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가정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성경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인구의 절반이 아동인 지역도 있을 정도였다. 여러 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피임을 호되게 비난했다. 그 시절에는 믿을 만한 피임법도 없었지만 말이다.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42~43p
다티니 정도의 부와 권력을 쥔 남자는 혼외정사를 해도 제약을 받지 않았고, 훌륭한 아내라면 가정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남편이 여색을 밝혀도 눈감아주는 것이 ‘도리’라고 여겨졌다. 이런 배신이 임신으로 이어지면 부인은 자존심을 누르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인정하고, 심지어 집에까지 들여야 했다. 그러나 아이가 불쾌하게나마 인정을 받는 드문 경우보다 분노한 부인이—그리고 곤욕스러워진 남편이—비적출 아동을 거부하고 아기를 병원이나 자선 단체에 보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병원이나 단체는 업둥이는 거뒀지만 어머니는 몰아냈고, 그러면 어머니는 대부분 거리에서 숨졌다.
-52~5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