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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확실히 책보다는 TV를, 글보다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나는 그리 현명한 독자는 되지 못한다. 덕분에 비유나 축약으로 가득한 운문은 나에게는 거의 쥐약에 가깝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데, 본서 또한 이부분 저부분 조금씩 읽다가 결국 거의 9년이 다 지나서야 완독하게 된 셈이다.(그럼에도 여전히 어느정도 감흥이 일 정도의 이해라도 가능했던 작품은 고작해야 절반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교양국어 강사의 다소 호들갑스럽다 할만한 극찬으로 인해 알게 된 기형도의 이 전집에는 '입속의 검은잎'에 수록된 작품 외에 이전에 발표된 바 없는 다른 시와 소설 및 수필과 평론들도 수록되어 있다. 입속의 검은 잎 말미에 수록되어있던 김현의 평론이 빠져 있다는 것은 다소 안타깝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인 본인이 습작처럼 쓴 소설이나 수필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몇몇 소설의 경우 다소 투박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소설이나 수필들은 굉장히 재미있고 심오하게 읽힌다.
기형도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묘사라던지 고독과 슬픔의 정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독이나 슬픔의 정조는 군중 속의 고독, 형식적으로 소통은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방으로 고립되어버린 현대인의 정서와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것이기에 그의 글 특유의 정말이지 철저하다싶은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적으로(?!) 읽혀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조금씩 불편한 부분이 있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기형도 글의 난해함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불편함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대학 3학년 때쯤이었나, 그 정도만 되어도 동아리나 학회에서 원로(?)역할을 하게 되던 시절, 문화운동(?!)동아리에서 여전히 활동을 하던 한 친구가 농담삼아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 친구가 신입생이었을 때 한 3년 터울의 선배가 나와서 '..XX운동의 끝자락에서..'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는데, 이젠 자신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게 되었노라고.
어찌보면 우리들이 기형도의 시를 읽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은 많은 부분 그의 시적 표현보다는 그것을 관통하는 정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기형도가 이야기하고 있는 고독과 슬픔의 정조는, 우리 세대의 고독이나 슬픔과는 다소, 아니 꽤나 많이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위 '88만원세대'의 시작을 알린 우리 세대의 대학시절은,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시작한 우리세대의 삶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게 된 고독과 슬픔의 감정은 기형도 시절의 그것과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시로 말하며, 그의 고독과 슬픔의 언어를 곱씹는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전적으로 이 부분에 기인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의 대학시절이 결국 은연중 언제나 과거만을 바라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XX흐름의 끝자락'을 내세웠던 우리는-그것이 대외적인 여건 때문이건, 스스로의 역량부족 때문이건-우리의 흐름을 만들 생각도, 우리의 언어를 만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좋았다던 선배들의 시절을 동경하며, 그 시절을 따라서 노래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의 애환이 담겨있는 대학시절은, 우리의 추억이 담긴 우리의 시대는 누가 노래해줄까? 정작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기형도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그의 시로 이야기하는 우리는, 또 한번 과거를 향해 가슴아프게 늙어간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