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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 vs. 심리학: 행동 경제학의 시작


정치, 경제 좀더 보편적으로 말해서

모든 사회과학을 떠받치고 있는 학문은 명백하게도 심리학이다.

심리학 원리로부터 사회과학의 법칙들을 이끌어낼 날이

언제가 찾아올 것이다.

 

빌프레도 파레토, 1906 

-p.19에서


 제가 학부에서 경제학에 대해 살짝 맛보기를 하고 있을 때,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경제학 이론을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널리 적용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다른 사회과학 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 역시) 우려와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러한 우려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우(杞憂)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다양한 경제적 문제와 위기 상황에 대해서 경제학이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불행이라면, 경제학자 스스로가 기존의 한계를 절감하고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경제학의 한 분야(위키백과에서 발췌)입니다. 한때 모든 사회 현상을 비용과 이윤을 통해 설명하려던 차가운 경제학이 이제는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경제학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행동경제학은 그 시작점을 1979년으로 볼 만큼 역사가 짧기만 합니다. 그만큼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낯선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그 잠재력을 다 파악하지 못한 신대륙이기도 합니다. 저는 11기 신간 평가단 활동 때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생각에 관한 생각』을 통해서 행동경제학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동료로서 함께 행동경제학 분야를 탐험하고 개척해온 리차드 탈러 교수의 신작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는 Misbehaving)』을 통해 다시 한 번 행동경제학에 도전해 보고자 합니다. 탈러 교수는 7년전 국내에서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넛지』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 또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저자와 그 제목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신간 평가단 리뷰 도서를 선정하면서 이 책을 놓치지 않고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똑똑한 사람들도 멍청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콘 vs. 인간: 조삼모사의 시작


<http://me2.do/G5d9JIEc 에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흡사 저자의 자서전과 같이 저자의 인생 역정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짜 자서전처럼 저자의 시시콜콜한 인생사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저자의 인생과 겹쳐져 있는 행동경제학의 발달 과정이 주된 내용입니다. 저자의 인생(경험담, 동료 교수와의 일화, 기업이나 기관과의 협업...)은 이런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는 사례로써 책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경제와 경제학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합리적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이콘(Eon, homo economicus의 준말)'이 아니라, 제한된 합리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과 감정에 따라 곧잘 '잘못 행동(Misbehaving)'하는 '인간(Human)'임을 강조합니다. 조삼모사()는 고사성어 속 원숭이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객관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소유 여부, 위험이나 손실, 개인의 감각에 따라서 주관적인(혹은 잘못된) 만족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마냥 비합리적이며 손실만을 초래하는 성가신 약점일까요? 


 저자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면 기존의 경제적 접근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금지와 명령이 아닌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타인의 바른 선택을 돕는 것, 이것이 바로 '넛지(nudge, 원래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뜻)'이자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작 『넛지』가 행동경제학의 구체적 활용 방법을 알려준다면, 이 책은 넛지의 이론적 배경과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넛지를 읽지 않았거나,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라면 출판 순서가 아니라 거꾸로 이 책부터 읽고 넛지를 읽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만만치 않습니다. 『넛지』가 생소한 미국의 사례와 난해한 경제학 용어들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면, 이 책은 60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과 저자의 유머 센스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넛지 vs. 트리즈: 창의와 혁신의 시작    


화장실 거울에 찍힌 립스틱

설정: 화장실에서 호기심 많은 여고생 중 한 명이 립스틱을 바른 뒤 거울에 입술을 대 자국을 남겼다. 그런 뒤 거울에 찍힌 자신의 입술 모양을 구경했다. 이것을 본 친구들이 너도나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에 입술 자국을 남겼다.

문제점: 립스틱 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아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화가 났다. 아주머니는 선생님께 이를 알렸다. 선생님은 조회 시간에 화장실 거울에 립스틱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해결책: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간다. 학생들이 몰려오면 아주머니가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던 대걸레를 들어 거울을 북북 닦는다. 물론 이를 목격한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더 이상 립스틱 바른 입술을 거울에 대지 않았다.

-트리즈를 이용한 문제 해결 방법, http://me2.do/5kIb8B33 에서


 행동경제학이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학문이지만, 그 활용법인 '넛지'는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닙니다. 행동경제학과는 다른 이론적 기반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개념을 주장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영 분야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작은 아이디어로 빅트렌드를 만드는 '티핑 포인트'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조직행동론의 대가인 히스 형제는『스위치』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행동설계' 방법을 선보였습니다. 뇌과학 분야에서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존 티어니는 의지력이 근육처럼 훈련함으로써 강화할 수 있고 남용하면 피로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서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공학 쪽에서는 겐리흐 알트슐레르 박사가 20만건에 이르는 발명 사례에서 뽑은 40가지의 문제해결 방법을 묶은 트리즈(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ch)가 대표적입니다. 비록 출발점은 달랐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의 결과가  목적과 방법, 결과 모두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행동경제학을 공부하거나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런 이론과 방법론을 참고하는 것도 색다른 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선을 위한 넛지(nudge for good)'라는 문구를 적어준다고 합니다. 넛지는 도구일 뿐이기에 사용하는 이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적은 시기에 요금을 인하했다가 수요가 많아지면 요금을 인상하는 (때론 그 반대로 시행하기도 하는) 정부,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혹은 가격과 용량의 관계를 교묘하게 속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슬프게도 흔한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행동 경제학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 아니 우리 모두의 공공선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경제학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하나의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지만, 이들 개인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사회는 더욱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커서는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며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경제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들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행동경제학이 그러한 노력의 위대한 첫걸음이 되길 기원하며 책을 덮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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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1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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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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