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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평점 :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을 가진 민주주의(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 칭해지고, 혹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도 하는)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일일히 부연설명하지 않더라도 현대의 정치구조 속에 선거가 갖는 강력하면서도 특수한 함의를 부인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거의 특수하달법한 기능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몇가지 논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는 현대 정치구조에서 선거가 가지는 그 특수한 위상이 과연 합리적이라 할만큼 선거라는 제도가 그 나름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불법, 탈법선거라는 선거과정에서 참여자의 비위를 차치하고라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로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선거가 과연 민주적인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인기'에 기반한 인물을 뽑는다는 발상이 정치 자체를 '정치 없는 정치'로 희화화 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이는 오늘날엔 미디어의 발달과 자본집적의 고도화(?)로 심지어 '구조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뿐만 아니라 다수의 의사가 일반의사와 과연 얼마나 일치하느냐는 의문은, 지역이기주의에 기반하여 당선된 수많은 '반민주적'성향의 국회의원을 보며 부정적 확신으로 변화하기까지 한다. 아울러 선거란 정치적 열망의 표출기재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열망을 억압하고 순화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있는데(특히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우리사회에서의 선거가 이런 도구로 부쩍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조금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시도된 수많은 다른 시도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거가 중심이 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두번째로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민주적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현대 사회에서 선거 자체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힘을 염두에 둘 경우 피할 수 없는 논제인데, 과연 우리사회가 치뤄 온 선거의 결과가 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그 변화의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한 평가부분이다. 사실 현대사회에 보통선거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영향력은 거의 주술적(!)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이는 오랜기간 군주제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군주제에 대해서는 '뒤도 안돌아보고'공화제와 보통선거를 도입한, 아울러 해방이후 최대의 국민운동이란게 결국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위한 것이었던 우리 사회에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처참하달만큼 저조한 투표율에 단 1~2%차이로 당락이 갈린 지난 교육감 선거를 두고 '국민은 경쟁을 택했다'운운하던 언론의 설레발이나 그러한 선거결과로 인해 '실제로도' 그만한 정치적 추진력이 주어지게 되는 구조를 생각해보라!) 때문에 이는-선거라는 제도는 그저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급진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더라도-우리가 선거라는 화두에 대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된다.
본서는-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굳이 따질 것도 없이 두번째 문제의식에 따라 서술된 역사 서적이다.(즉, 본서 뒷면의 '선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광고(?) 문구를 두고 아무리 토를 단다해도 남의 다리 긁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본서와 비슷한 형식, 즉 선거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서적으로 언뜻 떠오르는 것은 개마고원에서 출간된 '진보와 보수의 영국사'(이하 '영국사')정도인데, '영국사'가 단순히 역사 서술의 기술적 용이성을 위해 선거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면, 본서는 오로지 대선과 총선만을 중심화두로 언급하며 거기에 다른 부분은 선거와 '관련하여' 곁들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다. 아무튼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2007년 초에 열린 바 있던 시민강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본서는 강좌를 바탕으로 한 책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읽기편하고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은 있지만-시간제약이 있는 '강좌'라는 한계로 인해-깊이가 부족하고 몇가지 논점은 아예 무시하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그 중에도 특별히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먼저 제2공화국 시절의 선거를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4.19 이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장 자유롭고 다원적인(?) 정치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될 법한 것이 그 시절이거니와, 2공화국의 구조가 지속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그것이 좋건 나쁘건-오늘날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이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선거를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전에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인해 무너져, 사실 분석할만한 유의미한 정치적 사건이라곤 선거밖에 없는 것이 2공화국이기에 당시의 선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하겠다. 아울러 투표율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 또한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선거를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 또한 얼마간 한몫하는 듯 싶기도한데, '선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대전제는, 결국 투표율이 낮은것에 대해 '나쁘다'외에는 별로 할말이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선거는 완전무결한 제도가 아니고, 때문에 투표거부나 선거에 대한 무관심 또한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선거가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행동 또한,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건 긍정적인 것이건 가볍지 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서가 얕은(?)분석에 기인한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방이후 남한만의 첫 단독선거부터 1공화국 사이의 분석은 분량으로보나(5회 강의 중 2회가 여기에 할애되었다) 깊이로 보나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더군다나 60년 선거역사동안 그나마 집권층의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최소한의 의미에서 '정상적인' 선거를 해본 역사라곤 15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우리 역사속에서 어디까지가 선거의 '진짜'결과인지를 추출해내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저자의 과학적이고 사려깊은 서술은, 자칫 잘못하면 그저 무협소설로 빠질수도 있을 법한(실제 우리의 '주류'언론은 선거를 그런식으로 다뤄왔고, 다루고 있다)주제를 과학적으로 구해(?)낸 듯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서가 갖는 현실적인 '미덕'은 얼토당토 않은 협잡과 반칙만이 난무하는 우리의 지난 선거사를 서술하면서도 그 협잡과 반칙이 그것을 행한 세력에게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가 더 나은 오늘을 낳는데 도움이 되었는가를 날카롭게 분석해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정치는 무조건 더럽고 추하다는 인식이 비정상적으로 만연해 있는 듯한 오늘날, 그리하여 참여 자체부터 불공정하게 짜여져 있는 '자본'(혹은 '경제')이라는 영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참여자체의 평등성이 보장되어 누구나 사회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라 할법한 '정치'의 영역이 외면받아 축소되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치라는 것, 그 정치의 한 수단으로서 선거라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해-경제라는 영역이 그렇듯, 윤리라는 영역이 그렇듯-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의 완성도도, 그만큼의 가능성도 담지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영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며, 또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절망적인 변화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진보의 주춧돌이 되는 우리의 지난 역사는, 이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