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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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맺음이다? 결혼은 개인적 사랑의 사회학적 산물이다? 토마스 만에 비견되는 문학의 거장, 산도르 마라이가 생각했던 결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소설은 산도르 마라이가 1940년대 사회적 상황을 토대로 빚어낸 결혼과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40년대 유럽의 시민 사회를 토대로 결혼과 결혼으로 인한 변화, 결혼의 바탕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롱카. 페터와 결혼한 그녀는 아름답고 교양있는 중산층의 여자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성실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편의 마음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여자가 누군지를 알게 되고 나서도 무척이나 침착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그녀의 자제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마음을 비우고 그와 헤어지게 된다. 어느날 문득 그녀는 알게 되는 것이다. 결혼과 사랑에 관한 단 하나의 진실을.


“오직 나한테만 맞는 유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이런저런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맞는 면이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과 꼭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기적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빛만큼 어둠을 지닌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야.”


페터. 용기없는 남자다. 외로움이 너무 강해서 근본적으로 그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남자다. 그는 허영심이 많고 나약하며 두려움이 많다. 사랑한 여자를 위해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고 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랑보다 자신의 허영심이 더 중요했고 그래서 그는 두 번의 결혼 다 실패한다. 그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사랑과 결혼의 실패에 대한 기나긴 변명이다.


“조건 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네. 영웅정신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강하고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네. 사랑을 주면서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는 더욱 부끄러워하지. 인간은 원래 애정을 필요로 하며 애정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슬픈 비밀,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네.”


유디트. 그녀는 페터의 집에서 일했던 하녀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여자.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굴욕적인 신분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다. 외로운 한 남자에게 있어 자신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실은 부자들로부터 돈 말고는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했다는 고백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부유한 시민 계층에 대한 냉소적인 기록이고 결혼을 통해서도 그 계층으로 편입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굴욕적인 고백이다. 사랑과 결혼도 개인의 사회적 환경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고 무가치한 것임을 유디트,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된다.


 산도르 마라이는 세 사람의 고백을 통해 사랑과 결혼이 사회 계층같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사회적 환경의 결합, 구조적인 결합으로서의 결혼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결혼은 마음과 마음이 아닌 하나의 세계와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만남이다.


어쨌든 세 사람의 독백을 통해 표현되는 산도르 마라이의 문장들은 열정적인 힘이 있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이 시간을 초월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열정적인 그의 문장들에 힘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그 알 수 없는 구조적 변화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2000년대, 그가 만약 다시 결혼의 변화를 쓴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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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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