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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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를 알아가는 데에는 두가지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나는 그 작가의 가장 초기작부터 읽어 소설가로서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최근작을 읽은 후 초기작으로 넘어가 한명의 작가의 탄생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내게 김종광이라는 소설가는 후자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수차례 들었지만 역시 책에 손이 가는 것은 책과 나의 인연이 닿을 때인지라 그 인연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만나본 김종광은 분명 중독성이 짙었다. 깔깔거리며 웃진 못했지만 빙그레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재미, 그 재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해학이라고 이름 붙여줄만 했다.
 

     이런 말을 하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주름잡고 있는 원로 소설가들에게 좀 죄송하지만 그 노인네들의 소설에는 그들이 살아 온 시대적 분위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감도는 침울함은 한국문학을 우울한 무엇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작가 집단에도 세대 교체는 있었고 새롭게 세대를 장악한 이들은 노인네들의 시대를 잊은 듯 했다. 술과 담배, 인터넷 그리고 섹스. 이것들만 있으면 작가의 말재간에 버무러져 맛깔난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를 잊은 듯 했다. 아니,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술과 담배, 인터넷, 섹스 그 이면의 것들을 잊어버린 듯 했다. 그 망각의 틈에 김종광은 안착했다. 맛깔나는 사투리와 구수한 시골풍경, 김종광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소외받은 뒤떨어진 산골마을이 아니었다. 그곳은 정과 사랑이 살아 꿈틀대는 또 하나의 장소였다. 마치 그의 책에 등장하는 '혼주시'라는 가상의 공간처럼 낯설면서도 익숙한 곳, 김종광이 그려내는 시골은 그런 곳이 되었다. 즉 그의 소설은 노인네들과 젊은이들 사이에 들어간, 하지만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띄는 것이 아니라 양쪽 어디에도 재치있게 속할 수 있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소설에선 지극히 평범하고 다소 세대에 뒤떨어진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조차 소외받은 듯 하다. 허나 이 시대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촌스럽다 느끼고 평범하다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선 바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궁핍하거나 초라하지만은 않다. 능수능란한 사투리와 다소 능청스러워 보이는 캐릭터들이 그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희노애락 모두를 엿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분명 작게나마 희망도 잠들어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비범한 캐릭터 속에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그들은 평범하지 않기에 남들이 겪을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을 겪는다. 또 지나치게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캐릭터 속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캐릭터에서, 그리고 그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와 감동을 뽑아내기란 여간한 재간이 아니고서야 힘든 일이다. 그러나 김종광은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다. 평범함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말할 줄 아는 작가, 그는 분명 멋지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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