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겐 너무 먼 그녀, 배수아. 또 다시 그녀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번엔 다 읽을 수 있어야 할텐데... 그녀를 만나는 데에는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땐, 참 우울한 날이었다. 내 자신에게 응원의 선물로 책 한권을 하기로 하고 서점을 돌아보다 이 책에서 눈이 멈췄다. 배수아라는 이름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거리낌없이 이 책을 집어든 것에는 거부할 수 없는 그 제목 탓이었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그녀와 책상에 앉아 그 글을 읽는 나를 상상했다. 배수아의 책은 늘 어렵게 읽히다 중간에 한숨을 쉬며 덮어버리곤 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다 읽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제목, 그 제목이 날 이끌었다. 저녁 하늘의 마지막 빛에 의지해서 쓰기 시작한다는 책 뒤의 문구를 보며 나도 저녁 하늘의 마지막 빛에 의지해 이 책을 읽겠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를 책장에 잠들어 있던 이 책을 <싸이코가 뜬다>(권리, 2005, 한겨레출판)를 읽고 꺼내들었다. 최근 꼬리무는 책 읽기(*나만의 별칭)을 하고 있고, 이 책과 <싸이코가 뜬다>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는 말에 이 책을 꺼내들며 기분이 좋았다. 책을 소유한다는 것에 가끔은 회의가 생기기도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마 내가 책을 소유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내가 하는 말이 나를 옭아매기 시작할 때면 난 늘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 말이 전혀 통할 수 없는 곳에 가서 낯선 언어 속에서 낯설어지고 싶었다. 그 낯섬 속에서 낯선 이를 만나고 낯선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 어차피 우린 돌아올 수 없는 회귀성 인간이며, 그 낯섬이 익숙함으로 바뀌면 우린 또 다른 낯섬을 찾게 되기 마련이면서 말이다.
가끔은 '이해'하며 읽는 책이 아니라 '분위기'에 젖어드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혹은 내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빠져들어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한없이 즐거워진다. 때론 한없이 누군가가 그리워지며 한없이 옛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독자를 젖게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낯섬의 안개 속에서 방황하며 지난 날을 회상하며 나 역시 책상에 앉아 지난 날을 쓰는 듯 했다.
요 며칠간 이상하게도 옛날 생각에 빠져있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 날을 후회하는 것이 소용없음을 알아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 보다는 내일을 기약하며 살기로 마음 먹은 것이 꽤 오래이건만, 그래도 난 가끔 옛 생각에 빠져들어 아련해진다. 아직도 내게 배수아는 쉬운 그대는 아니지만, 그녀의 감성에 빠지는 것. 그것은 가끔 괜찮겠다,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