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
1993년에 특이한 한 권이 책이 출간된다. 이름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다. 제목만 봐도 어떤 책인지를 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단어를 알면, 연관된 단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응과 함께 단박에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에 진입한다. 지금도 이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으며, 주니어용으로 나와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라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 등으로 응용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그 전까지 영어는 우격다짐식의 암기가 전부였다. 당시 유행했던 암기법은 콘사이어 사전을 뜯어가며 암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형은 한쪽을 다 암기하면 그 페이지를 찢어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어 먹었다. 괴기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당시에는 흔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튼 당시는 대체로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의 암기식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무조건 암기가 아리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동일한 단어지만 어떤 어근을 붙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앞에서’란 뜻의 af를 fection에 붙여affection을 만들면 ‘애정’ ‘호의’가 되고, fair에 붙이면 affair이 되여 ‘일’이나 ‘추문’ 등의 뉴스거리란 의미가 만들어 진다. ‘af- 내가 하면 affection, 남이 하면 affair’란 제목으로 달았다. 이런 식의 공부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공부법이었다. 단어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는 또 다른 단어를 부르고, 그 단어는 다른 단어와 연관되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책을 부른다. 얼마 전 THANKSBOOK7을 읽다가 최재선교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의 힘’이란 글을 읽었다. 그곳에는 <삐딱한 글쓰기>를 읽고 받은 감동을 기록되어 있다. 수십 년 서울에서 버스기사로 일 해온 저자가 <작은 책>이란 월간지를 읽게 되면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틈틈이 써온 글을 분류하고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이야기다. 2006년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란 제목을 출간한다. 2014년 7월에 글쓰기 비법을 소개한 <삐딱한 글쓰기>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욍도 <그 삶이 내게 다가왔다> 등의 5권의 책을 공저자의 이름으로 출간해 왔다.
최재선교수는 안건모씨의 책을 평하기를 ‘그의 삶의 이야기는 박진감이 있었고, 소극적으로 살던 삶이 주체적 인식과 행동을 동반한 성찰적 삶으로 바뀐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글을 읽고 나서 저자인 안건모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의 책을 검색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저자의 인터뷰나 저술 동기와 여정 등을 읽었다. 과연 안건모씨는 생존을 위해 고등학교 중퇴를 해야 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시내버스 기사가 되었다. 기사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최재선교수는 ‘이처럼 좋은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고 마무리 한다. 자신이 이야기,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 공감과 감동이 있는 글쓰기가 된다. 이분의 이야기를 알아가면서 이 책의 서평과 인터뷰를 통해 단 책을 소개 받는다. 오마이뉴스에 강정민 기자의 글을 보면 안건모씨가 읽게 된 다른 책을 소개한다.
“책을 읽으며 글쓴이는 자신이 속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고. 그때 안건모 선생님이 읽은 책은 <태백산맥>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찢겨진 산하> <노동의 새벽> 같은 책이었다. 그는 현대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안건모씨를 눈뜨게 한 책들이다. 생각의 전환을 일으킨 책을 읽고 싶지 않은가. 필자는 이미 <태맥산맥>과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읽었다. 나머지 두 권도 읽고 싶다. 이처럼 책은 책을 부르고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모르지만, 안건모씨는 <전태일 평전>이나, 스티븐 킹의 글쓰기 교재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을 터. 이 외에도 수많은 책이 그의 서재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다시 이태준의 <문장강화>로 이어지고, <문장강화>는 다시 조정래의 <황홀한 글 감옥>로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다.
나는 필독서를 따라 읽지 못한다. 한 책을 읽다 그 책 속에 소개된 책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주제의 책을 여러권 사 놓고 도미노 식으로 읽기도 한다. 책은 책을 부르고,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을 낳는다.
그나저나 추천마법사는 나를 뭘로 알고 <잡놈들 전성시대>를 추천한단 말인가. 안건모를 검색하다보니 이선주의 신간 <창밖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노예의 역사> 역시 같은 범주에 넣어도 될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