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푸른 눈
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토니 모리슨의 이름에선 왠지 호소력 있는 팝 가수의 느낌이 났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난 강렬한 팝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녀가 흑인이라는 것,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 영미작가라는 것, 그런 알려져 있는 사실들은 그녀의 작품을 접하기도 전에 감히 그녀를 추측하게 했다. 인권을 소재로 글을 썼을 것이라는 것, 기존의 영미작가들 답게 나와는 조금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난 강렬한 팝가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도 그녀를 쉽게 만나지 않았다. 인권을 소재로 한 글은 넘쳐나고 그것은 굳이 영미소설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 책 <가장 푸른 눈>을 읽으면서 난 내가 그녀를 피해왔던 것이 아마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책 제목이 갖고 있는 파동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단 한권의 책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그 힘든 일을 너무도 아름다운 말들로 해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난 토니 모리슨에게 매혹당했다.
 

     피콜라. 그녀는 ...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듯, 그리고 작가 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 클라우디아는 작가의 분신같은 존재이다. 클라우디아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인종 차별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으로 상처입은 영혼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클라우디아는 다시 또 한번 성인의 눈으로 그 때의 그 시간을 떠올린다. 인간의 수많은 이기심에 의해 상처입은 한 아이, 피콜라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상처입은 그녀가 가졌던, 허나 가져선 안되었던 이룰 수 없는 욕망에 관해서.

     백인과 흑인으로 인종은 구분되었고 흑인과 깜둥이로 또 인종은 나뉘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으나 태어나길 깜둥이로 태어난 피콜라는 그런 운명을 저주할 힘도 갖지 못한 채 멸시받고 조롱받는 아름답지 못한 존재로 각인된다. 각인이란 얼마나 슬픈 단어던가.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 자신이 자기 자신을 보는 시선으로 굳어져 버린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울 수 없는 존재였고 그런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가장 푸른 눈'을 소망한다. 가장 푸른 눈은 피콜라가 인간다워지기 위한 조건이었고 인간으로 서기 위한 이룰 수 없는 욕망이었다.

 

     Blue.

     파란색은 아름답다. 그 빛은 희망을 꿈꾸게 하고 사랑을 숨쉬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우울함'이 담겨있다. 희망과 사랑은 우울함이 있기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겠는가. 그런 파란색을 피콜라는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단지 피콜라만의 꿈이 아니라 그 시대 흑인 여성 전체의, 그리고 나아가 흑인 전체의 꿈이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꾸어야 하는 것. 우울한 현실을 그나마 버텨내게 하는 희망과 사랑. 어쩌면 토니 모리슨의 이름에서 팝 가수의 호소력있는 멜로디를 생각해 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클라우디아의 시점이 아닌 제 3의 시점으로 피콜라의 엄마, 그리고 아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 역시 소외되었고 억압받는 존재였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의 장난을 피콜라에게 물려주었고 피콜라는 그 운명을 조산한 아기에게 물려주었다.

     흑인들은 더 이상 예전같이 차별당하진 않는다. (물론 그 차별이 뿌리채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젠 어느정도 완화되었다는 말이다.) 허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겐 제대로 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심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왜'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왜'라는 말의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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