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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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지영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진다. 내 것이 아닌 아픔과 마주쳐야 하는 그 느낌. 외면하고 싶지만 애써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어쩌면 내 것일지도 모를 그 아픔으로 내 일상을 조금 저어 놓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생각들 속에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고 싶지 않은 고민들이 불쑥 끼어드는 순간의 그런 불편함 말이다.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나는 이 책을 읽기가 조금 더 망설여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남자의 만남. 자칫 진부해지기 쉬운 이야기로 눈물어린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공지영의 문체가 가져다주는 흡입력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진실된 시선에 연유할 것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사형제 폐지라는 어떤 목적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나에겐 그다지 필요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사형수라는 소재 자체가 내게 던지는 물음은 단 한가지,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세 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하는 유정을 모니카 고모는 죽음의 극한에 가 있는 사형수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처음에 유정은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사형수인 윤수와 진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에게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형수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맑은 눈을 가진 윤수를 알아가는 과정은 유정이 점차 자신의 삶 속에서 어둠을 걷어내는 과정과 같다. 그토록 포기하고 싶었던 삶이, 그냥 쓰레기통에 무참하게 구겨서 넣어버리고 싶었던 삶이 서서히 인간에 대한 절실한 신뢰와 믿음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유정의 이야기와 함께 윤수의 블루노트가 함께 진행되어 나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윤수의 블루노트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잔해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한 인간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어떤 힘이 더욱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붙이고 있는 사형수라는 꼬리표 때문만은 아니다. 가난과 사회적 보호망의 부재라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점차 삶의 극한까지 몰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절실함. 그런 사회적 모순들의 복합적인 결과물들을 단순히 폭력적인 복수로 해결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처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거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재된 내 삶의 잔해를 치우며 비참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나와 만나면서 조금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기를 기도할 수 있다. 결국 사형수이든 작가이든 어린 아이든 판사이든,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그토록 죽고 싶다고 소리쳤던 그 삶이, 어쩌면 살아 있음에 대한 절절한 증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눈물과 회한과 상처들로 얼룩졌던 그 삶을 살아내면서 어쩌면 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낸 작가처럼 감동과 눈물 속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던 그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살아 있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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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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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런 곳을 꿈꾼다. 온통 책들로 둘러싸인 방. 오래된 책의 냄새가 폴폴 풍기지만 원했던 모든 책들이 있어서 보기만 해도 배부른 그런 곳. 그 곳에서 나는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책을 펼쳐들고 읽는다.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책을 집어 든다. 서정적인 시를 읽다가 고전 소설을 읽기도 하고 평소에는 읽기 꺼려했던 딱딱한 과학 서적들도 뒤적인다. 그곳에서 나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만 같은 그런 책들로 둘러싸인 풍경. 책과 내가 하나가 되는 풍경. 그 속에서 나도 한 권의 책이 되어버리는 상상을 한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이 소설은 책을 위한 판타지다. 발터 뫼르스는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오직 책을 위한 책을 환상적으로 창조해냈다. 오로지 책을 위한 책을 꿈꿔왔던 모든 이들에게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리는 그런 책 말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꿈꾸는 책들의 도시, 그 도시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 모험들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아직 일흔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공룡 미텐메츠는 대부 시인 단첼로트가 죽고 나서 그가 남긴 몇 장의 원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꿈꾸는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으로 가게 된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 그 곳은 수천 개나 되는 고서점들과 출판사와 종이 공장들, 시인들의 낭독회가 열리는 카페, 독서용 안경이나 장서표 등을 파는 가게 등 오직 책을 위한 모든 것들이 있는 곳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꿈꾸었을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도시다. 미텐메츠는 바로 이 곳에서 단첼로트가 남긴 원고에 관한 비밀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자실험실의 스마이크를 만나게 되면서 미텐메츠는 오직 책들을 위한 도시인 것만 같았던 부흐하임에 숨겨져 있는 지하 세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귀중한 책들을 가지기 위한 책 사냥꾼들의 혈투와 살아 움직이며 생명을 위협하는 책들, 책을 먹고 사는 부흐링족들과 지하 미로에 숨겨진 갖가지 위험, 그리고 그림자 제왕에 이르기까지 지하 세계 속에서 미텐메츠가 겪는 다채로운 모험들이 펼쳐진다. 책을 둘러싼 갖가지 모험들은 작가가 가진 상상력의 깊이에 놀라게 만들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또한 지하 미로에서의 모험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책들에 대한 첫 장의 경고가 상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책과 관련된 다양한 모험들을 담고 있지만 책에 관련한 현실 세계의 상황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시사적이다. 자본의 힘에 종속된 출판계의 현황과 독설적인 비평가의 모습 등을 꼬집는 장면은 환상적인 미텐메츠의 여정 속에 숨겨진 재미를 선사한다. 책이 이제 더 이상 책 그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자본의 힘으로 평가받는 현실의 상황을 발터 뫼르스는 재치 있는 비유와 상징들로 멋들어지게 표현해 냈다. 또한 하나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겪게 되는 작가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한 작가적 고뇌는 ‘오름’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오름’은 작가가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어떤 영적인 순간을 일컫는데 잠재되어 있던 거대한 이야기들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그런 순간이 바로 ‘오름’이다. 오름을 느꼈을 때 작가는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킬 수 있다. 오름을 느끼지 않고 만들어지는 책은 단순한 종이 뭉치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 활활 타오르는 오름의 순간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 오름은 살아있는 동안 활활 타오르는 순간을 가지라는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순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쇠로 책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로 글자를 새긴다 해도 언젠가는 이 지구와 함께 태양에 부딪치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없는 법이다. 예술에는 전혀 없다. 한 작가가 죽은 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희미한 램프처럼 서서히 꺼져 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가다.”


꿈꾸는 책, 그저 오랜 시간을 누군가가 펼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책. 이제 당신이 집어 들면 그 책은 살아 움직이며 당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 책은 더 이상 꿈꾸지 않고 살아서 존재하기 시작한다. 당신 생의 한 가운데로 깊이 들어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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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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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맺음이다? 결혼은 개인적 사랑의 사회학적 산물이다? 토마스 만에 비견되는 문학의 거장, 산도르 마라이가 생각했던 결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소설은 산도르 마라이가 1940년대 사회적 상황을 토대로 빚어낸 결혼과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40년대 유럽의 시민 사회를 토대로 결혼과 결혼으로 인한 변화, 결혼의 바탕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롱카. 페터와 결혼한 그녀는 아름답고 교양있는 중산층의 여자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성실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편의 마음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나서도 무척이나 침착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그녀의 자제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마음을 비우고 그와 헤어지게 된다. 어느날 문득 그녀는 알게 되는 것이다. 결혼과 사랑에 관한 단 하나의 진실을.


“오직 나한테만 맞는 유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이런저런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맞는 면이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과 꼭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기적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빛만큼 어둠을 지닌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야.”


페터. 용기없는 남자다. 외로움이 너무 강해서 근본적으로 그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남자다. 그는 허영심이 많고 나약하며 두려움이 많다. 사랑한 여자를 위해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고 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랑보다 자신의 허영심이 더 중요했고 그래서 그는 두 번의 결혼 다 실패한다. 그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사랑과 결혼의 실패에 대한 기나긴 변명이다.


“조건 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네. 영웅정신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강하고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네. 사랑을 주면서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는 더욱 부끄러워하지. 인간은 원래 애정을 필요로 하며 애정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슬픈 비밀,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네.”


유디트. 그녀는 페터의 집에서 일했던 하녀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여자.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굴욕적인 신분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다. 외로운 한 남자에게 있어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실은 부자들로부터 돈 말고는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했다는 고백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부유한 시민 계층에 대한 냉소적인 기록이고 결혼을 통해서도 그 계층으로 편입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굴욕적인 고백이다. 사랑과 결혼도 개인의 사회적 환경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가치한 것임을 유디트,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산도르 마라이는 세 사람의 고백을 통해 사랑과 결혼이 사회 계층같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사회적 환경의 결합, 구조적인 결합으로서의 결혼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결혼은 마음과 마음이 아닌 하나의 세계와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만남이다.


어쨌든 세 사람의 독백을 통해 표현되는 산도르 마라이의 문장들은 열정적인 힘이 있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이 시간을 초월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열정적인 그의 문장들에 힘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그 알 수 없는 구조적 변화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2000년대, 그가 만약 다시 결혼의 변화를 쓴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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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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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의 어떤 차가움을 기대했다면 이 소설은 조금 싱거울 수도 있다. 이젠 조금 식상해져 버린 연애소설에 게다가 만남의 계기도 미팅 사이트라는 인터넷이라는 게 조금 진부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뭐랄까. 요시다 슈이치만의 어떤 특별한 것들, 이를 테면 미세한 감정의 자극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조금 진부하게 출발하긴 했지만 도쿄만의 풍경들과 어우러지는 감정의 엇갈림들이 소재 자체의 진부함을 상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미팅 사이트에서 만난 료스케와 료코. 그들 만남의 계기가 보여주듯 처음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쾌락의 충족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들의 가벼운 관계 속에서는 상대방의 자극적인 몸외에는 이름도 직업도 사실 별로 중요한 사실이 되지 못한다. 료코는 료스케에게 안겨 있는 그 시간, 그 몸의 감촉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면서도 정작 자신의 실제 이름은 그에게 밝히지 못한다. 몸과 몸은 접촉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사랑의 단면들. 그들이 도쿄만을 사이에 두고 일하는 것처럼 그들 마음 속에도 도쿄만의 물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메일과 핸드폰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 어디서든 울려 퍼지는 메시지의 수신음은 그래서 더더욱 공허하게 느껴진다.

료스케의 과거와 료스케를 취재하는 소설가, 그리고 료스케를 모델로 하는 소설 등은 다소 따분하고 지루해 질 수 있는 전개를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 료스케를 모델로 하는 소설은 적당히 현실을 예측하기도 하고 료코가 료스케의 마음 한 부분을 읽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료코가 알지 못했던 료스케의 상처에 관한 일화를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료코는 그 상처를 통해 어쩌면 료스케에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료스케는 한 발 물러서 있는 상태다.

“......정말로 사랑했었어. ......그랬는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런데도 끝나버렸지. 사람은 무엇에든 싫증을 내기 마련이야.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어. 계속 좋아하고 싶지만, 마음이 제멋대로 이제 싫증이 났다고 말하는 거야. ......끝나지 않는 게 있을까? 응? 너 역시 우리의 이런 관계가 계속될 거라고는 믿지 않을 거 아냐?”

한때 사랑을 했지만 이제는 사랑의 끝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남자 앞에 여자는 어쩌면 그저 공허하게만 들려왔던 사랑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했었다고, 서글프게 말한다. 서로 엇갈려 버린 감정의 선. 여자의 마음이 ON되는 순간 남자의 마음이 OFF되는, 그 절묘한 엇갈림. 소설은 영화 <일식>의 장면들을 중간 중간 교차시키며 사랑의 쓸쓸한 풍경들을 무리없이 끼워놓는다.

순간 순간 공허하긴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이나 날카로운 관계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말이 다소 의외로 느껴질 정도다. 차가움을 기대했다간 다소 싱거울 수 있겠다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덮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니, 요시다 슈이치가 말하는 사랑, 타인과의 관계는 여전히 서늘했다.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사랑의 쓸쓸한 풍경이 되고 사랑의 약속이나 맹세를 말하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어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요시다 슈이치가 말하는 타인과의 관계, 그 서늘함은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조금 더 쓸쓸해지고 냉소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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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그러면 안되는데요?
ㅎㅎ 본인 마음이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꼭 사보고 싶게 리뷰를 쓰셨네요.^^

ALINE 2005-05-2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마지막 문장 말인가요?^^
이상하죠...쓸쓸해질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의 소설이 끌리니 말이예요.

플레져 2005-06-0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리네님, 잘 지내셨지요?
겨우 보름간의 외출을 하려고 호들갑스럽게 서재를 비운다 어쩐다 한 거 같아 좀 쑥쓰러워요 ^^;;;
이 책, 참 좋지요. 제목만 봐도 한 켠이 쓸쓸해져요...

ALINE 2005-06-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님의 리뷰를 보지 못하는 보름간은 너무 길었답니다^^
얼른 님의 서재로 달려가야겠어요^^
 
열대어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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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를 읽는 일은 위험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애써 외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그의 책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는 이상한 중독성을 발휘하는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내게 그런 작가다. 마치 커피나 콜라의 카페인이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카페인의 중독 작용에 의해 마실 수밖에 없듯이. 차갑다는 표현도, 무섭다는 표현도 '중독적'이라는 표현보다 강렬하지 않다. 파란 물 위에 떠있는 검은 열대어의 이미지는 마치 그 강렬한 중독에의 섬뜩한 상징 같다.

다이스케는 마미와 그녀의 아이, 그리고 이복동생 미쓰오와 함께 산다. 미성년의 어린 여자애를 아무 거리낌없이 탐하면서도 같이 사는 마미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는 다이스케. 하루종일 열대어만을 바라보고 있는 미쓰오. 같이 살고 있지만 의미없어 보이는 관계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다이스케는 여행을 계획하지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다. 다이스케가 건축 현장에 건축주의 어린 딸과 함께 있다가 불을 내고 미쓰오가 여행 가려고 모아 두었던 돈을 들고 집을 나가면서 일상에 숨어 있던 위험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번째 이야기. 남자는 여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가 이유없이 여자에게 통조림의 콩을 던지고 여자는 화가 나서 집을 나간다. 남자는 여자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의 여자를 유혹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가할 수 있는 최대치의 폭력.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비인간성의 극한. 그런 무서움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무서움들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남자에게 조금 화가 났다가 이내 적응이 된다. 요시다 슈이치의 인물들에 감정 이입을 하려고 하는 건 위험하다. 그의 소설을 무사히 읽어내려 가려면 적당한 거리, 조금은 냉담해진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휴가를 맞아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닛타. 주인장의 아내를 유혹하려 하는 것 같지만 도쿄로 와서는 느닷없이 내려주고 돌아가라고 말한다. 일주일 후를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의미가 없다. 기다림, 약속, 기억이라는 건 요시다 슈이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무관심, 망각, 무심함이 가장 철저하게 드러나는 것이 그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죠. 누가 기다려주는 게 질색이에요. 애인과 만나기로 했는데 일 때문에 늦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삼십 분쯤 지나 버려서 이제는 없겠지 생각하고 가보면 거기에 그냥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뭐랄까, 소름이 끼친다니까요. 원래 같으면 감격해야 할 텐데 아무리 좋아하는 여자라도 소름이 끼쳐버리거든요." 227쪽

쓸쓸함의 원형 같은 것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요시다 슈이치. 너무 쓸쓸해서 못 견디겠을 때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그. 나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그 무서움은 내게도 이미 익숙한 것이라는 사실이 나는 더 무섭게 느껴진다. 요시다 슈이치를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작품들을 다시 들춰 보게 되는 것은 그런 무서움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그런 차가움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쓸쓸해서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일상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일상과 서늘한 관계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차가운 시선. 그런 차가운 중독. 나는 그 차가운 중독을 거부할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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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4-0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탄이 나오는 리뷰에요.
님의 리뷰를 거부할 힘이 없어요...

ALINE 2005-04-10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