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쪽|152*225|무선|27,000원|2025년 11월 19일
ISBN 979-11-994033-5-2 93950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각국정치사정/정치사 > 기타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중남미사
도서 개요
라틴아메리카 식민화와 약탈을 고발한 갈레아노의 명저
금서에서 필독서로!
출간 5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저본으로 한 스페인어 최초 완역본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1971년 출간되자마자 여러 나라에서 ‘금서’가 되었다. 군사 정권은 이 책이 민중의 저항 의식을 자극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금서 조치는 역설적으로 이 책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후 이 책은 1970-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학생 운동과 지식인 담론에서 ‘각성의 서(書)’, ‘필독서’로 읽혔다.
2009년 4월 18일, 미주기구(OAS) 정상회담에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이 책은 우리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줬다.”라고 말했고, 이후 하루 만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이사벨 아옌데(칠레 소설가·언론인)는 이 책이 “라틴아메리카의 ‘혈맥’을 열었을 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불의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과 눈, 생각을 열어 주었다.”고 했다. 아룬다티 로이(인도 소설가·사회운동가) 역시 “갈레아노는 부서진 이야기들을 엮어 내는 거장이다. 그가 쓴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30년 전에 쓰인 이 책은 오늘날 인도에도 깊은 교훈을 전한다.”며 그 영향력을 역설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과 저개발이 우연이나 능력 부족의 산물이 아니라, 15세기 발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자원이 체계적으로 수탈당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은 대륙 전체를 ‘피 흘리는 신체’로 바라보는 은유에 있다. ‘열린 혈맥(venas abiertas)’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을 넘어, 지난 수 세기 동안 지속된 구조적 착취의 본질을 드러낸다. 한국에는 그동안 『수탈된 대지』(범우사, 1988년 초판/현재 절판)로 소개돼 왔는데, 그것은 ‘빼앗긴 땅’이라는 뜻으로, ‘혈맥이 열려 있는 땅’ ‘피 흘리는 대륙’과는 뜻이 멀다. 다시 말해, ‘열린 혈맥’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금, 은, 설탕, 고무, 구리, 석유 등 풍부한 자원을 끊임없이 외부 세계에 공급하며 피 흘려온 역사를 상징하는 은유다.
갈레아노는 이 작품을 통해 16세기 유럽의 정복 이래 500년에 걸쳐 지속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수탈의 역사를 고발한다. 그는 대륙의 자원과 민중의 피(생명과 노동력)가 유럽과 북미의 제국주의 중심부로 끊임없이 유출되는 구조적 착취를 묘사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파편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기억의 정치학’을 실천하는 해방 문학이다. 갈레아노는 금과 은의 약탈에서 시작해 설탕과 노예무역, 석유와 주석, 그리고 바나나와 커피 같은 단일 작물 경제로 이어지는 착취의 연대기를 추적한다. 이러한 과정은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을 심화시키고 현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한 토대를 마련했다.
갈레아노는 수탈의 역사에서도 아이티 혁명, 원주민 봉기, 노동자 파업 등 민중의 저항과 연대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로 착취 구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책은 세계 경제의 불평등을 성찰하게 하는 유효한 거울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다음 같은 핵심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구성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자원 착취가 외부 강대국의 자본 축적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독립 이후 경제적 종속성이 어떻게 지속되거나 심화되었는가?
원주민과 노동자들이 경험한 착취와 저항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이 책은 전통적인 역사서 형식에서 벗어난다. 사건의 연대가 아니라 자원의 흐름과 권력의 이동을 중심으로 삼아 서사를 전개한다. 갈레아노는 각 자원을 매개로 해서 생산지와 소비지, 남과 북, 식민지와 제국 사이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통계와 역사적 사실이 인용되지만, 차가운 데이터 그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의 분석은 경제사적이지만, 글은 간결하면서도 문학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학술서와 문학 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의 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갈레아노는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 제국의 논리를 비판한다. 자원 수탈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기술 수탈이 정당화되는 담론의 위선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이루어진 분석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구조를 해부하는 역사적 틀로 읽힌다.
착취의 연대기: 자원을 통해 본 수탈의 역사
라틴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부의 역설이다. 포토시 은광의 번영이 볼리비아의 극심한 빈곤으로 이어지고, 브라질의 ‘금의 시대’가 포르투갈과 영국의 부를 살찌웠다.“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라고 갈레아노는 지적한다.
착취는 식민 시대의 직접적인 약탈에서 시작해 독립 이후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 불공정한 교역 조건, 외채라는 더 정교한 형태로 진화했다.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금융 기구(IMF, 세계은행)는 이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핵심 행위자다.
경제적 수탈은 원주민 대학살, 아프리카 노예 강제 동원, 그리고 현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라는 막대한 인적 희생을 동반했다. 책 서두의 “태풍의 중심에 있는 1억 2천만 명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비극이 미래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파라과이의 프란시아-로페스 정권,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정부, 칠레의 아옌데 정부 등 자주적인 산업화와 사회 개혁을 시도했던 사례들은 예외 없이 외부 세력의 개입과 내부 지배 계급의 배신으로 파괴되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연합과 같은 현대의 경제 통합 노력은 진정한 의미의 공동 발전을 이루기보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다국적 기업이 더 큰 규모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브라질 같은 지역 강국이 ‘하위 제국주의’ 역할을 수행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종속과 저항의 변증법으로 해석하며, 진정한 해방은 외부 지배 구조를 타파하고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금과 은, 그리고 죽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의 서두에서 유럽의 탐험과 정복이 인류사에 남긴 참혹한 장면을 기록한다. 그것은 발견의 이야기 이전에 약탈과 피의 서사다.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멕시코에서는 약 2,500-3,000만 명에 이르던 원주민이 한 세기 만에 100만 명으로 줄고, 카리브해의 섬들에서는 원주민이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다. 원인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강제 노동,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 그리고 끊임없는 굴욕이 그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정복자들은 황금빛 신화를 좇았다. 볼리비아 안데스에 있는 포토시는 탐욕이 집중된 상징적 공간이었다. 해발 고도가 5,000여 미터에 이르는 ‘부의 산(Cerro Rico)’은 16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유럽의 부를 지탱한 심장이었다. 수많은 원주민이 미타(mita)라 불리는 강제 노동 제도에 따라 미로처럼 얽힌 비좁은 갱도로 끌려 들어갔고, 많은 수가 다시 햇빛을 보지 못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산소 부족과 추위, 붕괴 위험에서 끊임없이 은광석을 파냈다. 그들의 목숨 값은 은 1그램의 가치보다 가벼웠다. 역설적으로 포토시의 번영은 그곳의 죽음을 의미했다. 유럽으로 실려 나간 은은 에스파냐 제국의 재정과 유럽의 초기 자본주의 발전을 뒷받침했지만, 은을 생산한 볼리비아 땅에는 부가 남지 않았다. 포토시의 피로 세워진 것은 마드리드 궁전이고, 런던 금융가였다.
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멕시코와 페루 금광은 에스파냐 왕실의 보물창고를 채웠지만, 금을 캐낸 자들은 자신의 굶주림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금은 유럽에서 화려한 성당과 궁정의 장식물이 되었지만, 금을 캐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아스테카와 잉카의 찬란한 문명은 유럽의 탐욕 앞에서 무너졌고, 그들의 신전은 돌무더기로 남았다.
정복자들은 단순히 자원을 약탈한 것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바꾸어 놓았다. ‘신의 이름으로’ 시작된 정복은 ‘시장과 이윤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갈레아노는 식민지 약탈을 단순히 과거의 폭력으로 보지 않고, 세계 경제의 구조적 기원으로 읽어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가져간 금과 은은 유럽의 자본 축적을 가능케 했고, 그 자본은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불평등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피의 약탈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금, 은, 리튬, 석유 상당 부분은 여전히 남반구에서 흘러나온다. 포토시의 산이 울부짖던 시절처럼 자원은 여전히 ‘열린 혈맥’을 통해 흘러 나간다. 갈레아노의 글은 라틴아메리카의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피의 흐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복 시대는 끝났지만, 착취 논리는 여전히 다른 이름으로 작동한다. 결국 ‘금과 은, 그리고 죽음’은 단지 16세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원죄를 드러내는 은유다.
설탕과 노예, 그리고 삼각무역
정복자들이 금과 은을 수탈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의 혈맥을 찢어 놓은 뒤에 그 대륙에서 새롭게 흘러나온 ‘피’는 설탕이었다.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설탕은 세계 시장을 지배한 ‘하얀 금’이었다. 브라질 북동부와 카리브해의 섬들은 사탕수수로 뒤덮였다. 태양과 비가 풍부한 이 땅은 사탕수수 재배에 이상적이었으나, 그 풍요가 현지인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유럽의 식민 세력은 원주민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고, 그들은 앞에서 언급한 은광산에서처럼 죽어 나갔다. 인구가 급감하자 유럽은 새로운 ‘노동력’을 찾아 나섰다. 아프리카 노예 무역이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는 약 1,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상당수가 브라질과 카리브해로 보내졌다. 노예선은 지옥 그 자체였다. 쇠사슬에 몸이 묶인 상태로 수개월 동안 좁은 선창에 갇힌 노예들은 질병과 굶주림을 겪었다. 항해 중 죽은 노예는 바다에 버려졌다. 오늘날 대서양 어딘가에는 설탕의 달콤함을 위해 희생된 무수한 생명이 잠겨 있다.
이 끔찍한 시스템은 단순한 인신매매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초석을 이룬 삼각 무역이었다. 유럽 상인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구입’해 아메리카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노예를 이용해 재배한 사탕수수와 담배, 면화, 커피 등을 유럽으로 보냈다. 이익은 유럽 금융과 산업 자본으로 축적되었다. 순환의 핵심은 명확했다. 가치 생산은 남반구에서, 이윤 축적은 북반구에서 이루어졌다. 아메리카의 자원과 노동, 아프리카의 인력, 유럽의 자본과 무기, 이 셋이 맞물리며 근대 세계 체제가 형성되었다.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은 산업적 플랜테이션(plantation) 시스템의 원형이었다. 이곳에서 흑인 노예들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사탕수수를 베고 압착기에서 즙을 짜고 끓여서 설탕 덩어리를 만들었다. 온몸에 상처가 나고, 더위와 채찍질로 쓰러져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탕은 단지 하나의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근대의 원형이었다. 유럽 귀족이 차와 커피에 설탕을 타서 즐긴 ‘문명’의 달콤함은 라틴아메리카 농장에서 채찍질당하며 중노동을 하던 흑인의 절규 위에 세워졌다.
설탕은 라틴아메리카 사회 구조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플랜테이션 소유주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부는 정치권력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농장 노동자와 노예는 인간 이하 대우를 받았다. 이런 구조는 이후 커피, 카카오, 바나나로 이어지는 단일 작물 재배(monoculture) 경제의 토대를 마련했다. 결국 설탕은 라틴아메리카를 ‘세계 시장의 농장’으로 만들었다. 생산은 있지만 자립이 없었다. 이익은 외부로 흘러갔고, 지역 사회에는 가난과 불평등만 남았다. 오늘날 설탕은 세계 경제의 중심 상품이 아니지만, 과거에 설탕을 통해 형성된 구조는 여전히 반복된다. 21세기에도 남반구 농민은 세계 시장의 가격에 따라 생존을 걸고 일하며, 다국적 기업은 그들의 노동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는다.
석유와 주석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였다. 금과 은, 설탕을 통해 쌓인 유럽의 부는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변환되었다. 중심에는 석유와 광물 자원이 자리했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은 20세기 들어 석유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며 새로운 경제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갈레아노가 지적하듯, 생산의 통제권은 결코 현지인 손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 다국적 석유 회사는 특혜성 계약과 군사적 압력을 통해 채굴권을 장악했다. 유럽의 현대 자본주의는 금과 은, 설탕으로 시작되었고, 석유를 통해 산업화된 경제 체제와 정치적 종속으로 연결되었다.
볼리비아의 주석 산업도 같은 맥락이다. 19세기 말, 주석은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필수 자원으로 떠올랐다. 주석 광산은 포토시와 유사하게 강제 노동과 폭력으로 운영되었고, 원주민과 노동자는 극한의 조건에서 노동을 강요받았다. 주석 역시 세계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부를 외부로 이전하는 역할을 했다. 주석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전기·통신·산업용 제품을 위한 핵심 자원이었고, 이로써 남반구의 자원은 산업화된 북반구 경제의 ‘심장 박동’으로 기능했다.
금과 은, 설탕, 석유와 주석은 모두 라틴아메리카가 세계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흘린 피의 상징이다. 16세기 정복에서 시작된 피의 흐름은 20세기 산업화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남반구의 자원은 여전히 세계 자본에 종속된다. 석유, 리튬, 구리, 희귀 금속 등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지만, 생산국은 가격 결정권과 수익 배분에서 여전히 취약하다.
단일 작물 경제와 불평등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단일 작물 경제로 재편되었다. 금과 은, 설탕, 석유와 주석을 거쳐 시장의 주요 자원은 바나나, 커피, 코코아 같은 농산물이 되었다.
중앙아메리카, 특히 온두라스, 코스타 리카, 과테말라 등은 바나나 수출로 급성장했지만, 이 성장은 국가보다는 외국 기업의 것이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와 같은 다국적 기업은 토지, 항구, 철도까지 장악하고 생산 과정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했다. 농민은 강압적이고 부당한 계약에 따라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오랜 시간 일했고, 기업은 정치 로비와 군사 압력을 통해 자국 정부를 통제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바나나 공화국’이다. 국가 주권은 기업과 외국 자본에 종속되고, 정부는 생산과 수익 관리에서 독립적인 권한을 갖기 어려웠다.
커피와 코코아 재배 역시 비슷한 패턴을 반복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는 세계 커피 생산의 중심지였지만, 생산된 커피의 대부분은 외국 시장으로 유출되었다. 노동자는 여전히 저임금에 시달렸고, 토지는 대지주와 외국 상인의 통제 아래 있었다.
바나나, 커피, 코코아 경제는 단순한 농업 생산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종속된 체계의 일부였다. 단일 작물 경제는 생산국 내 불평등을 강화했다. 부유한 대지주와 소수 상인은 막대한 수익을 챙겼지만, 농민과 노동자는 빈곤에 갇혔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정치적 불평등과 결합하고, 사회적 긴장을 고조했다.
또한 단일 작물 경제는 외부 자본 의존을 심화하고, 정치적 불안정을 낳았다.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금융은 종종 군사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정부 정책에 압력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에서 바나나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이 이루어졌고, 국가 정책은 외국 기업의 요구에 종속되었다. 단일 작물 경제는 부를 집중시키면서 사회적 갈등과 민중의 저항을 증폭했다. 단일 작물 경제는 생태적 피해도 동반했다. 대규모 농장은 토양을 고갈하고 생물 다양성을 파괴했다. 농약과 화학 비료 사용은 현지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물과 식량의 불균형을 심화했다.
‘단일 작물 경제와 불평등의 심화’는 금·은·설탕, 석유·주석의 착취사와 직결된다. 라틴아메리카의 땅과 사람은 세계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폭력, 환경 파괴가 구조화되었다. 갈레아노의 분석은 단지 20세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현대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반복성을 보여준다. 남반구 자원의 유출과 북반구 이윤의 축적, 그리고 반복적인 민중의 저항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세계 금융 체제, 다국적 기업 중심의 경제 흐름에서 여전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연대
금과 은에서 시작해 설탕, 석유, 주석, 단일 작물 경제로 이어진 흐름은 한 세기 이상 남반구 민중이 세계 경제 주변부로 남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갈레아노는 이 흐름을 ‘열린 혈맥’이라는 은유로 집약한다. 대륙의 피가 끊임없이 외부로 유출되는 구조, 민중의 삶과 노동이 세계 시장 연료로 소비되는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불평등과 폭력이 하나의 혈맥처럼 서로 연결된다.
갈레아노는 이를 경제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착취와 경제 종속이 사회적·정치적 불평등과 맞물린 구조적인 문제임을 강조한다. 착취는 한 시대에 끝나지 않고, 형태를 바꿔 반복되면서 남반구 민중의 삶을 규정한다. 갈레아노는 착취 구조를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착취 속에서도 민중이 만들어낸 저항과 연대의 흐름을 함께 기록한다.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에서 혹사당하던 원주민의 봉기, 카리브해 노예 반란과 아이티 혁명, 중남미 노동자·농민의 조직화와 파업, 20세기 석유와 주석 산업의 국유화 운동, 브라질의 커피 농민 파업, 과테말라의 노동자 시위, 중앙아메리카의 농민 협동조합 등은 민중이 자본과 권력의 구조적 착취에 맞서 싸운 사례들이다.
이러한 연대와 저항은 민중의 경제적인 요구를 넘어 자기 주권과 사회 정의를 위한 역사적 행위다. 민중의 저항과 연대, 그리고 민중이 행한 희생은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행동 지침으로 읽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구조적 불평등을 이해하고, 연대와 협력,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보여준 역사적 교훈과 맞닿는다.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이 출간된 1971년 이후 5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남반구 국가와 민중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반복한다. 석유, 리튬, 구리, 희귀 금속, 커피, 바나나 등은 오늘날에도 세계 시장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며, 생산국은 가격 결정권과 이윤 배분에서 여전히 취약하다. 자원의 세계 공급망과 금융 구조는 특정 국가와 기업에 편중되어 있으며, 산업과 기술은 외부 자본과 시장에 의존하는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갈레아노의 분석은 단지 라틴아메리카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경제와 불평등 구조를 성찰하는 거울이다.
닫히지 않는 상처와 기억의 윤리
오늘날에도 라틴아메리카의 ‘혈맥’은 여전히 열려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다국적 기업, 각종 채굴 산업, 디지털 자본주의와 데이터 식민주의 등 새로운 형태의 착취가 지속되고,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종속은 상당 부분 구조화되어 있다. 갈레아노의 글은 이 같은 상처가 단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적·지구적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원 약탈은 환경 파괴와 지역 사회의 고통을 동반하고, 기억과 해방의 문제는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결국 『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의 핵심은 ‘닫히지 않는 상처를 기억하는 윤리’에 있다. 기억을 통해 상처를 이해하고 민중의 연대와 저항을 성찰하는 행위는 새로운 해방의 길을 연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상처를 기억하며, 민중과 연대 가능성을 탐색하는 역사적·문학적·윤리적 고전으로 자리한다. 그 혈맥 속에 흐르는 피를 이해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해방을 모색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1940년 9월 3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자동차 수리공, 외상 수금원, 간판 화가, 심부름꾼, 경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4세 때 우루과이 사회당의 주간지 《태양》에 풍자 만화를 그리며 언론인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1960년, 정치·문화 주간지 《행진》의 편집장을 맡아 1964년까지 재직하고, 그 후 2년 동안 좌파 일간지 《시대》의 논설을 썼다. 1971년, 서구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수탈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고발한 『라틴아메리카의 절개된 혈관』을 출간했다. 1973년, 군사 쿠데타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혐의로 체포되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문화 잡지 《위기》를 발간했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독재가 시작되자 다시 에스파냐로 망명했다. 1978년, 라틴아메리카에서 군사 독재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랑과 전쟁의 낮과 밤』을 출간했다. 1982-1986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서사시적으로 서술한 『불의 기억』 3부작을 썼다. 1999년, 라틴아메리카의 축구에 관한 독특한 해설서 『축구, 그 빛과 그림자』를 출간했다. 2008년, 세계사의 감춰진 이야기 577편을 모은 『거울들: 거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출간해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며 각광을 받았다. 군부 독재가 끝나고 1985년부터 고향 몬테비데오에 거주하며 수많은 글을 썼다. 2015년, 폐암이 악화되어 몬테비데오에서 74세의 일기로 타개했다. 사회주의와 민족 해방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카리스마를 지녔던 그는 광범위한 자료, 섬세한 연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사회·정치·경제의 제반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친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
옮긴이 조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의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Instituto Caro y Cuervo)’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하베리아나 대학교(Pontificia Universidad Javeriana)’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Post Doc.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HK교수로 재직하면서 중남미 문학과 문화를 연구·강의하고, 에스파냐어권 작품을 한국어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백년의 고독』,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소금기둥』, 『파꾼도』, 『조선소』, 『이 세상의 왕국』, 『켈트의 꿈』, 『소용돌이』, 『폐허의 형상』, 『거울들: 거의 모든 사람의 이야기』 등을 번역하고,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 읽기』 등 중남미에 관한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