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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착취하다 - 서민을 위한 대출인가 21세기형 고리대금업인가, 소액 금융의 배신
휴 싱클레어 지음, 이수경.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소액 금융의 비리를 제보하다.


 "진실이 우선이세요, 국익이 우선이세요?"


 "진실이 국익입니다."


 "과연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할까요?"


-영화 제보자(2014)에서


 김영수 해군 소령을 알고 계십니까? 2009년 군납 비리를 고발한 김소령은 내부고발자라는 멍에를 쓰고 20년간 몸담은 군을 떠나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에 합격하여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김 조사관은 "내부 고발자로서 유일하게 잘 풀린 사례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내부 고발자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끝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소금 같은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없었다면 우리는 더욱 부패한 사람, 제도와 힘겹게 싸워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만나보게 될 신간『빈곤을 착취하다』역시 이러한 내부 고발자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 휴 싱클레어가 고발하고 있는 것은 소액 금융의 진실입니다. 소액 금융이란 세계의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 빈곤층이 소규모 사업을 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신용으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무하마드 유누스가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 것이 그 시발점입니다. 유누스는 빈곤퇴치에 이바지한 공으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소액 금융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았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액 금융의 민낯을 생생하게 책에 담아내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소액 금융의 진면목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덕적 아이디어가 비도덕적 탐욕과 만났을 때


 우리는 영혼을 상실했다. 우리는 운전대를 잡고 졸아 놓고, 이제 와 충돌 사고가 난 것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수십만명을 고용하는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었다. 자율 규제 노력은 말하기도 창피한 것들이었다. ...(중략) 이것이 가능하다면 왜 더 많은 소액 금융 기관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 걸까? 나는 다른 동기가 있을 수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대답은 단순했다. 탐욕이었다. 진정한 사회적 미션 따위는 무시하는 편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더 쉽고, 더 많은 이윤을 내니까 말이다.


-p.372, p.380에서


  저자는 소액 금융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출 과정의 불투명입니다. 대출 받은 이들은 돈을 투자해 수익을 얻기보다는 당장 급한 빚이나 생필품을 사는 지출로 대출금을 소비해 버린다는 지적입니다. 둘째는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소액 금융 기관들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낙후된 국가의 금융 기관들은 설립 취지를 벗어나 부정과 부패, 무능과 비능률로 일관하고 있음을 저자는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경영과 나눔의 정신 대신 소액 금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채업자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무지막지한 이자율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고 저자는 폭로하고 있습니다. 소액 금융의 진실과 마주친 지금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급한 혐오감과 나약한 패배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산업을 창출했지만 규제는 잊었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소액 금융의 문제점은  설립 취지가 아니라 제도적 결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의 탐욕이 근본 원인일 것입니다. 저자가 폭로한 부정한 금융인들과 눈 먼 재단들은 소액 금융이 없었다면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썩은 시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욕망 어린 눈동자를 번득일까요? 수백 페이지에 걸친 암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제가 비관하지 않았던 까닭은 전에 읽은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적 부패라는 것은 정치가가 뇌물을 받는게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부패에 지나지 않아. 정치가가 뇌물을 받아도 그것을 비판하지 못하고, 재판하지 못하는 상태를  정치적 부패라고 하는 것이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색다른 여행기로도 읽힌다. 


 예컨대 호텔 근처에 '419 인터넷 카페'라는 곳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악명 높은 나이지리아의 스팸 메일이 대량 생산되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거기서 이메일로 어떤 사기를 치는지 그곳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그런 사기를 419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 위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넷 카페의 이름을 고객들이 위반할 법률를 따서 짓다니, 나름 '투명'하다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p.172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색다르고 흥미로운 여행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저자가 10년간 세계 곳곳의 소액 금융 기관에서 겪은 경험담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출신 저자 특유의 입담은 낯설고 황당하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소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색다른 여행기에 관심이 있다면, 자기계발서에 실망해 실제로 행복한 나라를 찾아나선 기자의 경험담을 담은『 행복의 지도』나, 미국 경제학자가 은퇴 후 캠핑카를 타고 5년간 미국을 일주한 체험을 담은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이론으로 무장한 전직 애널리스트가 6개월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물건을 사고팔면서 실물 경제를 배운 경험을 담은『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등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책에서 눈을 떼고 우리의 현실을 살펴볼까 합니다. 2014년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각국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1위인 덴마크가 청렴도가 92점인 반면 우리나라는 55점에 불과합니다. 이는 175개국 중 43위로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에 해당합니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의 나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낭비되고 있는 정부 예산, 정치인의 비리, 기업과 기업인의 부정. 이 모든 것이 대부분 개인의 일탈로 치부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다』라고 표현하면 너무 야박한 언사가 될까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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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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