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힘겹고 눈물 겨웠던 책읽기..
그것은 이 책이 슬퍼서도 어려워서도 그 어떤 나쁜 이유가 아닌 내게 많은 생각과 다짐을 안겨줘서다
 
#1. 29살 그녀를 말하다
작년 이 맘때를 전후하여 이 책이 내 눈에 내 맘에 참 많이도 띄였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꺼냈다를 반복하다 그녀의 홈피에서 이 책의 리뷰를 읽었다. 그녀는 글을 참 잘 쓴다. 자주 글을 쓰지는 않지만 한 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생각을 요목조목 길디 긴 글을 딴 데로 새지도 않고 참 잘 쓴다. 그런 그녀가 쓴 On the Road의 리뷰는 '읽고 싶다, 끌린다'는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빌려 준 책 On the Road..
참 이상도 하지..
그녀는 솔직히 뉴욕이나 모스크바의 건드리면 깨어질 듯 짱짱한 겨울 밤하늘이 어울리지 배낭여행객의 메카 카오산 로드랑은 안 어울릴 듯 한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고 카오산 로드에 가고 싶었다.
29살 힘겹고 혹독한 한 해를 지내고 있는 그녀..
당당하고 멋진 그러면서 여리디 여린 아름다운 그녀..
멋진 30대를 맞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사랑을 꿈꾸었으며, 멋진 30대에 대한 열망만큼 지금 많이 아파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때는 몰랐으나 나의 29살 시절이 그러했고, 아팠던 만큼 나는 지금 내 삶을 반짝이며 살 수 있기에 감히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으녕..조금만 더 아파하렴, 조금만 더 울어보렴, 울지 않으려 견디지 않아도 돼. 지금의 그 방황은 너의 청춘의 상장이 될 날이 올 터이니..'
 
#33살 아련.. 길 위에서 길을 찾다
누군가는 사진기를 들면 자꾸 하늘에 렌즈를 들이댄다 하였다.
나는..
나는..
그렇게나 길이란 곳에 끌리고 길에 렌즈를 들이대게 된다.
지금은 관용구가 되어버린 '길 위에서 길을 잃다...'란 말
참 아이러니 하다. 길 위에 서 있음에도 '길'이란 것을 잃어버리다니
올 한해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마음의 길을 잃었더랬다. 아예 골목을 막아버린 경우도 있었고, 지금도 헤메이고 있는 길도 있다. 늘 헤매고 다니기에 '길'을 좋아하는 것일까? 왜 길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한 건 33살의 아련..길 위에서 길을 찾은 듯하다. 내 마음이 나아갈 길을 On the Road를 읽으며 찾은 듯 하다.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카오산 로드에 가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버린 책읽기였다.
화보에나 나옴직한 멋드러진 관광지들 좋다. 일탈을 꿈꾸며 '언젠가는 파리를 갈 테야.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의 두오모도 꼭 가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겉핱기식으로 씨익 둘러보고 '나 거기 다녀왔어' 자랑 몇번 하고 잊혀지는 관광지들을 실은 나도 참 많이 동경한다. 그러나 내가 정작 되고 싶은 건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
 
카오산 로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엔 카오산에 1년씩 2년씩 여행하며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카오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카오산이 여행의 시작인 사람, 여행이 마지막인 사람..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카오산에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문득문득 그곳에서의 인연들과 생각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지..
 
카오산 하나만 보았을 땐 특출나게 유명하거나 구경거리는 없지만 여행자 스스로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있는 그 곳..
그 곳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늘 여기 있을테니 당신들 나에게서 위안을 얻어가오..
내게 한달 두달 혹은 1년 2년 머물다 훌쩍 떠나가도 좋고 굳이 나에게서 좋은 점만 봐 달라 요구하지 않을 터이니 그저 한 조각 위안이 필요할 때, 말 없이 곁에 있어주고 토닥여 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오시오..내 마음 속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지겨우면 떠나가도 괜찮다오. 당신의 일상에서 가끔 내 마음 속 놀이터에서 놀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흐트러지는 마음 다 잡을 수 있다면, 내 마음 속 들락 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 받더라도 나는 괜찮다오. 사람에게서 상처 받은 것 언젠가 사람으로 치유 받으리라는 것을 아니까..
 
#카오산 로드 그곳..
책을 덮고 집에 와서 이 책의 모태가 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책 속 그들의 많은 이야기를 읽은 직후였던 터라 그들이 꼭 예전부터 알던 절친한 이웃 같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 눈물 겨웠다. 카오산.. 그곳에 가면 간고등어 같은 내 삶이 대서양을 누비던 등이 반짝이는 살아있는 고등어처럼 바뀔 수 있을까? 라는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반짝임이 그들에겐 있었다.
 
DVD 플레이어가 멈추고, 멈추었던 것을 3번을 반복해 본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들이 있다.
아직은 배낭보다는 슈트케이스 들고 새침 떨며 여행보다는 관광을 더 사랑하는 나이지만 언젠가 카오산에서 양동이에 담아주는 칵테일을 들이키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사람이라는 것.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카오산을 사랑하며, 카오산의 방황하는 혹은 방황했던 영혼들이 꼭 나 같기에 그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제 겨우 30대인데 늙었나? 눈물이 찔끔 번진다...
 
이 세상 모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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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추천을 받아 구매하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추천을 믿지 않으련다.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서른 살의 시인이 오로지 삶과 말의 힘으로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을 모았다. 남편에게 맞고 혼자서 애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웃으며 적어간 삶의 기록이다.
라는 책 소개 글 중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서른 살의 시인이 오로지 삶과 말의 힘으로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을 모았다. 딱 요 부분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다.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그 글들을 모은 책들에 얼마나 실망을 많이 하였던가..

 프롤로그를 살펴보자
 이미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

 여기,

결혼 생활 내내 남편한테 욕설과 위압적인 태도에 시달리다가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오른쪽 귀가 멀고,

아이 낳은 지 석 달 만에 살이 30킬로그램 넘게 빠져버려

배만 볼록 나오고 엉덩이는 하나도 없는 난민 같은 몸으로

한 팔에는 젖먹이 아이를 달래고,

한 팔로는 끼니때마다 위장이 상한 남편 먹일 죽을 달이며

지내는 한 여인, '그녀'가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밤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남편에게 밥상을 찍히고, 발로 밟히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머리채를 잡힌 채로

방에서 방으로, 집 안에서 문밖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는데,

부엌칼 들고 위협하던 남편이란 사람이,

들어간 지 며칠 안 된 그녀의 직장 상사가

아이 돌봐줄 보육원을 소개해주었다는 이유로

아무나하고나 붙어먹는 년이라는 말을 하였을 때,

그녀, 비로소 남편을 밀치고 맨발로 경찰서로 달려간다.

 

한 팔로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한 팔로는 죽어라 그녀 얼굴에 주먹 날리던 남편은

경찰서고 따라와 잘못했다고 빈다.

 

중략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의 인생은 불행한가?

그녀는 잘 웃고, 씩씩하며, 때때로 생각 없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미."

이미 가진 것 때문에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녀.

 

 글들이 죄다 이 모양이다.
 나도 내 미니홈피에 일기를 쓸 때 시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곤 한다. '그녀' 충분히 아팠고 그 아츰을 불행하지 않다 여기며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알겠다. 잘 살아내기 위해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 가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블로그에서만으로 끝났어야 했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볼 수 있는 삶을 '나 불행하지 않아요' 라고 보여 주는 것을 무엇이라 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성찰은 시가 아닌 글임에도 시처럼 행과 연을 만들어 적은 그 순간에 다 사라지고 없어진 느낌이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도 많았다. 그러나 독자가 스스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읽을 권리를 박탈한, 시도 아닌 시같은 글은 이렇게 활자로 척하니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싫다' .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 말하지만 실은 '나 이리도 아파요. 불행해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것 같아 거슬린다.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이 책, 시처럼이 아닌 짧으나마 수필 형식 그대로 적어내려 갔다면 가끔씩 끼워져 있는 사진들과 함께 가슴 뻐근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참 아쉬움이 남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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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즈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그 영향으로 절친한 친구와 시간을 내어서 경주에 가 안압지나 황룡사지를 찾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같이 읽고 오곤 했었다.

 그냥 유적지를 휙 둘러만 보고 오는 것과 전문가가 쓴 책의 해설(?)을 읽으며 유적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다가오는 감동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두 남달랐다. 그 후 황룡사지는 내 마음 속에서(카톨릭 신자임에도) 일종의 성지 같은 것으로 남게 되었다. 그 때 유홍준 전 청장이 그랬다. ‘황룡사는 지금 기술과 재료로는 복원이 힘들다’고 분명히 그랬다. 안타까웠다. 그 옛날 다섯 번씩이나 벼락 맞아도 끈질기게 여섯 번을 세웠던 탑을 문명과 기술이 더 발달했다고 믿는 현대에 복원하지 못하다니..절터에 서 있기만 해도 그 웅장함에 한낱 작은 인간으로써 겸허함을 느끼게 하는 그 절을 복원을 못하다니..이런 저런 생각에 많이 안타까워 했고 그 후 황룡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는 꼭꼭 챙겨보곤 했다.

 세월이 10년은 훌쩍 흐른 2008년 2월, 600여년의 시간동안 대한민국을 지키오던 숭례문이 전소되었다. 문화재 청장이란 양반이 전소된 국보1호 앞에서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바꾸신다. ‘황룡사는 복원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 황룡사를 복원하듯 숭례문도 복원하면 된다’ 이런 요지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복원이야 되면 그것도 문화재에 대해 뭣 좀 안다는 문화재청장 말대로 완벽하게 복원된다면야 불행 중 다행이다.

그 뒤에 고구려왕이 장차 신라를 치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으니 침범할 수 없다”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황룡사 장륙불상과 9층탑, 진평왕의 “하늘이 준 옥대”가 있다 하여 드디어 그들은 음모를 중지하였다.

 승려가 쓴 글이라 불교에 대한 원시적이기까지 한 믿음이 많이 보이지만 윗 구절을 읽으며 조금은 부끄러웠다. 종교를 떠나서 황룡사 장륙불상과 9층탑은 국가의 보물이다. 그런 보물을 나라에서 소중히 여기는 고급 문화가 있었기에 고구려가 감히 신라를 넘보지 못한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는가? 문화재는 곳곳에 방치되어 있고, 국보 1호는 지키지 못했으며, 전소된 국보 1호 앞에서 성급한 복원을 입에 담고 있다

 일연이 말하듯(일인즉 마땅히 궁식과 집터를 못으로 만들어 오는 세대를 경계하고 아주 뿌리를 뽑아버려 자손들에게 교훈을 보여줄 것이로되, 유슌한 자를 맞아들이고 배반하는 자를 치는 것은 앞서 임금들의 좋은 법이요, 망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지난날 성인들의 공통된 규범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옛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역사에 전하고 있는 말이다.) 망한 것 - 숭례문은 다시 일으키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옛 것은 다섯 번 벼락 맞은 화룡사 9층 탑을 끈질기게 6번씩이나 다시 세운 그것 뿐만이 아닐지 모른다.

 또 왕이 금강령에 갔을 때에 북악 귀신이 춤을 추어 보였는데 춤 이름이 옥도금이었다. 또 동례전에서 연회를 할 때는 터 귀신이 나와 춤을 추엇는데 그 이름은 지백 급간이다.

 <어법집>에는 이르기를, “이 당시 산신이 임금 앞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 ‘지리다도파도파등자(智理多都波都波等者)!’라고 하였는데, 즉 말하자면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 가운데 뻔히 알면서도 도망치는 자가 많으므로 도성 안이 장차 결단이 날 판’이라는 의미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터 귀신이나 산신들이 나라가 장차 망할 줄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춤을 추어 경고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좋은 징조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유흥에만 너무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결국 망하고 만 것이다 - 어떠한 왕조, 어떠한 국가이든 영원한 나라는 없다. 인류 역사상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를 겪는다. 일연의 삼국사기에도 신라,백제,고구려의 흥망성쇠가 다 들어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잇는 대한민국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다만 건국 초기의 일들을 따져본다면 윗자리에 앉은 자가 자신을 위하여는 검약하였고, 남을 위하여는 관대하였으며, 관제의 설정은 간략하게 하고, 정치 행사는 간편하게 하였으며,

- 삼국을 통일하였던 신라의 얘기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 특히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이런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겨 담아야 한다. 낭이 말하기를,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겸손하게도 남의 아랫자리에 가서 앉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이 첫째요, 드센 부자로서 검소한 의복을 입는 사람을 보았는데 이것이 둘째요, 근본이 세도 양반으로서 위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이 셋째올시다” 하였다. 또한 경문대왕이 태자가 되기 전 세상에 나가 공부하다 만난 3명의 아름다운 이에 대한 이야기도 깊이 새겨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이명박 정부가 절실히 바라는 선진국이란 영어를 잘하고 국민소득 2만불을 훌쩍 넘고 이런 것들만 말하여서는 안 될것이다. 선진국이란 느리지만 여유로운 고급 문화를 이루고, 윗사람이 겸손하고 검약한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이루어지는 나라일진대 지금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선진국의 대열로! 무조건 경제! 경제!를 외치다 과장이긴 하지만 나라의 망조 기미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걱정이 된다.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전 왕조를 살펴보아도 한 나라의 부흥기에는 문화가 아름답게 꽃피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가 피고 있는가? 알지도 못한 채 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아직 씨도 뿌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불탄 문화재의 사진을 보며..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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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첫사랑이었다.
내 중학교 시절과 20대 청춘을 관통하는 내 삶의 가장 큰 오마쥬이다.
유진이와 친해지게 된 계기도 어쩜 장국영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코끝의 웃음을 사랑했었고
그의 노래
노래 부를 때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퍼포먼스
그의 연기..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조차도 그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아팠다.
그 감정이 장국영이란 사람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 '모성 본능 일으키기' 이란 걸 그 때는 몰랐다.

 
그런 그가 죽었다.
만우절..거짓말 같이 죽었다.
아직도 그의 죽음이 거짓말 같기도 하다.

 
2008년 4월 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나는 지금은 영구제명 되었지만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던 클럽쳇창에서 뜻하지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만우절..장국영이 죽은 날이에요..
그랬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날은 만우절이었고 내 청춘의 오마쥬 장국영이 죽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렇지 심야 영화 음악방송에선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이 흘러나온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꺼내 들을 수 밖에..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풍월> <패왕별희> <동사서독>... 다 기억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잊고 있었고, 다 잊은 줄 알았으나 생생히 기억나는 그의 필모그래피들... 그 영화들과 그의 음악들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밤들을 세었던가..

매년 4월 1일이 되면 나는 어쩜 이 책을 집어 들지도 모른다.
마치 이 책을 읽었단 기억조차 만우절 농담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매년 이 책을 집어 들고 그를 추모하는 것이 만우절 추모행사처럼 될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발이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아비정전> 아비

아비 그 자체였던 영원한 꺼꺼 장국영.. 만다린 호텔 24층에서 뛰어내리는 그 순간..

그는 땅에 내려앉는 새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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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한마디 - 두 번째 이야기

이국환의 책 읽는 아침 2월 21일 선정도서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절친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흔히 말하는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는데 생명의 존재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아 계류유산을 하여 친구가 한동안 괴로워 하였다. 그즈음 인터넷 써핑을 하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제목부터가 내 친구에게 속삭이는 것 같아 냉큼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였더랬다. 그리고 며칠 후 교수님께서 방송에서 소개하신다. 잠결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번주 방송 선정 도서야.내가 먼저 읽을 터이니 좀 가져와' 

친구가 책을 가져오고서도 며칠을 가게 테이블에 얹어만 놓고만 있다가 오늘에야 읽었다.그것도 내가 일기장에 이런 일기를 쓴 날..

20대 후반 그리고 30살 언저리 이때쯤 나는 항상 세상에 발 딛기를 겁내했고 이런저런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 바빴어.하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이지만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나와 동갑이지만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나보다 나이도 많고 제약이 많지만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나를 반성해.그리고 또 다짐해.남이 살아주지 않는 내 인생 더 열정적으로 살리라! 늘 반짝이는 사람이 되리라!
운명이 나를 막겠어? 팔자가 나를 막겠어?돈이 나를 막겠어? 아니! 나에게 제약을 주는 건 내 맘가짐뿐이란 걸 서른이 훌쩍 넘은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그렇게 이 책은 내게 찾아왔다.내가 이 책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를 찾아 왔다고 믿는다. 친구에게 위로가 되어줄까 싶어 선물했지만 결국은 내게 참 많은 위안과 새로운 다짐들을 안겨준 책읽기...이 책은 그랬다.

안 되는 이유를 찾아가며 욕망을 접기 바빠던 20대를 지나고 조그마한 용기를 내어보는 이때 푸주간 앞의 개가 되지 않기 위해 '욕망을 접거나 용기를 내거나'라는 귀절이나 '낭중지추' '아무거나..는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의 표현'이라는 귀절은 가슴에 마구 꽂혀 들어왔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막 설레인다. 나를 움직인 한마디 정도가 아니라 나를 움직일 보석같은 글귀들을 마구 선물 받은 지금,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고요하게 그러나 반짝이면서..세상 건전하지 못한 것들엔 무심하게 그러나 내 삶엔 열정적으로..이런 다짐들로 마구 설레이는 이 밤. 설레일 수 있어서 행복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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