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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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작품 제목의 [여울]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라는 풀이로 기술되어 있다

내가 왜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작품을 읽고 느끼시길 권유해 본다.


작품은 문학 작품이 아니다.

본 작품은 우리 근대사를 관통하는 민초들의 역사 증언서이다.

, 우리들이 알고 있으면서 잊고 살아가는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씨줄''날줄'로 

엮어서 전개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맺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과 임오군란(1882) 또 하나는 동학농민혁명(1894)축으로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사랑을 찾아 나선 애잔한 어느 촌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나는 이런 구도를 접하며 문학계에 널리 통용되는 단어 중에 황 작가님을 지칭하는 단어로

'황구라'라는 단어가 왜 붙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성석제님은 이야기꾼???)

수 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이 분의 장편 '장길산'을 읽으며 어느 정도 황구라님 특유의 이야기 

재능(?)을 느끼긴 하였지만 본 작품의 전개 및 소재를 마주하며 그러한 별칭이 굉장히 합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 확실한 작품이었다.

아무튼 작품 속에는 광대패, 과거 부정 시험장면, 농민 봉기, 구식 군대의 봉기 등과 당시의 사회 

관습에 대한 이야기를 얼기설기 그물 코를 엮어 놓은 구도가 정말 잘도 엮어 놓았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나는 작품에서 전개되는 특정한 사건을 갖고 아니면 작품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특정 사건만을 

갖고 작품 전체의 주제인 양 작품의 평을 한다는 것은 아주 저급한 작품 평이요 작가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기 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쉼 없이 잔잔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 여울물 같은 우리 

민초들의 깨알 같은 삶에 영향을 준 시대적 상황과 환경 또한 팍팍 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 사고

내용을 먼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참 의미를 깨닫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문학 작품을 읽으며 쌩뚱맞게 이렇게 느낀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박연옥'이도

'이신()'이라는 사람도 정말로 그 시대에 살아 있었을 수도 있고, '초라니 광대 박씨'

'장돌뱅이 안 서방', 대원군의 심복인 허민이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선가 분명히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인 '이신()'이가 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피붙이를 두고 먼 지방으로 내 돌아야 했는가

그는 자신의 본명이 있었음에도 왜 '이신통'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는가, 허민이라는 대원군의 

심복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작품을 통해 알 수도 있겠으나, 작품 저변에 흐르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작품 속의 등장 인물이나 그들이 보여 주고 있는 삶의 

내용 그리고 그들이 던져 주고자 한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민초들의 여러 모습은 시대적 변화에 항거하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 쓰러져 간 바로 우리 민초들의 또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근대사를 다시 

한 번 재 조명한 '역사물'의 또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학창시절 우리는 본 작품의 기본적 소재가 되고 있는 '강화도 조약'이니 '임오군란이니 

'동학혁명'이니 하는 사건을 연대 순으로 혹은 원인과 결론에 대해 사지선다형 답을 맞추기 위해 

외우고 또 외웠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교문을 나선지 오래된 사람들은 당시의 사건을 하나의 

우리의 근대사 혹은 치욕의 역사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 더 이상도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 이런 시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지 소재가 되고 있는 시대적 사건의 배경을 확인하면서 작품 

내용을 반추해 봤으면 한다. 이런 작품이 하루 아침에 쓰여지지 않기에 또 작가님은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작품 활동 보다는 모 후보의 열성 지지 당원으로 우리 나라의 여러 곳을 돌아 

다니셨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훨씬 전부터 자료 준비를 해 놓으시지 않으셨다면 집필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셨을텐데 이런 작품이 나왔다면, 우리 아픔의 역사를 소재로 왜 이 시기에 출판하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재음미하고 생각해 본다면 작품이 갖는 의미성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모티브를 던져주고 있는 역사적 우리의 주요 사건에 대한 내용을 축약해 보면


1. 강화도 조약(1876)

- 강화도조약은 1876(고종 13) '운요호 사건'을 핑계로 일본과 체결된 조약으로 한일 관계

  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의 침탈 의도를 본격적으로 나타냄.


- 조약은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했지만, 이는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부정함으로써 일본의 조선침략을 쉽게 하기 위함이었고 일본의 전략은 맞아

  떨어진다.


- 강화도 조약에 따라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를 파견하며 수신사는 일본과의 조약 성공을 관철

  시키기 위한 친일파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 임오군란(1882)

-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후원으로 조직된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구식 군대의 차별 

  대우, 봉급미 연체와 불량미 지급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옛 훈련도감 소속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병란 및 항쟁이다.


- , 후임 임 선혜청 책임자인 민겸호 및 그의 하인들의 착복 및 축재 사실이 단초가 되어 일어난

  난을 조정이 관리들을 옹호하며 병사들 감정이 격화되어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 교관을 포함 

  13명을 살해하고 종결되나 민씨 척족의 요청으로 청나라와 일본이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조선에 군사가 들어오는 단초를 제공.


- 임오군란으로 대외적으로는 청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개입을 확대시키는 국제 문제로, 

  대내적으로는 갑신정변의 바탕을 마련해 주게 된다. 외세를 빌려 군란을 진압한 '민씨 정권'은 

  결국 자주성을 잃고, 정권 유지를 위해 청나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일본과는 임오

  군란의 뒤처리로 손해배상금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게 며 자주권 상실이 

  가속화


3. 제물포 조약(1882)

- 제물포 조약은 임오군란 사후 처리를 위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에 책임을 묻는 형식으

  로 김홍집이 주도해 체결, 조약의 내용은 50만 원 배상,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 조선 정부의 

  공식 사과를 위한 수신사 파견, 임오군란 주모자 처벌, 일본인 피해 유가족에게 위로금 지불 등

  이 그 핵심


- 제물포 조약의 규정에 따라 박영효, 김만식, 홍영식, 김옥균, 민영익 등이 수신사로 일본에 간다

  그들은 국빈 대우를 받으며 당대의 철학자 후쿠자와 유키치와 접촉하면서 선진 일본에 매료

  되는 친일파가 되는 계기가 됨.


- 제물포 조약에 의해 조선 정부가 배상토록 한 배상금의 완화는 물론 기간의 연장 등 일본의 

  계략에 빠져 친일 성향을 갖게 되고 이들이 귀국하여 일본의 힘을 빌려 개화와 정치개혁을 

  단행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갑신정변이다.


4. 동학 농민 운동(1893~95)

- 갑오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갑오농민운동 혹은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청일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동학은 서학에 맞선 우리 민족 전통의 종교로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교도 및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민중의 무장 봉기운동이라 보면 된

  양반 관리들의 탐학과 부패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전라도 고부군에 부임된 조병갑의 비리와 

  비행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 동학은 신분제의 타파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한 조선말 상황에 가난한 농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운동의 성격은 간단하게 "반봉건적, 반외세적 농민항쟁"이다.

  농민이 주축이 되는 운동으로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 시대의 최대의 항쟁이다.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결국 실패했으나 후에 3.1운동으로 계승되었다.


- 동학농민전쟁은 실패하였으나 이 실패를 바탕으로 농민층의 반일애국주의가 의병운동에

  양반유생과 더불어, 함께 참여하는 성숙성을 보여 주게 된다.


- 갑오농민봉기 이후 조선의 양반 및 부호층들이 전쟁에 패한 농민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일본군처럼 행동하며 일본군과의 연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전략으로 채택

  되면서 민족분열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작가께서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이런 점을 갖고 내가 

느낀 것은 한 겨울에도 쉼 없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우리 산천의 '여울물'들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상징적 이름이었다는 게 작품을 읽은 나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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