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3

 

누굴까? 오래 전부터.는 아니다. 작년 부터였으니까. 정여울. 이름이 하도 이뻐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책을 많아 읽어도 워낙 많은 작가들이 있으니 다 알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정여울까지 모른다는 것은 조금 창피한 일이다. 그만큼 난 소설 같은 문학서적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역사서, 그리고 철학서, 마지막으로 가볍게 읽으면서 도전 받는 자기계발서류다. 철학과 자기계발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아이러니하지만, 난 둘 다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십대 초반엔 월급을 받으면 항상 십일조 하듯 월급의 십분의 일 정도는 꼭 책을 샀다. 그때 기억나는 작가는 '신달자'... 아직도 서점에 가면 이 분의 책이 의외로 많다. 이십대 후반부터 읽지 않아 나에게 잊힌 작가다.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올 9월에도 신간을 냈다. 참 대단하신 분이다. 나이가 들어도 펜을 놓지 않는 멋진 분이다. 나도 이분처럼 늙고 싶다. 감성과 지성이 어우러진 분이다. 그러나 내가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글맛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요즘 책은 어떤지 궁금하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겠지…….
















문법책을 사러 강진 우리 서점에 들렀다. 없다! 시골 작은 서점에 전문가들이나 찾는 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너무 과한 욕심인줄 알고 가볍게 읽을 책 한 권만 살 생각이다. 지난번처럼 20만원을 더 살까 겁나 딱 한 권으로 정했다. 문제는 그 딱 한권에서 시작되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니 '선택'해야 하는 부담감이 밀려온다. 고르고 또 고르고. 그러기를 한 시간. 왜 서점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까? 난 책과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마지막 내 손에 들린 것은 정여울의 <그림자 여행>이었다. 이번에 나온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으로 작가의 명성을 널리 알린 작가다. 이름도 이쁘다. 정여울. 난 정씨가 좋다. 정씨는 왠지 정이 간다


그녀는 서울대학교-갑자기 고백남기가 왜 생각나지?-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개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인간의 마음과 세상에 대한 끊이지 않는 호기심, 삶을 향한 아름다운 사색과 인간애의 진중한 관심으로 문학과 삶, 인생과 자아, 여행과 감성, 사회와 성찰에 관한 글을 써왔다."

 

소개문 진짜 잘 쓴다. 누가 쓴 거지? 혹시 자신이 썼나? 책을 읽어도 문장이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멋스럽다. 퍼즐을 맞추듯 그의 문장 속 단어는 절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다. 그 문장에 최적화된 단어만을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아주 작다고 믿었던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구렁텅이가 생겼음을 깨달았을 때, 돌아보면 어느새 친구와의 연락이 끊겨있다. 일부런 그런 것도 아닌데, 의도적으로 진구를 멀리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그립지만 이제는 연락하기 민망한 사이가 되어버리곤 한다."(15)

 

문장이 정말 매끄럽다. 부드럽게 와인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다. 또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밀한 욕망을 들추어낸다.

 

"가끔씩 자발적으로 다정해질 뿐, 대부분 무뚝뚝하게 지내는 나는 아무 용건 없이 그저 안부를 묻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이란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전화 또는 문자라도 타인의 안부를 자주 묻고 싶다."(46)

 

정여울. 난 오늘부터 그녀는 사랑하기로 했다. 멋진 작가로서 그녀를. <그림자 여행>외 또 무슨 책이 있을까. 낭독에 대한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이 지금 곧 나왔다.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과 이미 유명해진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2년 전에 출간되었다. <공부할 권리>도 읽고 싶고, 그녀의 박사학위 주제였던 헤세에 대한 글모음인 <헤세로 가는 길>,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아름다운 글을 모아놓은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도 사서 베껴 쓰고 싶다. ……. 올 가을은 정여울의 책을 몇 권 사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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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03 2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네에도 문방구겸 서점이 있습니다.물론 문방구와 서점을 동시에하니 서점의 전문성은 상당히 떨어지죠. 그런데 알라딘에 메인 페이지에 나오는 책과 서점의 매대 진열한 책이 거의 비슷해요. 즉, 잘팔릴만한 책,광고빨 높은 책 위주이고, 책 메니아들의 선택하는 책은 거의 없었어요. 물론 동네서점가면 책만 실컷 보다가 한권도 못사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낭만인생 2016-10-04 13:28   좋아요 1 | URL
동네서점을 이해하긴 하지만, 약간의 색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hnine 2016-10-03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전 단 한권의 책, <공부할 권리>를 읽고 푹 빠져버렸어요. 특이한 이름때문에 오히려 본인은 학교 다닐때 놀림을 많이 당했다네요^^

낭만인생 2016-10-04 13:30   좋아요 1 | URL
그렇다는 군요.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편집자였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