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진다. 내 것이 아닌 아픔과 마주쳐야 하는 그 느낌. 외면하고 싶지만 애써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어쩌면 내 것일지도 모를 그 아픔으로 내 일상을 조금 저어 놓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생각들 속에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고 싶지 않은 고민들이 불쑥 끼어드는 순간의 그런 불편함 말이다.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나는 이 책을 읽기가 조금 더 망설여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남자의 만남. 자칫 진부해지기 쉬운 이야기로 눈물어린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공지영의 문체가 가져다주는 흡입력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진실된 시선에 연유할 것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사형제 폐지라는 어떤 목적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나에겐 그다지 필요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사형수라는 소재 자체가 내게 던지는 물음은 단 한가지,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세 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하는 유정을 모니카 고모는 죽음의 극한에 가 있는 사형수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처음에 유정은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사형수인 윤수와 진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에게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형수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맑은 눈을 가진 윤수를 알아가는 과정은 유정이 점차 자신의 삶 속에서 어둠을 걷어내는 과정과 같다. 그토록 포기하고 싶었던 삶이, 그냥 쓰레기통에 무참하게 구겨서 넣어버리고 싶었던 삶이 서서히 인간에 대한 절실한 신뢰와 믿음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유정의 이야기와 함께 윤수의 블루노트가 함께 진행되어 나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윤수의 블루노트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잔해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한 인간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어떤 힘이 더욱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붙이고 있는 사형수라는 꼬리표 때문만은 아니다. 가난과 사회적 보호망의 부재라는 사회적 모순 속에서 점차 삶의 극한까지 몰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절실함. 그런 사회적 모순들의 복합적인 결과물들을 단순히 폭력적인 복수로 해결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처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거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재된 내 삶의 잔해를 치우며 비참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나와 만나면서 조금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기를 기도할 수 있다. 결국 사형수이든 작가이든 어린 아이든 판사이든,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그토록 죽고 싶다고 소리쳤던 그 삶이, 어쩌면 살아 있음에 대한 절절한 증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눈물과 회한과 상처들로 얼룩졌던 그 삶을 살아내면서 어쩌면 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낸 작가처럼 감동과 눈물 속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던 그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살아 있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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