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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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넣고 얇게 저민 마늘과 고추 약간, 그리고 베이컨을 달달 볶는다. 마늘과 베이컨이 바삭하게 익으면 익힌 파스타를 넣고 다시 한 번 살짝 볶는다. 그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가 나온다. 한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지만 양을 좀 줄이면 출출한 시간 호화로운 간식도 될 수가 있다. 속일 수 없이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 걸까. 난 면으로 된 음식을 좋아한다. 여름에는 콩국수가 땡기고 겨울에는 포장마차의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진다. 홍콩 뒷골목에서 먹었던 쌀국수 맛을 잊지 못해서 아직도 유명한 쌀국수 집은 찾아 다니고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해물 파스타의 맛도 잊지 못해 유명한 파스타 집 앞에선 꼭 발걸음을 멈추고 메뉴를 들여다 본다. 파스타 집을 찾아 다니면서 다 먹어보지 못하고 메뉴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원하는 소스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는 내가 유난히 약한 종류가 있는데 바로 익힌 과일이나 채소이다. 생 과일, 생 야채는 정말 잘 먹으면서 유난히 익힌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케첩도 잘 안 먹는데 토마토 소스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크림 소스를 택하자니 반 정도 먹으면 속이 느글 거릴 것을 안다. 파스타 가게에서 늘 고르는 것은 올리브 오일 소스. 가끔 괜찮은 파스타 가게에서는 생 바질을 듬뿍 넣은 올리브 오일 파스타를 팔기도 하는데 그러면 금새 신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예전에 먹었던 이탈리아의 봉골레 파스타가 생각이 났다. 또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일 할 때, 종종 주방에서 만들어 먹던 갖은 재료를 다 넣은 '섞어'파스타도. 미각에 대한 추억은 은근히 유통기간이 길어서 작은 키워드에도 금새 그 때가 떠오른다. 그 때를 떠올리며 난 노란 벽돌로 지어진 작은 파스타 가게 앞에 서서 메뉴판을 보는 상상을 했다. 그래, 여기는 믿을만 해. 한 번 먹어볼까? 그렇게 책은 한장씩 넘어가며 색색의 파스타와 만나게 해 준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로 이미 익숙한 저자는 꽤 감칠맛 나게 자신의 파스타 이야기를 글로 풀어 놓는다. 그의 글을 맛보며 이탈리아와 런던의 파스타 맛을 떠올린 나처럼 그는 이 글을 풀어놓으며 자신이 머물렀던 이탈리아 동네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곳의 일상들을 파스타 위에 살짝 뿌려지는 치즈 가루처럼 뿌려놓는다. 이 것 역시 음식의 풍미를 더 하는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게 노란 파스타 가게의 메뉴를 살펴보고 나면 어느새 입가에 군침이 돈다. 그러며 냉장고 속에 잠자고 있는 재료들을 떠올려 본다.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
파스타가 시작 된 이탈리아와 그 곳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사람사는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보통날의 파스타'는 더 없이 맞아 떨어진다. 저자가 만들어 낸 파스타가 '새벽시장 파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름만으로 조금 더 특별한 맛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 맛이 아주 좋았다. 언젠가부터 훌쩍 떠나는 것에 매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언젠가 내가 걸은 길에서의 추억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런 기회가 올 수 있다면, 난 어떤 재료로 어떤 맛을 낼 수 있을까. 나도 보통 날의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를 담은, 하지만 이 책처럼 결코 평범하진 않은 그런 맛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아직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