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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5 ㅣ 시공 로고스 총서 25
테럴 카버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엥겔스'를 치면, 대부분 맑스에 딸려서(?) 나올 뿐, 엥겔스 개인에 대한 단행본은 이 책 뿐이다. 때문에 이 책의 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느정도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덤속의 엥겔스는 한국에서 출간된 자신의 '유일한' 단행본이 이 책이라는 걸 기뻐하고 있을까 슬퍼하고 있을까. 내 생각엔 차라리 이런 책이라면, 그의 입장에선 '출간되지 않을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엥겔스에 대한 단행본이라면, 적어도 맑스의 조력자로서가 아닌 그의 '독자적'인 사상이 어떤 것인지, 아울러 그가 맑스에 대한 첫 주석자이자 최초의 맑스주의자였다면,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서술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책은 맑스의 입장에서,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맑스주의의 모든 오류는 맑스가 아닌 엥겔스 때문임을 주장하기 위해 쓰여진 글처럼 보인다.
물론, 그가 맑스에 대해 다소 단선적인 해석을 하여, 그 이후의 맑스 해석의 상상력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그가 해 낸 혁신적인 역할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시대상에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순전히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다면, 데카르트나 헤겔같은 대철학자도 골때리고 유치한 소리한 것만 따지면 여럿있다) 적어도 '엥겔스'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면, 그러한 서술은 필요불가결적일텐데 저자는 그런 것보단 '모든 것은 엥겔스 때문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엥겔스의 '생애'에 대해 너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지 않은 것 정도일 것이다. 흔히들 반대자들은 맑스에 대해선 '그렇게 현실에서 무능했으니 베베 꼬였지,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성공 못한자가 무슨 사회주의인가'라며 욕하고, 엥겔스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노동자에 대해 떠드는건 모순아닌가'라며 욕한다. 이러한 비난들은 새로운 시대, 변혁을 바라는 이들조차 어찌되었건 그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고의적으로 보지 않는, 저열한 목적의식의 소산이다. 그나마 그러한 인신공격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인신공격이 부당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만이 이 책의 유일한 '미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