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의 이해 (제2개정판) - 미국 패권 시대의 지구촌의 아젠다와 국제관계
유현석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사회에서 '정치' 혹은 '정치학'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천시당하는 분야도 드문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은 심지어 그 분야의 실무적/학술적 전문가로 하여금 대중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을 한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정치에 관한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의 그 말의 많음 자체에 있다기보단, 대중 자신이 자신의 정치에 대한 얕은 인식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이는 다른 부문과 달리 정치라는 영역 자체가 대중의 참여 자체가 절실히 요구되는, 아니 대중의 참여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현실정치에선 더욱 악화되는 모습으로 확대 재생산되곤 한다.

국제정치의 영역에 이르면 이러한 현상은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만한 수준인데, 사실 이는 우리의 언론이 국제정치를 다루는 수준과 대중의 즉자적인 관심을 종합하여 유추해보아도 이러한 현실이 그리 어렵잖게 분석이 되기는 한다. 세계화가 어쩌네 지구화가 어쩌네 운운하며 헐리우드 스타의 연애나 결혼소식은 번개처럼 빨리 전달되고는 하지만 세계방방곡곡에 어떤 분쟁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분쟁에 대해 누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기초적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얕으면서도 (특히 미국쪽으로) 편향된 듯하다. 여기에는 사실 대중이 쉽게 접할만한 국제정치 관련 서적이 드문 현실도 한몫하는 듯 싶다.

대중이 쉽게 접할만한 국제정치학 입문서를 찾기 어려운 현실은, 많은 부분 국제정치학이 다루는 국제정치라는 환경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한두해가 멀다하고 이곳저곳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대형사고가 빈발하는 국제정치는, 그 사건의 다발성으로보나 비중으로보나 어지간한 기동성으로는 커버하기 어려운 다이나믹함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국제정치가 다루는 범위는 통시적, 공시적 양 측면에서 너무도 광범위하기에 단순히 몇몇이론으로 꿰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기에도 지난한 측면이 있다. 결국 이론과 시사성을 적절히 융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점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그 대안으로 조지프 나이의 입문서가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그렇듯 '시각'의 문제가 잔존한다. '제국'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미국인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은 아무리 보편적인 측면을 추려보려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는 사실 그 수단과 의미 양면에서 모두 상당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음은 북핵과 관련한 다양한 외교적 노력속에서도 이미 목도한 바 있다. 본서는 앞에서 언급한 한계를 그나마 가장 극복한 입문서로 보이는데, 적어도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재미있게(?!)읽을만한 난이도에 국제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이슈들을 총망라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몇가지 대표적인 이론을 설명하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물론 본서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문제를 구성하고 해결함에 있어 사실 현실적인 행위자라 할만한 주체가 강대국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의 서술이 서방을 주체로 하여 전개되는 듯 싶다. 아울러 아무래도 국제정치의 전통적인, 혹은 시사적인 수많은 이슈들을 모두 언급하고 설명하려다보니 깊이면에서 무언가 전개되다 끝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본서는 그 서술에 있어서 우리가 국제정치를 공부해야 하는 구체적인 목적-평화의 획득과 유지-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패권주의적 정향과 경마식 보도로 점철된 언론으로 인해 오염된 우리의 시각을 환기시켜주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국제정치학의 목표가 무슨 '세계정복'정도 되는 줄 아는 듯한 주류 언론의 서술과 은근히 알게모르게 그러한 시각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듯한 대중적 인식이 만연해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 '평화'야말로 국제정치학이 존재하는 진정한 목표이고, 그러한 목표아래 여러 수단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본서같은 입문서야말로 전공자가 아닌 '대중'에게 좀더 많이 읽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만주벌판 달리고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심심'하기 이를데 없는 국제정치학 입문서가 얼마나 감흥을 일으킬지 의문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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