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기적인데...
요즘 연일 처가행이다. 지난주에 두 번이나 갔고, 어제도 갔다. 몇 가지 어려움이 처가에 일어나면서 덩달아 나까지 바빠졌다. 결국 좋은 결과를 맺고 나서야 한 숨을 둘렸다. 갑자기 불어 닥친 변화에 숨이 찼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새움이 보인다. 아직 겨울인데, 아직 대한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연은 벌써 봄을 준비한다. 아름다운 일상이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평범한 1월 후반의 모습이다.
뒷골목에도 광대나물이 꽃을 피운다. 연한 보랏빛 광대나물 꽃이 시골 풍경을 한껏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봄은 이렇게 삶 가까이에서 일어난다. 불현듯 인생이란 광대나물 꽃이 아닌가 싶다. 정신없이 성공과 목적을 향해 달려가다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는가 싶다. 잠깐 멈추고 돌아보면 여전히 일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랴오즈> 저자의 이름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의족을 앞세운 짧은 다리의 랴오즈의 표지 사진이 섬뜩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라"는 표제가 마음을 울린다. 예전에 읽었던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도 비슷한 내용이다. 비록 위지안은 죽었고, 랴오즈는 살아있지만, 둘 다 나에게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해 준이다. 랴오즈는 책에서 평범한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이, 의족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2008년, 윈촨지역에 지진이 일어난다. 바로 근처에 있던 멘주시 한왕진은 ‘며칠 내내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불행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땅이 흔들리더니 아파트가 땅 속으로 매몰되었다. 순간이었다. 아직 돌이 되지 않았던 딸과, 딸을 안고 놀고 있던 시어머니도 함께 매몰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주위의 신음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주변의 신음소리가 잦아들수록 내 마음도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렇게 수십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곁에 있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다급하게 시어머니에게 말을 시켰지만 딸꾹질 외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딸꾹질이 멈추었고 그 후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딸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스물여섯 시간 후, 매몰된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랴오즈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온전한 몸이 아니었다. 콘크리트에 짓 이겨진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익숙하고 평범한 것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생명은 우리에게 가깝고 익숙한 것이다.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생명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한다. 생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을 때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왕이 듯 작은 상처를 입거나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온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처럼 화를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생명이 자기 앞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순간,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갈 때에는 누가 누구에게 잘못하고 누가 누구를 더 사랑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는 사랑하면서도 잘해주지 못했던 사람들, 상처를 입히고도, 미안해라고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사람들, 꼭 끌어안자주지 못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오로지 그들만 생각났다.”
익숙한 것들……. 익숙한 것들도 반드시 낯설었던 시간이 이었다. 낯섦이 여러 번 겹치면서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익숙해지면 편하고 쉽다. 그러나 익숙한 것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기적이다.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하면서 그녀는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계단은 위험했다. 비오는 날 외출을 시도하다 수도 없이 넘어졌다. 위지안도 그랬다. 죽음 앞두고 아이를 으스러지게 안았던 위지안은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처가의 고향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돌담길에 얼굴을 내민 광대나물도 기적이고,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봄동도 기적이다. 처가댁 식구들과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도 기적이다. 나의 몸에 두 다리가 붙어 있고, 두 손이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 나이가 들어 어줍짠기도 하지만 부실한 이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일상이 기적이다.
오늘부터 감사일기를 쓰자. 기이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 감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