운명을 조산한 아기에게 물려주었다.

     흑인들은 더 이상 예전같이 차별당하진 않는다. (물론 그 차별이 뿌리채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젠 어느정도 완화되었다는 말이다.) 허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겐 제대로 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심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왜'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왜'라는 말의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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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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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를 알아가는 데에는 두가지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나는 그 작가의 가장 초기작부터 읽어 소설가로서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최근작을 읽은 후 초기작으로 넘어가 한명의 작가의 탄생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내게 김종광이라는 소설가는 후자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수차례 들었지만 역시 책에 손이 가는 것은 책과 나의 인연이 닿을 때인지라 그 인연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만나본 김종광은 분명 중독성이 짙었다. 깔깔거리며 웃진 못했지만 빙그레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재미, 그 재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해학이라고 이름 붙여줄만 했다.
 

     이런 말을 하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주름잡고 있는 원로 소설가들에게 좀 죄송하지만 그 노인네들의 소설에는 그들이 살아 온 시대적 분위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감도는 침울함은 한국문학을 우울한 무엇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작가 집단에도 세대 교체는 있었고 새롭게 세대를 장악한 이들은 노인네들의 시대를 잊은 듯 했다. 술과 담배, 인터넷 그리고 섹스. 이것들만 있으면 작가의 말재간에 버무러져 맛깔난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를 잊은 듯 했다. 아니,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술과 담배, 인터넷, 섹스 그 이면의 것들을 잊어버린 듯 했다. 그 망각의 틈에 김종광은 안착했다. 맛깔나는 사투리와 구수한 시골풍경, 김종광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소외받은 뒤떨어진 산골마을이 아니었다. 그곳은 정과 사랑이 살아 꿈틀대는 또 하나의 장소였다. 마치 그의 책에 등장하는 '혼주시'라는 가상의 공간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한 곳, 김종광이 그려내는 시골은 그런 곳이 되었다. 즉 그의 소설은 노인네들과 젊은이들 사이에 들어간, 하지만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띄는 것이 아니라 양쪽 어디에도 재치있게 속할 수 있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소설에선 지극히 평범하고 다소 세대에 뒤떨어진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조차 소외받은 듯 하다. 허나 이 시대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촌스럽다 느끼고 평범하다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선 바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궁핍하거나 초라하지만은 않다. 능수능란한 사투리와 다소 능청스러워 보이는 캐릭터들이 그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희노애락 모두를 엿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분명 작게나마 희망도 잠들어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비범한 캐릭터 속에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그들은 평범하지 않기에 남들이 겪을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또 지나치게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캐릭터 속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캐릭터에서, 그리고 그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와 감동을 뽑아내기란 여간한 재간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다. 그러나 김종광은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 평범함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말할 줄 아는 작가, 그는 분명 멋지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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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배송]쓰바 주문제작 큰책도장2개 세트
닭똥집디자인(ss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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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 것과 내 것. 우리의 취향대로 만취쓰바 구입했는데 넘넘 귀여워서 기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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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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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소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하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책의 첫 문장 고개를 갸웃거린다. 할아버지는 소년이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책을 앞으로 돌려 표지를 마주한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 그 제목도 그 표지도 책의 첫문장도 꿈을 꾸는 듯 하다. 내가 제대로 된 글자를 읽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신화는 인간과 너무도 비슷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인간의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들의 삶에도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있고 열정과 욕망이 가득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뭔가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그래서 우린 신화를 읽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것은 마치 신의 생활을 훔쳐보는 것과도 같은 기분이다.

 

     이 책 <소녀, 소년을 만나다>(알리 스미스, 문학동네,2007)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따온 이피스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변화'를 소재로 한 그 신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알리 스미스 스타일의 신화를 탄생해 낸 것이다. 위에서 말한 책의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다양한 형식의 시도로 충만하다. 마치 소설의 진화(진화 역시 변화에 해당할테니까)까지 계산에 넣어 이피스 신화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얇은 두께의 책이지만 읽어내기가 녹록치는 않다. 아니, 쉽게 쉽게 읽혀지지만 순간 혼동에 빠질 때가 많다.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거지?
     하지만 그 혼동 속에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 혼동 속에 발걸음을 멈췄다가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변화'에 휩쓸리지 못하고 주변인인 진정한 '독자',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을 읽는 재미, 그리고 신화를 읽는 재미,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나와 다른 삶에 빠져보고자 하는 '변신'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재미가 아니었던가. 그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혼동,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스름한 이미지가 순간 다가온다. 이 책이 지속하고 있는 그 이야기가 보이는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는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태초에 세상은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남자가 한 몸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이 신의 위엄에 대항하려 하자 그에 분노를 느낀 신이 그들을 반쪽으로 갈라놓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모두 인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단지 '소수 취향'이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혹은 '나쁜 취향'이라고 외면해 버리는 그 사랑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이피스 신화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그 이야기와도 아주 닮아 있다. 이모겐은 동생 앤시아의 사랑을 부정하려 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앤시아는 소년을 만났지만 그것은 소년 시절을 겪고 있는 로빈이었고 그것은 앤시아의 변신이자 로빈의 변신이자 이모겐의 변신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 함께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언젠가 앤시아는 혹은 로빈은 자신의 소녀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편안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훗날에 다시 가져올 것이다.
 
     책은 아름다웠다. 비록 모든 사랑에 주변의 인정이 따르진 않지만 그것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에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자신만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인정해 주는 것. 책은 그 아름다운 세계 그 자체였다. 소녀가 소년을 만나고,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소녀가 소녀를 만나고 소년이 소년을 만나고. 그 모두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에 우리 모두는 변화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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