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글은 쉽고 가볍게 쓰려 한다


택배 할배가 바쁜지 그저께 와야 할 책이 어제 저녁에야 도착했다. 알라딘은 언제나 할배가 가져 온다. 시커먼 얼굴의 탁배 할배는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정이 들지 않는 얼굴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친절하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 배달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해 냉장고에 모셔둔 음료수를 종종 꺼내 준다. 할배는 언제나 늦다. 대개는 오후 늦게 오던지 밤에 오기도하고, 어쩔 때는 이번처럼 하루 늦게 도착한다. 그래도 기다린다. 기다림도 미학이기에. 하루 늦게 온다고 상하는 음식도 아니고, 사라질 물건도 아니니 참고 기다린다. 빨리 읽고 싶은 책을 하루 동안 기다리다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택배 아저씨들의 소리에 민감해지며 기다림의 깊이는 더해간다. 그러나 내가 정말 그것을 받을 만큼 중요한 물건일까? 이건 거부감이다. 결국 책은 왔고, 기다림과 거부감은 동시에 사라졌다. 이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기대감으로 어느 새 바뀌었다



아내는 늘 지적 질이다. 글에 오타가 많다고 사사건건 간섭한다. 증거의 캡쳐 이미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워낙 맞춤법에 약하기는 하지만, 내 글에는 오타가 정말 많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오타가 수도 없이 많다. 고치고 또 고쳐도 끝이 없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상하리만큼 오타가 많다. 심리적인 요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을 다른 사람들보다 굉장히 빨리 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내는 글을 읽다가 오타가 발견되면 글을 읽어지기 싫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책이나 공문서에 오타가 있어도 생각이 없이 없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오타가 발견되면 글쓴이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오타는 엄밀하게 오타가 아닌 잘못된 글이다. 예를 들어 회개와 회계를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개발과 계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런 오타, 학교-학고로 쓰는 경우는 정말 오타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건 실력이 아닌 부주의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들은 쉽고 가볍게 쓰려고 한다. 방문자는 적어도 상당히 깊이 있는 글과 알찬 글이 많다. 그런데 그런 글은 이상하게 읽기에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글을 쓰기를 노력하다 지금은 내려놓은 상태다. 그런 글을 쓰기에 시간도 없고, 써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글은 책만을 위한 블로그를 개설해 쓸 생각이다. 이것도 읽지 않으려나


어쨌든 이것으로 유유출판사의 책은 두 권이 되었다. 한 권은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이고 다른 한 권은 이번에 구입한 에밀 파게(Émile Faguet)<단단한 독서>. 두 권 다 최고의 책이다. 책을 손에 넣고 보니 작은 사이즈다. 바지 호주머니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겨울 점퍼 주머니에는 쏙 들어간다.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사이즈다. 유유출판사가 궁금해 검색해들어 가니 알찬 책이 몇 권 보인다. 모티머 애들러의 <평생공부 가이드>는 어떻게 지식을 축적해 갈 것인가를 알려주는 귀중한 가이드다. 릴리 애덤스 벡의 <동양의 생각지도> 역시 서구인의 눈으로 바라본 동양인의 사고방식이다. 읽으면 재미있을 책들이다.


※단단한 독서의 원서를 읽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로 이동하면된다. 

http://fr.wikisource.org/wiki/Livre:%C3%89mile_Faguet_-_L'Art_de_lire.djvu














단단한 독서에서 가져온 몇 문장


책 읽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선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뒤로도 계속 천천히, 자신이 마지막으로 읽게 될 소중한 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천천히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 책에서 배움을 구하거나 비평할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책은 매우 천천히 읽어 나가야 한다. 17


조금은 빨리 읽어도 좋을 책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서 나오는 감정을 재료로 삼는 작가의 책이다.  47


소리 높여 읽으면 리듬이 스며들기에 글을 한 편의 음악처럼 써 내리는 작가의 지닌 의미를 온전하게 채워 넣게 된다. 122


제발 이 글에는 오타가 없기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11-29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70년대에 나온 아주 조그맣고 낡은 책으로 에밀 파게를 처음 만났는데
새로운 번역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해요.

아마 새로운 번역인 만큼 더 깔끔하기는 할 텐데,
저는 낡고 더 조그맣게 나왔던
예전 번역책을 읽으면서
`투박하고 수수한 한국말`을 느끼기도 했어요.

아무쪼록 즐겁게 찬찬히 읽으셔요~

낭만인생 2014-11-29 11:52   좋아요 1 | URL
오래된 책이군요. 이번책도 그런대로 읽을 만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4-11-29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었군요. 요즘 저도 배송이 하루 늦거나 늦은 밤에 책을 받거든요. 이럴 때 연세가 있는 분들이 배달을 하시던데 안쓰럽습니다.

낭만인생 2014-11-29 11:5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아들과 같이 일하시는 것 같던데 가벼운 것은 할아버지가 배달하더군요.