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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민주주의 ㅣ 현대의 지성 59
노르베르토 보비오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3월
평점 :
품절
과장 조금 섞어서 20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정치학자라고 할만한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본서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학부과정의 마지막 학기였던 4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치학의 'ㅈ'조차 전문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본서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랬던건지 어쩐건지 하여간 4년전보다는 눈꼽만큼이라도 조금 더 교양을 쌓은(과연?)오늘 이 책을 읽음에 있어서 들었던 의구심은 '어떻게 그땐 그렇게 쉽게 이 책을 읽을수 있었는지'하는 것. 사실 본서가 그리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여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난이도로 따지자면 여느 정치사상서적의 평균적인 난이도를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려 본서의 그 난해함은 책에서 등장하는 그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맑스주의까지-이 무엇을 겨냥하여 운위되는 것이며, 저자 또한 누구에게 누구를 위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는 것인데, 이는 크게 두 부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이탈리아 정치사의 특수성을 들 수 있겠다. 이탈리아는 어느 정치학자가 언급한 바, 서구의 정치적 흐름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나라는 무솔리니의 손녀가 조부의 뜻을 계승하는 정당 소속으로 무려 현직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나라임과 동시에 서구에서 가장 강한, 거의 단독으로 수권이 가능한 공산당을 가졌던(그리고 그 후신이 여전히 강한 세력을 유지하며 가끔씩(?!)집권하기도 하는)국가이기도 하다. 해서 적어도 동구의 몰락 이전까지는 보비오가 속해있던 사회당 등 중도좌파 정당마저 다른 서구의 중도좌파정당과는 달리 공산당에 조금 더 적대적이었고, 때문에 심지어 공산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연립정권 블록에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때문인지 저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의회민주주의 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수용한 사회주의를 논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사회주의와 맑스주의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마저 논해본 역사가 일천한 우리로써는 뜻하지 않은 난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요인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나아가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개념이 어느정도라도 합의된 바 없으며, 그러한 이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우리 사회가 주체적으로 겪어내지 못했다는 측면에 있겠다. 절대왕정체제를 타파하며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도래한 서구의 역사적 상황, 그 시민혁명의 주체가 담지한 사회적 지위의 특수성과 민주주의 이념의 보편성이 괴리를 일으키며 겪게되는 갈등, 그것이 산업사회의 도래와 노동자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주의의 도전으로 인해 분절되는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총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뽑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군사독재 시절, 아니 심지어 지금까지도 자유주의의 기본가치-언론 출판의 자유라던지 양심의 자유라던지 하는 것-에 대한 침해에 대해 매우 나이브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현실과 겹쳐지면서 보비오의 주장을 이해하는 것을 더욱 무망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우리사회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상의 난맥상은 오늘, 우리사회에서의 이 책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벵자멩 콩스탕의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지적 즉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고 민주주의는 권력을 골고루 분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에 둘 간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관계일수밖에 없다는 명제로 시작한 본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화두 모음 혹은 에세이로 읽혀질 정도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흘러흘러 풀어놓는다. 그 속에는 기실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적 덕목의 강력한 수호를 원했던 토크빌이나, 그보다는 좀더 평등에 대한 세련된 고찰을 해낸 밀도 등장하고, 자유주의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조금 더 친화적인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어떠한 긴장관계에 있는지도 논하여진다. 한편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사상사로 읽혀지면서 여러 화두가 다소 파편화되게 읽히는 측면도 없지않은 본서가, 그럼에도 하나의 흐름을 두고 읽혀질 수 있게되는 것은 본서의 놀랍다싶을 정도의 편집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본문의 마지막 장에 '하나의 사족'으로 보비오의 다른 논문인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어붙힌 것이나, 부록으로 '그람시와 시민사회의 개념'을 수록한 후 마지막장에 이탈리아 정치에 대한 저명한 학자인 리처드 벨라미의 '현대 사회주의와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정치사상'을 수록한 것은 굉장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나처럼 '철없는'독자들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막스 베버의 유명한 한마디-예언과 선동은 학문의 강단에 소속된 것이 아니다-를 인용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역사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며, 온통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양자와 사회주의가 얼마나 모순적이면서도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 어지러울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 저자가 본서에서 중점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자유주의를 무시한 사회주의'이고, 이와 연동하여 '급진적인 참여 민주주의'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간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참여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과도한 흐름이 결국 복잡하고 다층적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음을,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맑스주의가 언론, 출판의 자유 등 '개인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며 등장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발현으로써의 민주주의마저 질식시키는 길임을 이야기하며, 모호하고 모순된 대안만을 내놓는 급진적 사회주의보다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좀더 민주적이고 좀더 평등지향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결국 자유주의의 덕목을 받아들인 일종의 불완전한(?!) 사회주의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주장에 반대가 될만한 논거들-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태생적 모순성에 기인한-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결국 그러한 논거들이 아직 다원주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를 뒤엎을만큼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며 자유민주주의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역설한다.
위와 같이 저자의 집필 목적만 따른다면 본서는 '개혁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한 사민주의자의 급진주의자에 대한 이론적 항변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반도'의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시공간적 배경의 상이함 때문인지 다른 부분이 좀 더 도드라지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었다.(아마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며 상이하지만 생산적인 해석이 가능하기에 이 책을 정치학의 '고전'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듯 싶다) 유의미한 급진주의 세력이 없고, 한가로이 '옹호'하고 있을만큼 어떠한 일관성있는 개혁 정책이 추진되는 것도 아닌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본서는 외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행사하는 보수세력의 행태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혹은 자유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인가를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나아가 사회주의와의 관계는 그것이 어느 쪽으로건 자연스럽게 연결될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념간의 난맥상은 사회의 복잡 다변화 속에서 더욱 가중되면 가중되었지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화석화시켜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오늘의 세태는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참 의미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귀결될 따름이다.(그 모습을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도 명명백백히 사회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며 이는 더 큰 국가, 더 많은 관료 그리고 역설적으로 더 적은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자유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소유권을 요구하며 이는 더 많은 빈부격차, 그리고 빈민층의 자유에 대한 극심한 침해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제한 사회주의로 민주주의를 구하려는 시도는 그 '개인주의'적 함의로 인해 자유주의와 함께 교호적으로 발전해 온 민주주의의 특성을 무시하게 되어 또다른 모순으로 귀결된다(과거 동구권, 그리고 지금의 위쪽 동네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해온 바 있다.) 이러한 패러독스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우선적이고도 유일한 길은 인간의 다원성과 인식론적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겠다. 그런 점에서 다시 자유주의로,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그 둘의 관계를 검토하며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금 질문하는 본서는 읽혀져야만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