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없으면 용기가 생긴다

 

스스로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 무아의 경지다. 설령 천만인의 상대가 있다손 쳐도, 자신은 혼자서라도 가는 때는 용기가 있는 때로 그 어떤 부귀도 위세도 안중에 없기에 무욕의 경지이다.

 

 

[拾遺] 『맹자』 「공손추상」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옛날에 증자가 제자인 자양에게 말했다.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용기에 대해서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지 않다면 누더기를 걸친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다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하게 대적할 수 있다.”


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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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文, 행行, 심心은 학문을 하는 세 가지 단계이다

 

배움의 도는 하나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단계는 세 가지이다. 처음에는 옛사람의 ‘문장文’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옛사람의 ‘행실行’을 배우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마지막에는 옛사람의 ‘참된 정신心’을 배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처음에 옛사람의 문장을 배워야겠다는 뜻을 세운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옛사람의 참된 정신을 배우겠다고 한 것은 자신이 뜻한 학문을 성숙시키겠다는 증거이다. 때문에 학문에는 세 가지의 단계가 있으나, 본래 각자가 따로따로인 게 아니라 시종일관 마음으로 마음의 학문을 하기에 세 가지 단계는 있으면서도 없다.

 

[拾遺] 『논어』 「술이」 제24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으니, 학문과 행실과 성실과 신의이다子以四敎: 文, 行, 忠, 信.”

 

언지질록 제1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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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일이 많으면 근심도 많다

 

물건이 하나 늘면 하는 일이 하나 더 늘게 된다. 하는 일이 하나 더 늘면 번거로움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拾遺]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은 일 분을 덜면 곧 일 분을 초월한다. 만약 사귐을 덜면 곧 시끄러움을 면하고, 말을 덜면 곧 허물이 적어지고, 생각을 덜면 곧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을 덜면 곧 본성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人生減省一分, 便超脫一分. 如交遊減, 便免紛擾. 言語減, 便寡愆尤. 思慮減, 則精神不耗. 聰明減, 則混沌可完. 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 眞桎梏此生哉!”
칭기스칸을 보좌한 명재상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이익 하나를 더하는 것은 해악 하나를 없애는 것보다 더 못하다興一利不如除一害”라고 했습니다.

 

<언지록 219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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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역경과 순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나는 세상일에 순경과 역경이라는 두 가지가 있지 않고 그 순경과 역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이 순경이면 남들이 역경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순경이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이 역경이면 남들이 순경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역경이다. 과연 순경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일까? 도리에 달통한 자는 늘 도리를 저울로 삼아 일의 경중을 정할 뿐이므로 그 순경과 역경이 안중에 없다. 

 

[拾遺] 『공자가어』는 “버섯과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생겨나 사람이 없어도 향기를 풍긴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역경에 처해도 뜻과 절개를 지닌다는 비유입니다.  

<언지질록 133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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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지록言志錄

큰 뜻, 짧은 말로 천고의 심금을 울리다

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712쪽|46판 양장|24,000원

2012년 11월 25일|ISBN 978-89-97779-08-6 03150

일본 리더들이 선택한 최고의 <처세의 명저> <불멸의 리더학>

사토 잇사이의 『언지록』 4부작 국내 첫 번역, 소개

 

 

소년 시절에 배워두면 장년에 도움이 되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

장년에 배워두면 늙어서도 기력이 쇠하지 않는다.

노년에 배워두면 죽어서도 그 이름이 스러지지 않는다. _ 본문에서

 

 

일본 유학의 태두이자 거물로 꼽히는 사토 잇사이(佐藤一齊)의 『언지록』 4부작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사토 잇사이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라고 일컫는 유학자이며,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끼친 사상적 스승이다. 『언지록』은 그가 40년 동안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쓴 책으로 자신의 마음공부와 사색, 자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당대의 유학자들은 물론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히라 마사요시 등 현대 일본을 좌우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꾸준히 읽고 인용했던 책이다. 수천 년 동양 철학의 진수를 4권에 모은 아포리즘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2500년 동양의 가장 위대한 지혜를 담은 최강의 인생 지침서

“중국에 『채근담』, 로마에 『명상록』, 프랑스에 『팡세』가 있다면

일본에는 『언지록』이 있다!”

 

앞에서 인용한 구절은 『언지록』 제60조 「삼학계(三學戒)」의 내용이다. 2001년 5월 고이즈미 전 총리가 교육 관련 법안을 중의원에서 심의하면서 인용한 걸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메이지 유신의 리더 중의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8~1877년)는 젊은 시절 사토 잇사이의 학문에 경도되었다 한다. 물에 뛰어들며 자살을 기도하고 유배를 떠났던 불우한 시기에 그가 역경을 이겨내게 했던 책이 바로 『언지록』이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언지록』 4부작 중에서 총 101조를 따로 초록해 금과옥조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렇듯 사토 잇사이의 말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울림이 있기에 오늘날까지 ‘불멸의 리더학’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토 다카시 교수(메이지대학)가 『언지록』을 경제경영과 기업 조직론적 관점에서 리라이팅한 『최강의 인생지침서(最強人生指南書)』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어린이를 위한 언지록』 등등 『언지록』에서 파생한 수많은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큰 뜻, 짧은 말에 천하의 지혜를 담다

조선의 퇴계 이황이 1558년 58세에 인생 체험의 지혜가 우러나오는 『자성록』을 썼듯이, 사토 잇사이(佐藤一齊, 1772~1859년)가 42세부터 82세까지 장장 40년 동안 써내려온 1133조의 금언들을 모은 책인 『언지록』에는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낸 사람만이 통찰할 수 있는 ‘짧은 말, 큰 뜻(言志)’들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지혜가 가득 차 있다.

동양에서는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이 수상록 분야에서 스테디셀러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채근담』이 여성적 아포리즘인 데 반해 『언지록』은 동양적 예지가 풍부한 ‘동양 최고의 남성적 아포리즘 수신서’라고 한다. 사토 잇사이는 지행합일과 마음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평생 동안 연구하며 장수를 한 덕분에 40년 동안 자신의 명상, 고백, 사색, 참회, 수신, 처세, 정치 등등에 대한 ‘남성적(웅대하고 힘찬) 뜻(志)’이 가득한 동양적 예지의 세계를 ‘시처럼 짧은 말(言)’로 후세에 펼쳐 보인 대작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뜻을 높이 세우고 지도자로서 마음가짐을 공부하는 데는 『언지록』이 최고”(일본 전 수상, 오히라 마사요시)라고 본다.

그렇다면, 왜 200년이 되도록 일본의 리더들은 『언지록』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오며 “최강의 인생 지침서” “책상 맡에 두고 읽어야 할 좌우명의 책” “일본 어록의 백미”라고 부르는 것일까?

 

 

동양의 남성적 아포리즘의 절창을 토해내기 시작하다

저자 사토 잇사이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 위대한 유학자)’라고 일컫는 유학자이다.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학문 기관이자 직할 교육 기관인 쇼헤이코(昌平黌)의 최고책임자였다. 요즘으로 치면 국립 도쿄대학 총장에 해당하는 대학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거나 한 제법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며 이른 장년기에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언지록』은 바로 그의 수양의 땀이 스민 잠언 어록이지 단순하게 머리로만 쓴 관념적인 수상록이 아니다. 사토 잇사이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시문에 능한 문장가로서도, 동양 고전에 밝은 한학자로서도 이름을 크게 떨치며 저술과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다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9월 23일 밤에 쇼헤이코 관사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언지록』은 그의 나이 42세부터 82세 때까지 장장 40년 동안 자신의 마음공부와 사색, 자성(自省)을 마치 자수를 놓듯 한 땀 한 땀 기록한, 혼불과 같은 필생의 역작(lifework)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사무라이가 살던 에도시대로부터 샐러리맨이 사는 지금까지 200년이란 세월의 더께를 초월하며,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불후의 명저가 되었다.

그래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 그리고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전 수상 등등. 메이지 유신 거물들과 일본의 리더들은 이 책에 심취했고,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은 책상머리에 늘 꽂아두고 읽으며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책의 주제:

마음공부가 학문의 원점, 먼저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뜻을 세워라!

『언지록』의 요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네 가지로 간추릴 수가 있다. 첫째 인간의 가치는 ‘남을 위해 어느 정도 사는가!’에 달려 있다. 둘째 지위와 명예 그리고 외관상의 성공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셋째 남을 따스하게 대해주는 정(情)과 배려하는 서(恕) 그리고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가 우주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사회 통합의 주춧돌’이다. 넷째 그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상대로 하지 말고, 하늘을 상대로 하라.

인간은 환경에 의해 변화를 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을 좋은 쪽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것은 뜻(志)을 지닌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뜻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찾아 은혜를 입고, 그리고 공부하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의식적으로 창조할 줄 안다. 인생을 좋게 하는 것도 나쁘게 하는 것도 모두 이 ‘뜻’ 나름이라는 것을 『언지록』은 충분히 가르쳐주고 있다.

가령 『언지록』 제33조에서는 “뜻이 있는 사람은 예리한 칼날과 같아 사악한 것들이 꽁무니를 뺀다. 뜻이 없는 사람은 둔한 칼과 같아 어린 아이들도 업신여기고 깔본다.”라고 하였다. 이는 함석헌 선생이 50여 년 전 『사상계』에서 “뜻이 있으면 사람, 뜻이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 못 깨달으면 흙,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라고 하며 늘 강조하던 그 “뜻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잠언을 떠오르게 한다.

『언지록』에는 ‘뜻(志)’이라는 말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입신출세’라든가 ‘입신공명’ 혹은 ‘부자아빠 되기’ 등등, 세속적인 함의일까? 물론 뜻을 품고 한평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그 결과로서 입신출세를 하가나 부자아빠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뜻(志)’의 본래 의미는 ‘마음(心)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意志)’이다. 달리 말해 ‘존양(存養, 양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성품을 기름)’, 거경(居敬, 늘 마음을 바르게 가져 덕성을 닦음), 함양과 체찰(體察, 성찰) 등등의 마음공부로 인격적으로 품위가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뜻을 일컫는다.

『언지록』이라는 책제목의 출전으로 생각되는 『논어』에서도, 자로가 공자에게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愿聞子之志).”라고 하자, 공자는 “노인들은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은 신의를 갖도록 해주고, 젊은이들은 감싸 보살펴 주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언지록』에서 ‘뜻’은 야망을 가져라, 대망을 품어라, 입신출세 하여라, 부자가 되어라 하는 풍으로 ‘명리와 금전 등에 관한 이기적 욕망’을 북돋는 말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몸소 실천해 이루어야만 하는 목표·목적·결심’ 등을 가리킨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사랑과 헌신’일 것이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비와 해탈’일 것이며, 유교적 수신서인 『언지록』은 당연히 인의예지(仁義禮智)라든가, 덕(德), 경(敬), 성(誠), 충(忠), 효(孝), 신(信), 서(恕), 격물치지(格物致知) 등등을 가리킨다.

그래서 『언지록』에서 가장 출전이 많은 것이 사서(四書)에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순이고, 오경(五經)에서는 『역경』, 『서경』, 『시경』, 『예기』 순이다. 이 밖에 병가와 도가의 책들도 거론되는 등 백가제자의 설이 모두 인용되고 있다. 저자의 학문세계는 유학을 주로 하고 그 밖에 제자백가의 학설에까지 미치고 있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된 동양 고전은 『논어』이고 그 다음으로 『맹자』, 『역경』, 『서경』, 『중용』 등이다. 또한 『역경』에 정통하여, 이 책의 곳곳에서 역리로 사람의 처세에 관한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특히 저자는 ‘양주음왕(陽朱陰王, 양명학陽明学을 신봉하면서 표면적으로 주자학자인 척함)’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언지록』은 지행합일 즉 ‘앎과 행동은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라는 것을 특히나 강조하는 왕양명의 학문과 사상에 관한 내용이 적지 않다. 위에서 열거한 고전 외에 송·원·명·청 시대의 유학과 중국사, 게다가 일본의 유학 등도 언급하며 활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지록』은 짧은 잠언 형식으로 쓴 동양의 거의 모든 사상사에 대한 수상록이자 명상록 그리고 주석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의 내용:

생사·우주·정치·충효·학문·인생·인간·문학·도덕·치세·경영·수양·교육·직업·대인관계·리더의 조건

『언지록』은 수양의 양식이자, 처세와 교육의 깨달음을 주는 감명 깊은 마음의 책이자 조언의 모음집이다. 유교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교훈의 말과 사토 잇사이의 인생 체험에서 우러난 의미 깊은 말들로 가득 차 있다.

“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예(藝, 기술)가 일치해야 한다”고 말한 이는 사토 잇사이의 제자인 사쿠마 쇼잔이다. 이는 학문에는 도(道)와 예(藝)가 있다는 말인즉, 도는 자신의 마음을 수련해 얻는 ‘사람 됨됨이(인격)’이고 예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생존의 기술’을 뜻한다. 도는 철학·사상·문학으로 인간과 인생을 탐구하게 학문이고, 예는 법률·의학·과학 등 지식을 파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양립하는 게 본래의 학문이었고 이 두 가지를 병행해 가르치는 게 이른바 전인교육이다.

그래서, 『언지록』이 담고 있는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지식은 그것을 배우는 자의 마음에 동화가 되고 또한 그 사람의 인격에 반영되어 나타나야 참된 지식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는 갈수록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생존의 기술로서의 지식만을 배울 뿐 마음(인격)을 닦는 배움은 내팽개쳐버린 실정이다. 취업의 편리를 위해 기술의 학문만을 배우며, 인덕을 닦는 도의 학문은 잃어버렸다. 퇴계 이황의 『자성록』이나 『언지록』이 공히 중요시하는 공부론인 인성교육 즉 ‘인간의 마음을 닦는 학문(德育)’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탓에 매스미디어에는 연일 비인간적인 사건이 보도되고, 최고지도층은 공공연하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부정과 불공정을 저지르며 사회적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실해버린 것이다.

공자의 『논어』가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랫동안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 평생을 거쳐 몸소 실천해야만 하는 덕목을 가르쳐주고, 또한 단순히 지식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지혜를 주는 책이기 때문에 후세에 전해주고 잠언으로 널리, 그리고 영원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가짐을 수양하게 해주는 인생의 나침반 즉 인간성의 기둥이 『논어』에 오롯이 세워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논어』는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기에 현대의 개인주의의 병폐를 치유하는 책으로 아직도 널리 읽히며 동양 최고(最古)의 스테디셀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사토 잇사이는 『논어』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원동력은 그것이 잠언으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때문에 그 역시도 『논어』처럼 영원불멸한 잠언을 남기기 위해 동양의 지혜가 축적된, 즉 생사·우주·정치·충효·학문·인생·인간·문학·도덕·치세·경영·수양·교육·직업·대인관계·리더의 조건 등등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리원칙과 인생의 지침이 가득한 『언지록』을 저술하였을 것이다.

 

 

책이름(書名)에 관하여: 큰 뜻, 짧은 말로 천고의 심금을 울리다

『언지사록』은 『언지록(言志錄)』(1830년 간행)과 『언지후록(言志後錄)』(1837년 탈고), 『언지만록(言志晩錄)』(1850년 간행), 『언지질록(言志耋錄)』(1854년 간행)이라는 한문으로 쓰인 네 권의 수상록(隨想錄)을 훗날 합쳐 부른 이름이다. 수상록은 일정한 계통이 없이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기록한 책이다. 때문에 『언지사록』 1133조항은 각 조항간의 연관성은 없다. 이 1133조항은 사토 잇사이 그 자신의 삶이 원숙해진 후반생 동안 쓴 짧은 잠언으로 이렇게 42세부터 82세 때까지 4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쓰인 어록은 비근한 다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1권 언지록(言志錄)

생사·우주·정치·충효 등에 관한 사색이 총 246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1조에 “분카(文化) 10년(1813년), 5월 26일 기록, 42세”라고 쓰여 있다. 에도 막부 제11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斉)가 다스리던, 사토 잇사이가 42세이던 1813년 5월 26일부터 『언지록』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2권 언지후록(言志後錄)

학문·인생·인간·문학·도덕 등에 대해 머리에 떠도는 수상을 전체 255조항에 걸쳐 서술한 것으로 양명학적 견해도 조금 엿보인다. 제1조에 “분세이(文政) 11년(1828년) 9월 9일 사토 잇사이 57세에 쓰기 시작하다.”라는 기술이 있다.

3권 언지만록(言志晩錄)

학문·전술·정치·치세·경영 등에 관한 수상을 292장으로 나누어 적었다. 『언지만록』 서(序)에 “덴포(天保) 9년(1838년) 67세 정월부터 가에이(嘉永) 2년(1849년) 78세 2월까지 썼다.”라고 하였다. 대략 12년간 쓴 셈이다.

4권 언지질록(言志耋錄)

우주·생사·수양·교육 등에 관한 수상을 340조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서(序)에서 “나는 올해로 80세가 되었지만 귀와 눈도 아직 심하게 쇠하질 않았다. 어찌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단 한 숨일지라도 학문을 멈출 수가 없다. 한 구절씩 쓴 게 한 권이 되니 이를 『질록(耋錄)』이라고 부른다. 가에이(嘉永) 4년(1851년), 사토 잇사이 80세 5월 5일에 쓰기 시작하다.”라고 하였다. 저자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총명하고 필력이 쇠하지 않았으며, 학구열이 왕성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덧붙여 말하면 『언지질록』의 ‘늙은이 질(耋)’자는 늙은이라는 의미로 여든 살이나 혹은 일흔 살을 가리킨다. 1853년에 간행되었으니, 대략 2년 채 못 되어서 탈고를 한 셈이다.

 

 

 

필자 소개

 

지은이 사토 잇사이(佐藤一齊, 1772-1859년)

일본 유학의 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 사토 잇사이는 에도 시대 최고 학문 기관인 쇼헤이코(昌平黌)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거나 한 제법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여 이른 장년기에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나이 70세였던 1841년 11월 쇼헤이코의 주칸이 되었고, 그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세상의 태산북두로 불리며 경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 무렵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德川家慶)에게 「역경」을 강의하였다. 또한 그에게 강설을 청하는 다이묘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막부의 요청으로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였고,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될 때에는 하야시 후쿠사이를 보좌해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그가 살아 있을 적에 출판되어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던 「언지록」과 문집 「애일루문시」를 비롯해 90여 권이 있다.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9월 23일 밤에 쇼헤이코 관사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옮긴이 노만수

대학 시절 연작시 「중세의 가을」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경향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동아시아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과기대와 북경대학에서 수학했다. 귀국한 후 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시아권 전문 번역 및 출판 기획과 창작 활동을 겸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헤이안(平安) 일본』, 『논어와 주판』(2010년 삼성경제연구서 추천도서,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정조가 가려 뽑은 사기의 백미)사기영선(史記英選)』, 소설 『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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