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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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리영희 선생님의, 아마도 마지막 저서가 될 듯 싶은 책이다.(라고 쓰려는데, 얼마 전 '전집'이 나오면서 신간이 하나 더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선생께선, 지난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우반신이 마비되셨지만,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고 하나, 둘 교정을 보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구입하면서도 이 많은 양의 책을 올해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임헌영선생과의 대담 형식으로 짜여진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리영희 선생도 리영희 선생이지만, 임헌영선생의 체계적이고 요점에 맞는 적절한 질문과 대담 또한 이 책을 빛나게 하는 한 요소로 보이는데, 임선생께선 리선생의 업적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라, 그 분의 학문적 내용에 관하여도 시대 순으로 찬찬히 질문을 하여 책이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계시다.

책을 보는 내내 놀라웠던 것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생의 사상이었다. 물론, 선생께선 그간 어떠한 거대한 사상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신 것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옛 진보주의자들이 보였던 여러가지 오류마저도 너무도 가볍게 뛰어넘고 계시다. 포스트모던이니, 해체니, 노마디즘이니 하는 수없이 어렵고 알아듣기 힘든 암호같은 단어나 개념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시고도, 선생께서는 이미 그러한 사유를 옛부터 해오셨고 심지어 실천해오시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한쪽에서는 '사상의 은사'로 한쪽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워지는 리선생님이지만, 책을 읽은 후 개인적으로 양쪽이 다 틀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생께서는 군인이시기도, 학자이시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역시 저널리스트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옳다고 보여진다. 아울러 선생께선 선생 스스로도 이전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인정하신 바대로 거대한 사상이나 고답적인 담론을 거드는 것 보다는 암흑같은 시대에 진실, 오로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초인적인 희생을 하신 분이다. 이는 학문적으로 자칫 쉬워보이는 작업처럼 보여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굉장히 어려웠고, 위험했으며, 세상을 바꿀만한 소중한 작업이었다. 즉, 선생께서는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기 보다는 '우리시대의 은사'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하겠다.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출판시장이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빛난다. 이는 어느 군인이자,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한 원로의 진솔하면서도 의지에 찬 힘있는 목소리 때문일 것이리라. 시대와 역사와 사회를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그 누구든, 때문에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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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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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불만스러웠고, 모든게 싫었다. 성적은 미친듯이 곤두박질 쳤고,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재능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다 하소연한다고 풀릴문제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 원하는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만사 싫었다. 어느날 저녁을 먹으며,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이런식의 불만을 늘어놓자 아버지께선 한마디 하셨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니?" 물론 나는 그에 대해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모든게 싫었고,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으니깐. 이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이다.

책을 보며, 그등학교 때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그 때 이 책을 만났다면, 홀든 콜필드를 만났다면, 조금 덜 힘들 수도 있었을텐데. 콜필드의 학창시절과 나의 학창시절간에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감정에 대한 솔직함의 유무 정도일 뿐이리라. 개인적으로 너무도 공감이 갔고, 아마 이것은 대다수가 '이유없이' 소외되고 억압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상 다른 독자들도 비슷할꺼라는 생각이 든다.(아닌가? 그럼 복받은거고)

존레논의 암살자는 이 책을 읽고 존레논을 암살했다고 했다지만, 그건 아마 그가 이 책을 오독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필드에게는 어린 시절의 철없는 냉소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어찌보면 매우 소박하면서도 굉장히 소중하며 원대한 소망-비유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었고, 그가 사랑하는 무엇-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있었다.(이 점 또한 나와는 굉장히 다르다.) 콜필드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면, 분명 아마 어린 시절의 냉소를 가볍게 뛰어넘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남들이 품을 수 없는 진정 따뜻한 '꿈'이 있었으니깐.

ps.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번역'일 것이다. 적당한 과장과 적당한 비속어 사용은 독자로 하여금 기분나쁘지 않으면서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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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미래
앤서니 기든스 지음, 신광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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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Where now for New Labour'다. 여기서 New Labour가 새로운 노동이 아닌 신노동당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눈치없는 사람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상업적인 고려를 안하고 생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터, 다소 황당한(?) 제목에 대해선 일단 관용을 베풀어도 좋을 듯 싶다.^^;;;

제3의길이 블레어 정부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절찬리에 '팔려나가고'있을 때, 에릭 홉스봄과 스튜어트 홀을 위시한 영국 좌파 학자들은 '제3의 길은 없다'라는 책에서 블레어 정부와 기든스의 기획은 '그저 우회하는 것일 뿐'이라며 통렬히 비판했었다.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은 글쎄, 우회라는 표현조차도 후하겠다는 것. 책에서 보여지는 기든스의 논리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이를 좌파적으로 억지로 수렴하여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울러 이 책이 발간된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기든스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행한 이라크 파병을 어떻게 보는지도 굉장히 궁금하다. 그것마저 합리화하려나?) 게다가 자신을 비판하는 소위 '구좌파'세력에 대해서는 심지어 '의심할 여지없이 좌파의 일부는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더 행복해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는데, 다소 진지함을 결여한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

아울러, 제3의 길의 기획이 애초 취지와는 달리 실제 정책대안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정반합의 합(合)이라기보다, 단순한 절충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국유화와 민영화 사이에서 '관민 협동체제'뭐 이런 대안은 솔직히 기든스'씩이나'되는 학자의 대안이라고 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 고고한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건 자신의 이론을 팍팍한 현실 속에 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써 적용해보려는 노력의 모습만큼은 확실해 보이며, 그 점은 동북아의 분단된 국가의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굉장히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도 방송을 틀면, 그 수많은 식자들과 교수들이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한국은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기든스만큼 딱 부러지면서도 독창적으로, 그러면서도 사려깊고 따뜻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ps.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접속사나 조사가 어긋나고 주어술어의 호응이 종종 어그러지는 경향이 보여지는데, 혹여 새로 찍어지는 판본에는 그 부분에 있어서 수정을 해 주셨으면 하는 조그만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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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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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고전'에 대한 나의 지독한 편견-즉, 굉장히 재미없고, 굉장히 보수적이며, 굉장히 뻔한 얘기들 뿐이라는-은 이책을 만나기까지 수년의 세월을 걸리게 했다. 뒤늦게나마 다 읽고 생각한 것은 너무 늦게 만났다라는 아쉬움과 후회, 그래도 지금에나마 읽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 뭐 이정도?

이 책은 오로지 역사학도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균형잡힌 시각을 잡아주기 이전에 그 균형잡힌 시각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해명해주는, 때문에 그저 기계적 중립성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가 굉장히 공정하다고 착각하는(그래서 그 '공정함'이란 '중립'이 아닌 '올바름'이란 것을 쉽게 잊곤하는) 우리들 모두를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제도권 교육의 교과서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단 한 줄의 문장에 이 좋은 책을 '구겨넣는' 야만을 저질렀지만, 본서는 그렇게 한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올바른, 균형잡힌, 그러면서도 생동감있는 시각을 가지기 위해선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아야하느냐에 대한 너무도 중요하고 너무도 소중한 내용들이 주리줄창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어쨌건 변화의 가능성을 낙관하려는 저자의 '의지로 하는 낙관'이 짖게 베어 있다. 그래서 그 점이 이책을 너무도 따뜻하게 만든다.

물론, '후세의 사람들이 더 정확한 역사를 본다'는 식의 표현은 다소 동의하기 힘들었다.('정확한'역사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시대에 맞는 역사를 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빠지고, 빠지고 싶어하는 객관성의 함정을 극복하고, 그 가운데 변혁으로의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너무도 멋있고,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책은 대학 입학전에 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대학입학전에 봤다면, 적어도 조금 더 겸허한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ps.확실히 영국인들의 유머감각은 참. 이런 고리타분해 보이는 노교수의 저서에서도 그 유머와 풍자 혹은 비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뭐 나름 장단은 있겠지만 나로써는 굉장히 부러운 문화일 따름이다. 덕분에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는 부분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볼 수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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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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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씨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함께 가장 '잘팔리는'경제학설사 책이라고 하면 될라나? 그래서인지 두 책 모두 차례로 양장본으로 재출간되면서 가격이 비싸졌다.-_-;;;;

부크홀츠는 개인적으로 이전에 읽어본 바 있는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유쾌한 경제학'에서 이미 본 바대로 정말 재미있고 알기쉽게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서술하고 있다. 혹여 수박 겉핥기 정도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은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독자로 하여금 그러한 우려가 기우였다는 생각을 들지 않을 수 없게끔 서술하고자 한 것 만큼은 책임지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유달리 맑스에 대해서만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비난'하고(사실 이런 행태는 학자로써 굉장히 비겁한 '짓'이다) 심지어 인신공격까지 하는 것은 보기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가 냉전시대가 끝나지 않은 때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아울러 전반부는 멜서스와 리카도의 논쟁 중심으로, 후반부는 통화주의자와 케인스학파의 논쟁 중심으로 서술한 체계는, 자칫 산만해질법한,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쉽게 책을 내려놓게 만들법한 함정을 쉽게 극복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탁월한 서술체계와 깔끔한 설명에 비해 그 이면의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게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자유시장 지상주의와 통화주의에 대한 맹신은 독자로 하여금 너무 많은 것을 놓지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아는 것이 전부라는 암묵적인 전제하에, 여러 경제학자들로부터 '필요한'아이디어만 발췌해 알아본다는 발상은 독자들의 가능한 수많은 상상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하랴. 책은 충분히 재미있고, 알기 쉬운 것을. 책을 통해 얻고자 원하는 것이 그저 '아이디어'인 독자이라면, 즉 경제학의 단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만을 원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임을 보장한다. 역자의 충실한 역주 또한 이 책의 빼 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때문에 본서가 갖는 그 철학적, 방향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별 넷 정도는, 가볍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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