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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여자
하성란 지음 / 창비 / 1999년 12월
평점 :
몇년 전, 장마철이었다. 비 특유의 비릿내를 맡으며 <여자, 정혜>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것인지 옆집 여자의 일상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영화는 느긋했고 조용했지만 계속 됐다. 순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무슨 모양이든 계속 된다. 하성란의 이 책 <옆집 여자>는 그 영화를 닮았다. 삶은 무슨 모양이든 계속 되고, 단조로운 그 속에 숨은 그림처럼 무언가들이 들어 있다. 때때로 책 속 단편들은 현재형의 시제를 갖고 있다. '507호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남자는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들고 허겁지겁 507호 안으로 들어선다' 「곰팡이꽃, p.191」에서 처럼 현재형을 가지고 있는 문장들은 삶의 일상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일상은 소란하지 않지만 지리멸렬하다. 그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엄마'이고 아내는 '아내'이다. 한 때는 여자였을 그녀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 하나의 생필품이다. 여자를 잃은 남자와 아이는 또 다른 여자를 찾고, 그 여자는 내 자리를 위협한다. (「옆집 여자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지나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곰팡이 꽃」) 보이는 것보다 타인의 삶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양파 」) 우린 자신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디 타인의 이면을 볼 수 있던 사람들이었던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내 자신에게만큼 관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가. 조금 낯설어 보이는 소설 속 현실들은 결국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모습들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는 순간 안타까운 슬픔은 자신을 자조하는 것으로 바뀐다. 하성란의 소설은 건조하게 현대인의 아픔을 토로한다. 그래서 때때로 하성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함이 클 수록 우린 한 번쯤 뒤돌아 봐야 한다. 그 불편함은 우리의 현실과 지나치게 닮아있는 데서 오는 거북함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 여자 뿐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은 모두 대체될 수 있는 대용품처럼 보이고 자신의 자리는 없다. 사회적인 위치란 내가 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구여도 괜찮은 곳들이다. 그 곳에서 우린 개인을 잃고 타인을 지각하지 못한다. (「깃발」, 「당신의 백미러」,「올콩」) 책 속 단편들은 이렇게 우리의 어두운 생활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어둡다고 말하기에는 이 모두가 우리의 삶들이다. 우리의 삶을 '어둡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불우한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작가는 그토록 담담하게도 이런 현실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아니야, 모두가 겪는 일인걸. 모두의 일이 되는 순간 어두운 일도 더 이상 어둡지만은 않은 법이지.'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독자의 마음 속에 안타까운 슬픔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