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큐의 경제학 - 4판
그레고리 맨큐 지음, 김경환 & 김종석 옮김 / 교보문고(교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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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경제원론 한권 안 읽고 경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경제교육(소위 '정치경제'세대인 나로써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다만)이 그렇게 우스운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 주류경제학적 담론과 마인드라는게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일종의 '메인 프레임'같아져서 굳이 떨쳐내고 싶어도 떨쳐낼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는 점도 있고, 거기에 각종 경제신문들과 매체에서 쏟아내는 정보만 어느정도 따라가더라도 원론수준의 지식은 알게모르게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본서를 굳이 읽게 된 것은, 한마디로 '시간이 남아돌아서'라고 해야할 것 같다. (솔직히 개인적으로야 시간이 남아서는 안될 처지이기는 한데, 또 사람 일이란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여기서 고백하자면, 시간이 남아돌아서 혹은 비전공자로써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지 한번쯤 알고싶어서 읽은 터라 그리 세세하게 읽지는 않았다. 익히 아는 부분은 정말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읽었고(이런저런 경제 교양서를 가끔씩 읽어왔던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연습문제같은 것은 당연히 뛰어넘었다.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솔직히 이건 상당부분 이 책의 너무도 쉬운 서술체계에 기인하는 것도 없지 않은 듯 싶다.

아마 수식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경제학 전공서적이라 할법한 본서는, 사실 전공서라기보다는 입문서에 가까워 보인다. 입문서치고는 적지않은 분량과 외양에서 풍겨나오는 묘한 포스만 뺀다면 사실 이 책은 '경제 교양서'코너에 가져다놓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 점에서 '원론'으로서 본서를 비추하는 의견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상당부분 미국의 역사적 사례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간의 상식을 요한다는 점도 없진 않지만, 그 또한 그렇게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니다. 아울러 각 챕터마다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 이는 본서의 독자, 특히 비전공자로서의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무시못할 장점으로 보인다.

전공하시는 분들께는 굉장히 죄송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비전공자이며 아마도 학문적으로 경제학에 접근할 일이 거의 없을 듯한 나같은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경제학은 '과학'이라기보단 일종의 '사고체계'로 여겨지는 구석이 있다. 이는 한편으론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제부문을 바라보는 도구로서 현대 경제학이 갖는 압도적 지위에 대한 부인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 좁디좁은 하나의 학문 분과를 넘어 응용 가능한 일종의 '논리체계'라는 인정이기도 하다. 하일브로너 말마따나 자신의 구조에 갖혀 가끔씩은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 싸움을 하는 듯해 보이기까지 하는 경제학이지만, 경제학이 갖는 그 논리적 사고의 '힘'은 결코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오늘, 어찌보면 굉장히 편향된-하지만 빈틈없는-논리로 무장된 주류 경제학 교과서를 읽는 일은 좀더 독특한 의의를 지닐 것이다. 본서는 외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라던지 경제에 대한 어느정도의 식견이 있으신 분보다는 경제학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분께 권하고 싶다. 그만큼 쉽고, 교양서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않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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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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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위력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은 글의 위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혹자는 한권의 책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냐며 조소어린 시선을 보내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권의 책이 세상을 뒤흔든 사례는 결코 드물지않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뉴요커'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펴낸 본서는, 지금은 거의 몰락해버렸지만 당대 매우 일반화되어 쓰인 DDT를 위시한 방역제(참고로 DDT가 인체에 무해하다며 사람몸에 마구 쏴대던 모습은 우리도 다르지 않아서, 70년대 '대한늬우스'같은 걸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다)나 제초제가 환경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인간이 그 시시껄렁한 목적으로 뿌린 유독성 화학물질이 어떤 식으로 이전되어 이 땅을 병들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하는 본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어느덧 상식처럼 되어버렸다해도 될만한 이야기들-유독성 물질이 체내에 어떻게 쌓이는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뿌려지는 화학물이 생태계를 어떻게 유린하는지, 먹이사슬의 단계를 거치며 유독성물질이 어떻게 증폭되는지-을 조금 지루하달만큼 늘여놓고 있다.

이러한 지루함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듯 싶은데, 무엇보다 본서가 결국 '잡지 기고문 모음'에서 연원한 책이라는 점에 그 가장 큰 원인이 있는 듯 싶다. 어떠한 보편성이나 깊이보다는 시의적절함을 도모하는 잡지글의 성격상, 본서가 시간의 풍화작용을 훌륭하게 이겨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않다. 이제는 사용되지 않은 화학물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받을 정도로 정말이지 시대의 '상식'이 되어가는 내용이 매 꼭지마다 비슷하게 변용되어 이어진다. 물론 잡지에 실렸을 당대에야 이러한 사실들이 대중들에게 새로이 조명된 것들이기도 했거니와 각각의 글이 시간을 두고 읽혀져 매번 새롭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내용의 사례들로 채워진 글을 17번이나 읽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저자의 연구결과나 해결책 또한 다소 고전적(?)인 면이 종종 발견된다. 일단 '대중'을 향해 쓰여진 글이기에 당대에 '선동'으로 치부되었을만큼 다소 거두절미된 논리는 그렇다치더라도(그런 면에서 본서에 가해진 당대 과학자들의 비판이 일면 이해가 가는 구석도 없지 않기는 하다.) 천적을 이용하는 방식의 해충 방제같은 것이 또다른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고 있는 대중의 상식이 그녀가 살던 시대의 전문가의 정보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다소 당황스러운 감상마저 느끼게 된다.

해서 본서를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하는 독자라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는 다소 어려울 듯 싶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외려 우리는 저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이게도, 상당부분 우리는 저자가 자신의 시대에 당면했던 문제보다 더 많은 위기앞에 놓여져 있음에 기인한다. 저자는 새들의 지저귐을 듣지못하는 봄을 한탄하며 이 글을 썼지만, 우리는 숫제 봄철에 푸른 하늘을 보는 것조차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그저 해충을 잡기위해, 혹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유독성 화학물 이야기만 늘여놓고 있는 본서의 '정보'가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시대에 본서가 무가치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단순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생명을 다루는 시각과 환경문제에 대한 사회구조적 고찰이 책 전반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당대를 뒤흔든 책'이라는 딱지를 붙혀 박물관에 집어넣기에는 다소 아쉬운 구석이 있다. 본서의 장르를 '문학'으로 구분해야 하는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자의 문체에는 생명을 다룸에 있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가 구구절절이 묻어나며, 환경문제에 대한 예산과 인력부족을 고민하는 저자의 한탄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보이지 않는 손'의 비합리성과 야만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환경문제가 단순히 인간 삶의 양태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켐페인 몇번하는 것보다,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자본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제도적인 틀을 고민하는 것이 외려 효율적일 수도 있다.)

여하간에 당대 본서의 위력은 대단하였다고 하고, 우리도 본서가 구성한 담론의 세례를 조금은 받게 된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눈에 들어온 뿌연 하늘이 짜증나서 땅으로 다시 눈을 돌리는 순간, 이 책이 세상을 '뒤흔드는'수준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꾸었는가'라는 자문을 한다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조금 어려울 듯 싶다. 여기에는 환경에 대한 지식은 늘었지만, 환경을 다루는 자세는 하나도 바뀐것이 없어 보이는 듯한 인류의 태도에 많은 부분 그 책임이 있는 듯 싶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야기하며 대운하 이야기를 슬그머니 끼워넣고 새시대 성장동력 운운하는 우리의 한심한 대통령과 관료들을 보라! 어쩌면 환경문제는 애초부터 지식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태도'문제는 아니었을까. 해서 역설적으로, 본서는 그 너무나도 '옛스러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다른 누구보다 청계천을 사랑하고, 녹색성장 운운하며 대운하 만만세를 외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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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의 현실과 대안 찾기 - 민주주의총서 08
송원근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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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새로운 '성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자아낼 지경이다. 보수주의 정치세력의 반격으로 인해 비가역적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가치들이 몰상식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해 보이는 오늘, 사실상 진정한 승자는 보수주의 정치세력도, 보수주의 언론도 아닌 재벌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 실질적 효력은 차치하고라도 한동안 담론적 차원에서라도 활발하게 이야기되었던 '재벌개혁'이라는 말은 이제 어느덧 유행이 지나버린 감마저 들 지경이지만, 최근에 있었던 재벌총수와 관련한 여러 재판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재벌은 이제 경제적 영역 뿐 아닌 사회 제 영역에서 그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며 그 대안을 찾아나간다는 것이 말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 또한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듯 하며,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서는 주로 그간의 재벌개혁의 과정을 공시-통시적으로 해설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진 본서는, 1장인 서론과 5장인 결론을 제외하자면 모두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그간의 재벌개혁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기업지배구조를 논하는 책에서 흔히(?!)느낄수 있는 재미랄까, 그런것을 많은 부분 희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왜곡된 소유구조 등 재벌의 현실을 논하는 2장과 비정부 부문(?)에서의 재벌개혁 노력과 그에 관한 평가를 다룬 3장의 다소 지루하달법한 서술을 지나 독자가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낄법한 부분은 아마도 정부부문의 재벌개혁 노력과 평가를 다룬 4장과 구체적인 대안모색에 관한 5장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말인즉슨, 재벌개혁과 그에관한 여러 제도에 관한 기본 교양이 부족한 나같은(!) 독자에겐 사실 2장과 3장의 그 많은 자료나 분석은 그 서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듯 싶다는 이야기이다. (해서 사실 저자의 분석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지적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일 듯 싶다.) 사실 따지고보면 4장 또한 2,3장과 마찬가지로 제도와 효과에 대한 '해설'적 성격의 글임에도 특별히 흥미롭게 읽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정부부문에서의 재벌에 대한 개혁 유인책들이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냈는가를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실제 재벌그룹인 삼성-LG-현대자동차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이러한 사례에 대한 설명을 지나 대안제시로서 벤쳐기업체제라던지 유한킴벌리 모델, 그리고 한동안 각광(?!)받은 바 있는 노사 대타협론등의 허와 실을 적절히 지적한 저자가 결국 주장하는 바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모델'정도로 보면 될 듯 싶다. 물론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종종 노사대타협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종종 주주가치경영이라는 최근의 흐름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하여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노동자에게 복지를'운운하는 식의 담론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노사타협론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저자는 총수의 전횡이 만연한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도입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는 등, 주주가치경영이 가져다주는 여러 장점(투명성 강화, 시장의 긍정적 효과 유발)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코 가볍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업이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주주만을 위해 기업이 운영될 경우 단기 성과에 집착하여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당사자의 심도있는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애초부터 개별기업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관계로 재벌규제에 적합치 못한 회사법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이라던지, 노동자의 경영참여 제도 도입이라던지 기타 재벌개혁에 관한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는 저자는, 그러한 노력 이전에 우선 재벌개혁의 목적이 '총수의 지배력약화'임을 명확히 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노력이, 정권이 진행됨에 따라 주된 목표가 무엇인지 잊고 우왕좌왕하다가 희미해져버린 경험에 연원하는 듯 싶기도 하다. 물론 재벌개혁에 관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지금 우리가 가진 정부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주장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기업 단독으로 달성하기 힘들었던 시너지 효과가 총수를 비롯한 몇몇의 전횡에 의해 진행되어 사회적 이익이 되어야 할 것마저 특정 계층의 사익으로 전환되어 온 우리의 지난 역사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금산분리완화, 출총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현정부를 보면, 오늘 우리사회에서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외려 '그러하기 때문에' 재벌 개혁에 대한 더욱 강력한 요구가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굉장히 재미없는 책이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적어도 마지막 장 정도는 재미있게 읽으실 수도(!)있을 것 같다. 참고로 말하자면, 본서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산법 같은 재벌규제와 관련한 기본 제도의 취지나 내용이 별다른 설명없이 마구 등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소간의 배경지식이 요구된다.(덕분에 나도 이번에 공부좀 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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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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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러시아 예술에 있어 문학의 그 특수한 지위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서 흔히 떠올리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인데, 정작 러시아 본토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는 체호프라고 한다.(물론 나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라 확언하긴 어렵다마는) 체호프와 푸쉬킨을, 삼음절이라는 것 외에는 한글자도 일치하지 않는 이 두사람을 언제나 헷갈리곤 하는 나로써는 다소 어안이 벙벙해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러던 중 세계3대 단편소설 어쩌고에 체호프의 이름이 또 보이길래 등수놀이 좋아하는(?!) 못된 독자로써 엉겁결에 읽게 된 책이 본서이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고, 사실 서점에서 사람 기다리다가 본서에 수록된 첫단편인 '관리의 죽음'이 너무 웃겨서(-_-;;;;) 본서를 읽게 되었다. 마치 120여년 후 한반도에서 하나의 개그 코드가 되어버린 듯한 '허무개그'랄까, 그런 것을 선취한 듯한 체호프의 시대를 앞선 유머감각(?)은 고전의 근엄함에 대비되어 더욱 경쾌하게 읽혔고, 이는 웬지모를 가을의 우울함에 빠져있는 나에게 기대를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본서에 실린 10편의 단편(아무리 세어봐도 10개인데 왜 책 말미의 소개에는 아홉편이라 쓰여있는건지?)을 다 읽은 결과 '관리의 죽음'이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단편을 읽고 좀 더 유쾌해보고자 했던 나의 의도는 완전히 실패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체호프의 모든 단편들을 꿰뚫는, 일종의 공집합으로서의 정조는 딱 한가지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고 그런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렇고 그렇다는게 뭐가 그렇고 그렇다는 것인지? 그것은 '인간의 삶이란 원래 덧없는 것'으로 풀어 말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관리의 죽음'이나, 아마도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법한 '드라마' 또한 오늘의 독자가, 저자의 다른 단편을 읽지 않고 그것만 읽었다면 애초에 습득한 '코드'에 의해 유쾌해지겠지만, 다른 단편과 함께 그 작품을 읽을 경우 체호프가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의도한건 바로 그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음을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체호프의 작품에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체호프의 모든 단편에는 대놓고건 아니건 어디에나 묘한 익살이 깔려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유쾌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의 감상을 독자 스스로 다시금 돌이켜볼 때 곱씹을 수밖에 없는 우울함이다. '티푸스'에서 클리모프는 조카가 자신의 병에 전염되어 죽었음에도 회복기의 동물적 기쁨을 이겨내지(?)못한다. 사실 내가 체호프의 단편들을 읽으며 느끼는 유쾌함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기에 본서를 읽는 내내 우울했다. 진리라는게 알려고 한들 알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라는게 죽고나면 덧없이 잊혀지는 것인데, 우리는 왜그리 아둥버둥 난리인걸까. 그런 것들을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결국엔 그 속에서 살아가며 '덧없음이 예정된 즐거움'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것은, 일종의 인간 본성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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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모색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장회익.최장집.도정일.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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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성상의 약점과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유형의 책으로 인터뷰집(혹은 대담집)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유형의 책은, 인터뷰이 개개인의 가십성 이야기와 깊이있는 학술적 주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너무 가벼워진다거나 아니면 굳이 인터뷰집의 형식으로 내지 않아도 될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터뷰집은 잘 해야 입문서 정도로 기능하거나, 혹은 입문서도 아닌 무언가 어정쩡한 형태를 띠게 되어 얼마지나지 않아 그 유통기간이 다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비교적 성공한 인터뷰집(?!)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사견을 이야기하자면-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예외로 두어야 할 법한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제외하고-최근에 이렇게 만족스런 인터뷰 형식의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듯 싶다. 같은 출판사의 '問라이브러리'시리즈의 일종의 에피타이저로 나온 듯 보이는(인터뷰이 네분은 모두 이 시리즈의 저자이다. 그런 면에서 기왕하는거 강수돌씨와 윤평중씨의 인터뷰도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 인터뷰집은 무엇보다 평소에 단행본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분들이라던지, 아니면 다소 난해하거나 논쟁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인터뷰를, 인터뷰이에게 적당한 질문을 날릴법한(?) 괜찮은 인터뷰어 선정을 통해 비교적 깊이있는 대담을 엮어내고 있다.

어찌보면 본 대담집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감은 최장집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사상을 접한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신선함에 상당부분 기인하기도 하는 것 같긴 한데, 장회익 선생님의 온생명사상이라던지, 도정일 선생님의 '근대주의론' 혹은 '시장전체주의 비판론'이라던지, 김우창 선생님의 그야말로 '깊이있는' 변증법적 사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인터뷰어(정정호, 여건종, 박명림 선생님)의 질문으로 인해 기대보다 더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너무나 자주 접한 최장집 선생님의 대담은 역시나 '논쟁적인'학자인 임지현 선생과 이루어져 기대 이상으로 논쟁적으로 읽힌다.(선생께선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경계해서이신지, 읽히기에 따라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주장을 하신다. 사실 이러한 논쟁성은 근작인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긴하다.)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신선함으로 따지자면야 장회익 선생의 온생명 사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읽혔고(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황우석사건 이후 굉장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던 '생명'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데 '온생명 사상'이 적잖은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내용상으로는 김우창 선생님의 인터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다소 절충론적 냄새를 풍기는 선생의 말씀은, 그럼에도 결국엔 '변증법적 결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 추상과 구체, 현실과 이상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수준에서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사유를 보여주시는데 이런저런 촌철살인에 가까운 분석하며, 이것이 박명림 선생의 굉장히 '정치적(?)'인 질문과 연관하여 의외로(?!)박진감 있게 읽혔다.(물론 네개의 인터뷰 중 가장 어렵긴 했다.)

전환의 모색이라고 하지만 네분 모두 전환의 방향과 모색을 적나라하게 대놓고 제시하시는건 아니다. 네 분 모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향하여 이야기 하시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씀 하시고, 자신의 주장을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본서의 제목인 '전환의 모색'은 순전히 독자의 손에 맡겨진 셈인데, 그런 점에서 본서가 '전환'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그 모색에 있어 적어도 괜찮은 '도구'로 기능할 것 같기는 하다. 가을에 산보하듯(?!) 읽어볼만한 책이다. 무게있는 인터뷰이지만, 인터뷰집이라는게 또 그리 무겁게 읽히는 형식은 아니지 않은가.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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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01 16:40   좋아요 0 | URL
김우창-박명림 최장집-임지현이라...흥미로운 대담이 되겠군요.

率路 2008-11-05 00:11   좋아요 0 | URL
전자는 스승과 제자구도, 후자는 비슷한 결론과 상이한 맥락에서 야기되는 묘한 긴장감 뭐 그런게 재밌더라구요^^;;;;

okcom 2008-11-27 22:1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와 저도 이거 읽어볼래요~ 개인적으로 대담집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읽기 쉬운 구어체일 뿐더러 주석이 없어서라는 ㅎㅎ

率路 2008-11-28 15:46   좋아요 0 | URL
주석ㅋㅎ 인문학도의 비애가 느껴지는 대목이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